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도대체 무슨 일??

어두운 조국의 미래를 목격하다

by 플로터

나는 그래도 꽤 자주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한국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준비성이라고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다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서를 지켜 내리는 빠름과 준비성의 민족.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민족답게 준비를 마치고 순서를 잘 지켜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한국인 아니었던가.


오랜만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필리핀은 몇 년 전에 패키지로 세부를 다녀온 것이 처음이고 이번에는 무려 자유 여행 일정으로 친구와 보홀에 가게 되었다. 여권 만료 기간이 5개월이나 남았으니 충분히 여행이 가능할 거라고 게으름을 피운 덕분에 긴급 여권을 만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지만 이 멍청한 에피소드 안에서도 우리나라 시스템의 깔끔함과 빠른 일처리에 매우 감동하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뜨고 꽤 설레는 마음으로 보홀 공항에 착륙했고 아니나 다를까 준비성의 민족다운 한국 관광객들이 복도에 줄을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소 과하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비행기가 작아서 내 눈에 꽉 차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가득 찬 복도로 나갈 수가 없을 듯하여 나는 내 좌석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내 순서가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꽤 뒷열에 앉아있었고 나갈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오랜 비행에 다리를 펴고 싶기도 하고 좌석 간 공간이 좁으니 좌석에서 서있는 것보다는 복도에 나와서 줄을 서는 것이 당연히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앞 열 사람이 나갈 공간은 확보해 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당연한 비행기 매너였기에 차분하게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한국 사람들인 거야?'

복도에 서있던 사람들이 줄지어 나간다. 자신의 앞열 사람이 좌석에서 나오도록 기다려 주는 매너 따위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내 뒷열 사람들마저 줄을 지어 나가는 모습에 위기감이 느껴진 나는 대강 줄을 끊고 복도로 나가 가방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도 그런 내 등 뒤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미친 거야?' 비행기에 올라서 짐을 올리려고 끙끙거리는 나를 보고 친절하게 도움을 줬던 그 사람들이 이렇게 돌변해서 짐을 꺼내는 내 등 뒤를 막 지나간다고? 내가 짐을 서너 시간 동안 내린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짐칸 문을 열고 가방 손잡이 잡았는데 등 뒤를 스치는 감각에 놀라서 지나간 승객을 쳐다보고 더더욱 경악하고 말았다.


나는 사실 특정 연령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점잖아야 할 나이대이건만 내가 본 대다수의 해당 연령대 어른들은 다들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만약 내 등 뒤로 지나간 승객이 해당 연령대의 사람이었다면 아마 놀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승객들은 무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었다.


아니! 여기서 좀 더 빨리 내려서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짐을 내리는 앞 열 승객의 하차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거지?? 너무나 어이가 없고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너무 당황했으나 아마도 당황한 사람은 나뿐이 아닌 듯 내 옆 자리에 앉았던 가족들은 자신들이 좌석에서 나갈 시간을 주지 않는 뒷 열 승객들을 감지하고는 매우 다급하게 줄을 끊어 겨우 하차 행렬에 동참했다.


오랜만에 하는 즐거운 여행의 시작이 매우 불쾌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매너 없는 행동을 하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친구에게 '암담한 조국의 미래'가 여기 모여있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내뱉었다. 나이 든 어르신이 그러면 뭔가 나 스스로 납득하도록 어떤 이유라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날 밀치고 지나간 그 승객들의 연령대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즐거워야 할 여행의 시작부터 매우 인류애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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