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원봉사자입니까?
나는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크게 화가 나지 않는 한 평소에 딱히 지랄스러운 성격은 아닌 정도? 그리고 꽤 친절한 매너를 가지고 있을 뿐인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선한 마음을 타고나서 어르신들을 공경하거나 보살펴야 한다는 거룩한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우리 집은 2남 1녀이고 그러다 보니 딱히 상냥하지 않은 성격임에도 나는 부모에게 가장 친절하고 편한 자녀로 인식되고 있다. 하루 종일 힘들게 보살피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 당연히 자식의 도리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성격상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마쳐야 하다 보니 그것이 내 부모의 눈에는 매우 흡족했던 듯했다. 항상 병원 보호자로 따라다니다 사정이 생겨 오빠의 부인이나 남동생이 동행했던 날은 꼭 '너랑 안 가니까 불안했어'라는 말을 듣고는 한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라고 이해하며 그냥 넘겼는데 이 '지나친 의지'가 지속되다 보니 나의 부모들은 당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나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해졌다. 그로 인해 때때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을 못하고 사고를 치는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고장 난 등을 갈고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을 슬슬 나에게 미루는 부친과 병원이나 관공서에 가는 것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친을 보며 '나는 나이 들어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으려나?'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 눈에 나의 부모는 현재 당신들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 이외의 일은 책임지고 처리할 능력이 없다. 세상이 너무나 변하기도 했고 너무 오랜 시간 내가 당연하듯이 일을 처리해주다 보니 무슨 일만 생기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너무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부모 중 부친이 괌에 혼자 사시는, 알고 보니 아버지 당신보다 연상인 '여사친'분에게 이 시골 동네에 나와서 살면 우리 모친이 잘 도와줄 것이라고 한국 살이를 추천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서울에서 옆 동네로 이사를 가도 처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괌에 살고 있는, 한국에 친인척이 1도 없는 그 어르신에게 이 시골 살이를 권했단 말인가. 그리고 미국 시민인 그 노인분이 이 시골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80을 바라보는 우리 모친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자꾸 정신없이 '고모랑 말 통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라는 이상한 이유로 고모의 한국 은퇴를 주장하는 아버지가 기어이 제대로 사고를 치신 듯하다. 고모 얘기에도 불같이 화를 냈는데 이번엔 9월 달에 한국에 나오기로 했다는 아빠의 친구분 이야기에 화가 나서 '왜 온 동네 노인네를 다 내가 돌봐야 하는데?!'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나의 부모들이 갈수록 내 힘에 부치는 사고를 친다.
그리고 그 사고의 책임을 다 내가 떠안을 생각을 하니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
아! 제발! 쫌! 왜들 그러시냐고요?!
이렇게 다채롭게 사고 치는 것도 참 쉽지 않으실 텐데 나 하나 괴롭히려고 고군분투하시는 울 부모님의 노력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