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는 법

100세 인생이라는데 어쩌나...

by 플로터

이미 가족 및 친구의 눈에 '심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는지도 모르겠다. 술이라도 마시라는 아버지의 말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쩌다 벌어진 재미있는 술자리 에피소드를 친구에게 공유하자 친구는 '너의 심심한 삶'에 어쩌다 그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냐며 놀라움을 표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조금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의 삶은 어쩌다 '심심해졌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삶이 '엄청나게 흥미진진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고 혼자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읽는 등 조금은 잔잔하고 조용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나면 꼭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그런 사람이다. 일주일에 이틀 음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중 하루를 누군가와 함께 마시게 되면 그 이틀은 삼일이 된다.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이나 음주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공연을 좋아하고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름 활기 찬 덕질을 하며 꽤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나의 덕질은 나의 게으름과 혼자만의 시간이나 생각을 중시하는 성향적 특성으로 인해 꽤 고립되고 잔잔한 성향을 띠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도 내가 지루한 일상을 억지로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의 부친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아빠는 책을 좋아하고 드라마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집돌이 성향을 가지신 분으로 나는 그러한 아빠의 성격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싫어하는 노인의 모습, 집 앞에 의자를 놓고 하염없이 바깥을 바라보는 행동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 책을 읽고 티브이를 보며 지나치게 낮잠을 오래 주무시는 아빠의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거기에 나는 인터넷까지 할 줄 아는 세대니 나의 노년은 내 아버지의 그것보다는 좀 더 다채롭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부친이 '너무 지루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문불출 방에 움츠리고 누워 식사 때만 방 밖으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나는 겨울이 올 즈음이 되면 아버지를 괌으로 들여보낸다. 괌은 늘 따뜻하고 그곳에 가면 하루에 2번씩 산책을 하시는 아버지가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의 입에서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다'는 말이 나오던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나에게 '술이라도 마셔야지'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일어나 1시간이 넘는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저녁 시간이 되면 다시 산책을 하고 돌아와 티브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버지. 나는 그런 규칙적인 아버지를 보며 나의 노년 또한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 없이 그냥 평온할 것이라고 낙관했던 듯하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그 평온을 아버지는 지루해하고 있구나.


내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몸이 느려지고 모든 것이 서툴러진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도 당연히 쉽지 않고 친구 또한 많지 않은 아버지는 더더욱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내 술병을 치웠던 건지도 모른다. 무언가 할 일이 필요해서. 텅 빈 눈으로 바깥에 앉아 지나는 사람 구경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우리 아빠는 시간을 잘 보내는구나' 했는데 아빠의 진심을 듣고 나니 조금 슬퍼졌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나이 든 내 일상을 지루하게 느끼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좀 더 활기차고 심심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지금을 보내면 더 나이 든 미래의 내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나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지금은 미래의 내가 후회하게 될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조금 더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즐거운 것은 무엇이지?라는 끝이 나지 않는 질문.

아직 추운 겨울이라 그런가. 더운 나라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추워진 이 계절 속에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니 잡생각이 많아진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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