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창피함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된 날
학년이 바뀌고 저녁마다 잠이 일찍 왔다.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면 눈이 한 번에 번쩍 떠졌다.
작년에는 엄마가 빗질을 해줄 때마다 아파서 몸을 꼬았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엄마 무릎 사이로 쏙 들어갔다. 선생님 앞에 앉았을 때 동그란 앞머리가 가라앉아 있으면 속상하니까, 엄마가 뽕을 띄우기 편하게 고개를 더 바짝 숙였다. 거울 속 내 모양이 어제보다 예쁜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매일 아침 책을 한 권씩 들고 오셨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른 자세를 하기 위해서 엉덩이를 움직였다. 지난번에 읽어주신, 찐빵이 먹히기 싫어서 도망가는 얘기는 한동안 내 꿈에 나올 정도였다.
오늘도 어떤 책일지 궁금해서 자꾸만 티비를 쳐다봤다. 선생님이 티비 문짝을 열고 단추를 누르면, 판 위에 올려둔 책이 티비 화면 가득 커다랗게 나왔다. 선생님 목소리는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동물이 되기도 하고 인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헉" 소리가 나올 뻔해서 입을 손으로 막았다가, 친구들이 웃을 때 겨우 같이 웃었다.
티비 속 책은 꼭 만화 영화 같았다. 하지만 아침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선생님이 책을 덮을 때마다 입맛을 다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집에서 책을 한 권씩 가져오라고 하셨다. 우리 집 방 안에는 엄마 키보다 큰 책장이 있고 거기엔 책이 꽉 차 있었다. 한 권만 골라야 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민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무슨 책을 가져갈까 생각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일 책 가져가야 하는데 엄마가 골라서 가방에 넣어주면 안 돼?"
엄마가 고르는 책이라면, 선생님도 분명 좋아할 것이고 우리 반에서 가장 멋진 책이 될 거라고 믿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재워줬다.
다음 날 아침, 가방 안에는 노란색 바탕에 작은 그림이 그려진 책이 들어있었다.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이 읽고 아끼던 책이었다. 역시 엄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엄마 앞에 바짝 앉아 앞머리를 둥그렇게 말았다. 가방 속의 묵직한 노란색을 느끼며 학교로 향했다. 콧노래가 자꾸 나왔다.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책을 걷으셨다. 가져온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책이 조금밖에 안 쌓였다. 선생님은 그중에서 내 노란 책을 집어 드셨다. 선생님이 책을 기계 위에 올리고 티비를 켜셨다. 제목을 읽어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책을 휙 뒤집으셨다. 그러더니 무심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권장도서가 5세에서 7세네? 이건 동생들이 보는 책이구나."
선생님의 한마디에 나는 귀가 먹먹해졌다. 선생님께서 내 책 읽기를 당장 멈추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치한 줄 전혀 몰랐던 책 내용이 이제는 너무 유치하게만 들려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만 싶어졌다.
독서 시작 전까지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노란색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색이 되어 내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창피했다. 정말 창피했다. 그런데 창피하다는 감정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건 맞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섬세하고 날카로운 무엇이 나를 찔렀다.
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인지, 울고 싶은 마음인지 아홉 살의 나는 도무지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 이름 모를 감정은 어느새 뜨겁게 차올라 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야 나는 안다. 그때 나를 그토록 아프게 찔렀던 그 낯선 감정의 이름이 '수치심'이었다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선생님의 무심한 팩트 한마디에 나의 마음이 발가벗겨졌을 때 느끼는 그 얼얼한 감각. 선생님은 평소처럼 모든 책의 뒷부분을 확인하시는 습관이었겠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말'에 베였다.
오랫동안 나는 그날의 기분을 그저 '창피함'이라고만 알고 살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그날의 공기를 다시 떠올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감정의 진짜 이름을 깨달았다.
그것은 창피함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날카롭게 나를 파고들었던, 바로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종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극대화되곤 한다.
성장은 때로 다정한 보살핌이 아닌, 쓰라린 상처 속에서 움트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를 키워낸 건 이토록 시리고 무거웠던 상처의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