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심하고 마음이 꽤 좁은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서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사실 내 실체는 거절당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한번 거절당하면 두 번째 시도는 잘 못하는 극단적으로 소심한 성격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의 실수나 기억들을 꽤 오래 기억하고 자책하며 이불킥을 하기도 하는 미련이 넘쳐흐르는 찌질의 완전체와 같은 성격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스스로 주제 파악이 꽤 잘되어 있어서 나는 연예인과의 쌍방향 소통 수단 중 하나인 '버블'을 하지 않는다. 나의 아이돌이 늦은 밤 보내 준다는 사진이나 음성 메시지를 생각하면 고작 한 달에 몇 천 원밖에 되지 않는 그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나는 그 '버블'을 외울 정도로 오래 그리고 여러 번 집요하게 읽을 것이 너무나 뻔히 예상되고 그 와중에 내가 한 말들에 이불킥을 하거나 스스로 수치심을 느낄 것을 알기에 구독을 자제하고 있다.
이상한 성격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쳐야한다는 자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던 듯 하다. 동네방네 소문을 낼 것도 아니고 다행히 나의 '아닌 척'은 꽤 잘 통하고 있는 듯 이렇게 극 소심한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나만큼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보니 스스로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고 있달까.
나는 모든 인간관계가 언제든 아무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끝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강박적인 세뇌를 시키고 있다. '언젠가 끝이 날 관계',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어질 수 있는 사이'라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극단적인 결말을 주입시키다 보면 실제로 '그 마지막'이 와도 덜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꽤 오래 내 안에서 자리 잡은 습관이다.
이런 생각을 딱히 입 밖으로 낼 기회가 없다가 최근 들어 새로 생긴 '애매한 관계'의 사람과의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에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더니 친구는 '그러면 너무 외롭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모든 관계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외로움'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나는 그냥 '너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건데 그러한 내 방어막이 외로움을 커지게 하는 건가?
그냥 대비하는 중이다. 모든 관계에는 무조건 끝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물리적으로 연결이 끊어지는 끝도 있을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교류가 멈추게 되는 끝도 있으니까. 아무리 영원할 거라고 스스로를 속여봐도 그것이 절대 거짓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계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보다 훨씬 튼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관계의 시작부터 그 끝을 대비하지 않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니.
이렇게 다소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관계가 끝난 이후의 내가 남들보다 크게 상처받거나 무너지는 건 아니어서 헤어진 남자 친구나 친구로 인해 식음전폐를 하거나 삶이 피폐해진 경험은 최소한 내 기억 안에는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는 내 헤어짐이 너무나 칼 같거나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의 끝은 꽤 단호한 모양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깔끔해보이는 끝이 내가 처음부터 끝을 대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생각보다 단단해서 그 헤어짐을 잘 받아들인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부단한 노력 끝에 언제나 부정적이고 최악의 결말을 예상하는 나쁜 성격은 다소 고쳐진 듯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 예측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태도나 말에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관계의 '끝'을 의식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는 것 조차 어려울 정도로 사람과의 헤어짐을 쿨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무 쉽게 '끝'을 보는 내 성격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 상처를 걱정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건가? 내 상처가 무서워 다가오는 상대에게 자꾸 거리를 두며 '난 이대로 끝나도 괜찮아'라고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끝이 언제일지 알 수가 없어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단단한 마음이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