이것이 바로 가스라이팅?

위협에 굴하지 않는 용기

by 플로터

가게를 오래 비우긴 했다. 괌에서 3개월을 꽉 채워서 있다가 왔고 심지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가게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3개월 동안 가게를 모친에게 맡겨두니 원래도 동네 복덕방인지 카페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던 내 카페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생계를 위한 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 경기가 있는 날에는 새로운 손님들이 오기도 해서 그나마 카페 영업 비용만큼은 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름 내내 답답하다며 에어컨도 안 틀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가게 안팎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가득 앉아 있는 카페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처참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나는 더우니 문을 다 닫고 에어컨을 틀었고 그러자 모친은 답답하단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도미노 현상으로 모친의 지인 손님들도 모두 자리를 떠나 오랜만에 조용하게 노래를 감상하며 한가로운 장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4명의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사장님'을 찾는다. 이 카페의 사장은 나다. 하지만 대부분 모친이 사장인 줄 알고 심지어 나는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운 이후였으니 이 새로운 무리들은 이 카페의 사장이 우리 모친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경우 나의 대처는 2가지로 나뉜다. 모친, 즉 사장과의 친분을 핑계로 친한 척하거나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유형에게는 '내가 사장'임을 밝히며 꽤 까칠한 대처를 하고 그 이외의 평범한 경우에는 부재중임을 알려주고 만다.


그날의 모친은 뭔가 수상했다. 언제나 문을 사방팔방 열고 큰 소리로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는 양반이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조용히 있었다.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 4명의 여자들이 '사장님'을 찾는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모친에게 누군가 찾아왔다고 알려주는데 그날의 나는 뭔가 그 여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모친의 행방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다'라는 거짓말을 한 것을 보면.


자리에 없다는 말을 듣고는 가게에서 나가길래 갔는지 알았는데 어느샌가 가게 앞에 놓인 파라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출입문 바로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모친의 지인이라도 커피를 사지도 않았으면서 남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영업집 출입문마저 막고 앉아 있길래 어이가 없어진 나는 "남의 영업장 출입문을 막고 계시면 안 되죠."라고 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전에도 여기 누가 앉아있었어요."라는 말 같지 않은 대꾸를 했다.


이해할 수 있다. 나의 부재는 내 카페의 무질서를 의미한다. 모친의 지인들은 손님이건 아니건 다 몰려들어 냄새가 나건 말건 음식을 섭취하고 신발을 벗어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분들이 대다수이므로 아마도 그중 한 분이 출입문을 막고 앉아 있어도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가 가게에 있으면 모친이 자꾸 어딘가로 사라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나는 '질서를 잡는 자'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리를 비우는 것이다.


"전엔 어땠는지 모르겠고 거기 출입문이니 막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그 일행 중 가장 키가 크고 제일 젊은 여자가 가자며 일행들을 이끌고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자 슬그머니 나타난 모친에게 물으니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사이비들이었다. 동네에 선교 센터를 연다는 현수막까지 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들이 지금 포교 활동을 벌이는 대상이 우리 모친이었던 듯하다.


코로나 시기에 너무나 악명이 높아 조금 알아본 이후 더더욱 극혐 하게 된 사이비들이 내 가게에 들어와 내 모친을 포교하려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리고 며칠 후 느지막한 오후에 가게에 나가니 모친은 없고 그 사이비들이 모친의 지인을 가운데 두고 가입 원서를 받고 있었다. 너무 화가 난 나는 "여기서 선교 활동 하시면 안 돼요 나가세요."라고 원래도 큰 목소리에 좀 더 힘을 담아 말했다.


의외로 조용히 나가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미친 자들이 내 파라솔에 앉아 선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 그들이 마시던 커피잔을 수거하며 "다른 데로 가세요."라고 했더니 커피가 남았다고 항변하길래 잔을 치우며 "환불해 주겠다"했더니 내 단호함을 느꼈는지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줄 것을 요구했다.


잔에 남은 커피를 담고 있으니 그 키 큰 여자가 들어와

사이비 "사장님 말씀을 천천히 하세요."

나 "저 원래 말 빨리 해요. 내가 애도 아니고 남이사 말을 빨리하건 천천히 하건 무슨 상관이에요."

사이비 "왜 그렇게 화를 내면서 말씀을 하세요."

나 "왜 남의 가게에서 선교를 하고 그러세요. 담에 또 여기서 그러면 영업 방해 신고할 거예요."

사이비 "저희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나 "싫으니까요!"


자꾸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나를 달래듯이 말하길래 들은 척도 안 했더니 결국은 안 되겠는지 내가 하지도 않은 말까지 만들어내며 시비를 걸어왔다. 가뜩이나 짜증이 난 나는 '자꾸 싸움 걸면 욕하겠다'라고 선언했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모친의 지인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난 이후에 들어온 모친은 초반에 자신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상냥하게 대해준 사이비들에게 모질게 말할 수 없어 피해 다니던 중이었다며 그 키 큰 사이비 여자가 이 지역 어느 학교의 선생이고 전화가 와서는 '따님이 저희를 오해하신 거 같다'라고 말했다는 뒷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오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교리를 알고 싶지도 그들이 종교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80이 넘은 시골 할머니를 붙들고 '한글을 가르쳐 준다'는 말로 선교 센터에 오라고 꼬시는 그들의 실제 목적이 결코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학교 선생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사이비에 심취하여 포교 활동까지 하고 있는 것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나긋나긋 '네가 몰라서 화를 내는 거야'같은 개소리를 해봐야 나에게 그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내쫓고 난 이후 조금 흥분이 가라앉으니 그 사이비 여자가 나에게 '말을 천천히 해라, 우리를 몰라서 화를 내는 거다, 흥분하지 말아라'라며 상황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을 했던 것이 너무 웃겼다. 시골에서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좋으신 어르신들만 상대하다 보니 그런 수법이 나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난 원래 말을 빨리 해! 그리고 니들이 싫으니 화가 났고 흥분했지만 충분히 이성적이어서 아직 욕은 안 하는 거야!"


꽤 사회화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향해 너무나 직설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매우 놀랐다. 하지만 거기서 그렇게 단호하게 쳐내지 않았으면 어쩌면 우리 가게가 사이비의 근거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 이 사이비가 이제 확실히 안와야 마음 놓고 또 어디든 갈 텐데. 하.. 아무리 사이비지만 노인 상대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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