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전 이제 어디로 가죠?

by 플로터

나의 가장 큰 알바이자 가장 좋아하는 휴식지인 괌이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고모님들은 언제나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긴 했지만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쉬기엔 너무나 기운이 넘치셨고 당연히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는 말은 그냥 입버릇 같은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모들이야 은퇴해도 큰 문제가 없다지만 삼촌은 이제 막 대학교 1학년이 된 자녀가 있는 가장이 아니던가.


괌은 내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 막 그렇게 그립다거나 가고 싶은 장소는 아니다.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 치고는 남아있는 친구도 없고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고 해봐야 어린 시절 좋아했던 먹거리들 뿐인 정도. 실제로 일 년에 6개월가량을 괌에서 보낸 작년만 해도 바다에 간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도 그 바다는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을 뿐이었다. 괌은 섬이지만 그 섬에서 내가 가는 곳은 매우 육지에 있는 가게와 식당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들이 부르기만 하면 기다렸단 듯이 들어가는 이유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하루에 번 돈을 그날 밤에 술이나 밥 또는 쓸데없는 쇼핑으로 다 써버리는 '탕진잼'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한국에서는 아무리 일용직 알바를 해도 그 수입을 하루 만에 다 써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내야 할 카드값을 위해 또는 대출 이자를 위해 작고 소중한 그 돈을 저금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버린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나를 유일하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알바, 고모네 마트가 곧 팔린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가게 내놨다'라는 말만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이번 달 말에 가게 매매 계약을 할 것 같다'는 고모의 신난 듯한 목소리. 팔 것이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성사될 줄 몰랐기에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망해졌다.


어떡하지? 이제 어디 가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이제야 드디어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시려는 고모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의 심정이 되었다.

'이제 전 어디 가서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탕진잼을 누리죠?'


다음 달에 가는 괌이 어쩌면 마지막 또는 그것이 아니라 해도 매우 오랫동안 괌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의 노동 장소이자 힐링 장소. 이제 다시는 못 간다고 생각하니 매우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다. 그렇게까지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이번에 들어가면 그래도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돌아보고 나와야 할 것 같다.


끝이 보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끝은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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