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 비용

한순간이나마 인류애를 기대해 본 나에게 치어스

by 플로터

나는 꽤 자주 멍청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단어를 말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에피소드는 유효 기간이 6개월 미만인 여권으로는 필리핀을 갈 수 없다기에 공항에서 급히 만들어야 했던 긴급 여권, 꽤 신선하고 재미난 경험이라 슬픔보다는 더더욱 가벼워진 지갑에 대한 쓸쓸함이 더 컸다. 그리고 마치 고정 지출처럼 꽤 자주 지불하는 쓸데없는 쇼핑 비용. 이것저것 살펴보며 100원이라도 싼 제품을 찾다가 어느 순간 무엇에 홀린 듯 왜 샀는지 모르겠는 게다가 다른 제품에 비해 비싸기까지 한 품목들을 구입하는 몇몇 실패 아이템들이 대표적 멍청 비용에 속한다.


스승의 날이라고 하지만 딱히 챙겨주는 곳은 일하는 업체밖에 없었다. 현물이 아니라 적당히 성의를 표현하는 금액의 음료 상품권으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글로벌 브랜드의 샌드위치와 음료 세트였다. 나는 사실 그 브랜드를 불매하고 있다. 불매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나 자신이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타 카페에 잘 안 가게 되는 것이 최근의 가장 큰 이유이고 과거 불매 이유의 첫 번째는 내가 사는 곳에 해당 브랜드가 없었는데 때마침 인종 차별 문제가 여러번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어도 자주 가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사실 그렇게 맛이 훌륭하지도 않다는 생각이라 딱히 선호하지 않기에 해당 쿠폰을 팔기로 결심했다. 새벽 티비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얼른 쿠폰을 판매 사이트에 등록하고 다시 티비를 보다 핸드폰을 보니 그 시간 치고는 놀라울 만큼 채팅이 많았다. 난 분명히 바코드 부분을 잘라서 올렸는데 무엇이 잘못된 건지 바코드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올라가서 몇몇 분들이 나를 걱정해서 얼른 쿠폰을 내리라고 온 채팅.


쿠폰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걱정보다 창피함이 앞섰다. 그리고 고맙게도 날 걱정해 주는 모르는 사람들의 채팅을 보며 어쩌면 '아무도 이 공짜 쿠폰을 사용하지 않을지도'라는 인류애 넘치는 상상을 했다. '그래!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웃기는 소리였다. 사실 나였어도 확신은 못하겠다. 내가 만약 저런 쿠폰을 본다면 정말로 100%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을까? 오늘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래도 혹시 인류애가 넘치는 동네일 수 있으니 확실히 확인하고 싶어서 굳이 애써 해당 카페에 가려고 하는데 친구가 쿠폰 등록을 해서 알아봐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근두근하며 친구에게 쿠폰을 보냈더니 '이미 등록된 쿠폰'으로 뜬다고 한다. 역시 멍청 비용이 안 들 리가 있나. 나답지 않게 너무나 거룩한 인류애를 꿈꾸었던 듯하다. 요즘 들어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인류애가 샘솟을 일이 없는 나날들이어서 어쩌면 이번만큼은 하고 바랐던 건지도.


어차피 먹지 않을 거였고 내 돈 내고 구입한 것이 아니었으니 혹시 누가 이미 사용했더라도 멍청 비용이라 생각하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결심했으나 역시, 조금 슬프다.

오늘따라 샌드위치가 너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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