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긁지 말아야 할 복권도 있다
나는 로또를 사면 절대 그 주에 확인을 하지 않는다. 당첨이 될 것 같은 기분을 가지고 샀음에도 당첨 발표날 당장 확인해 버리는 것은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복권이 꽤 여러 장 모이면 부랴부랴 '당첨금 수령 기한'이 넘기 전에 얼른 확인을 해야 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확인 의식을 거행한다. 그 와중에 기사를 통해 내가 사는 지역에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나의 당첨 확인 의식은 매우 두근거리는 행복감 속에 이루어진다.
그런 관계가 있었다. 나와는 매우 다르고 항상 유쾌한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는 사람. 자주 만날 일도 없고 그럴만한 사이도 아니지만 가끔 만나도 언제나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꽤 소심한 나의 시도는 늘 거절당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아무런 기대도 관계 진전에 대한 희망도 가지지 않고 그냥저냥 지내는 사이에 만족하고 있었다.
인생은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점점 남이 되어 가던 중 갑자기 또다시 친목의 기회가 생겼고 무슨 일인지 꽤 무시당할 만한 나의 친목 시도가 받아들여졌다. '뭐지?' 스스로도 조금 의아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되어가는 형국에 신이 나 있었다. '뭐, 언제나 그랬듯 이러다 말 수도 있고 아니면 좋은 거고.'
아무리 생각해도 될 일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이게 된다고?'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신성한 확인 의식도 거치지 않고 복권을 긁고 말았다. 그리고 그토록 소중하게 아끼고 아끼던 복권이 꽝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시간을 앞으로 돌리고 싶은 기분. 긁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늘 그렇듯 지갑 속에 소중히 넣어두고 아주 가끔씩 꺼내보았던 나의 당첨될 복권, 왜 벌써 긁어버린 거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주 소중한 가르침을 하나 얻었다.
긁지 않은 복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