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말해도 욕은 욕이다
나도 조심해야지!
나는 방안에 가득한 섬유유연제의 향을 좋아한다. 디퓨저처럼 언제나 그 냄새가 남아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향수나 아로마, 빨래 말리는 동안 잠시 남아있는 섬유 유연제의 향기는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환기를 시키고 최대한 냄새가 없는 무향의 상태를 유지하려 하지만 가끔 좋아하는 향수를 방안이나 침구에 뿌리고 그 냄새를 맡으며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날이 추워지니 아무리 널어놔도 빨래가 마르지를 않고 심지어 다 말랐다고 생각하고 입은 옷에서 매우 찝찝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낀 이후로는 조금 귀찮지만 집에서 세탁을 하고 빨래방에 가져가 건조를 시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향인 바운스를 넣어서 건조를 돌려 따뜻해진 빨래를 가지고 오면 왠지 방안에 흐릿하게 나는 바운스향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건조기 사용 금액은 의외로 꽤 나간다. 아무리 얼마 안 되는 빨래지만 다 말리자니 한 번에 최소한 4천 원을 내야 하고 이상하게도 괌에서 가져온 바운스를 괌에서 빨래 건조할 때처럼 2장씩 넣었는데도 뭔가 냄새가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꿉꿉한 냄새 없이 빨래를 말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요 며칠 매일 출근하듯이 빨래방을 드나들고 있었다.
주말에는 왠지 직장인들이 밀린 빨래를 하느라 빨래방이 붐빌 것 같아서 주말이 지나 빨래를 했다. 그리고 신이 나서 두 개의 쇼핑백에 젖은 빨래를 들고 빨래방에 들어가 건조기의 문을 열었다. 그때 카트에 빨래를 싣고 해당 건조기로 접근하는 여자가 "제가 쓰려고 했는데 새치기를 하시네요."라고 한다. "아 이거 쓰실 거예요?"라고 말한 뒤 대형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있자니 기분이 매우 상했다.
아니 내가 먼저 건조기 문을 열었고 그 사람은 건조기 문 앞에 서 있었던 것도 문을 열고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문을 열고 빨래를 털어 넣는 내가 '새치기'가 된 거지? 순번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원래 빨래방에서 쓰려는 건조기는 내가 찜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문을 열고 빨래를 넣는 것 아닌가?
웃으면서 말하는 폼이 자기 딴에는 친절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치기'의도가 있지도 정확하게 말해서는 '새치기'도 아닌 나의 조금 빨랐던 행동에 대한 발언에 매우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싸우기에는 뭐 딱히 기력이 있지도 않고 '원래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 말하고 있는지 모르니 그냥 두자'라는 체념의 마음으로 상한 기분만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냥한 '새치기' 발언을 다시 곱씹으며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웃으면서 '욕'을 하지는 않았나?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별로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싫은 남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괜찮은가?'라는 자기반성을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교사가 많아졌달까? 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누군가를 쓸데없이 기분 나쁘게 하는 또는 남들이 보기에 불쾌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 작은 자각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결론을 내지만 사실 아직도 기분이 매우 더럽다. 욕은 아무리 웃으며 해도 욕입니다. 그리고 아까 그 행위는 전혀 '새치기'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