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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우 Feb 28. 2023

도둑은 과연 누구일까?

< 라스트 홈 >으로 보는 현대사회

최근 안타까운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 것) 매수한 부동산 물량의 임의 경매 신청 건수가 13% 증가했다는 기사인데요. 잠깐 ‘부동산 임의 경매’에 대해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현금 1억 원을 가진 A 씨는 2억짜리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에 아파트를 담보로 1억 원을 대출하였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였고 은행은 A 씨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파트를 경매에 넘겨 매각합니다. 그리고 A 씨에게 받지 못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동산 임의 경매’입니다. 


임의 경매 물량이 늘어난 것에는 금리 인상과 관련 있습니다. 7번 연속으로 금리 인상 결정이 나면서 대출 이자가 전보다 두 배 이상 올랐고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영끌족은 바닥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대비되게 이번 금리 인상으로 웃음꽃이 활짝 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금융권은 막대한 수익을 보았는데요. 5대 금융그룹에서는 작년 한 해 이자 이익만 50조를 벌었고 1조 원대가 넘는 성과급을 책정했다고 합니다.



라스트 홈(99 homes) 포스터 / 왼쪽 : 릭 카버 역(마이클 셰런), 오른쪽 :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잘 보여준 영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바로 2016년 개봉한 영화 라스트 홈(99 homes) >입니다. 영화는 약자를 대변하지도 강자를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로 인한 개인들의 모습과 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무엇일까요? 

Sub(낮은) + Prime(우수한) + Mortgage(주택담보대출) 즉, 저신용자 주택담보대출을 말합니다. 2000년 초 미국 부동산 시장은 버블로 인해 가격이 끊임없이 올라가자 저신용자에게도 규제 없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었습니다. 2006년 미국 주택 시장 버블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미국 부동산 시장에 낀 버블은 점차 꺼져갔습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저신용자 주택담보대출)를 받은 사람들은 부채를 갚지 못했고 부실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다량 보유했던 당시 세계 4대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는 2008년 9월 파산을 선언하였습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선언은 전 세계 대공황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대공황의 여파는 2010년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영화는 부동산 거물 중개인 ‘릭 카버(마이클 셰넌)’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긴 성실한 청년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 두 대비되는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둘의 첫 만남은 내쉬의 집이었습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퇴거 명령을 받은 내쉬는 카버와 보안관들에 의해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카버의 일을 내쉬가 도와주게 되며 카버는 내쉬에게 자신과 비슷한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카버가 내쉬에게 정식으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던 날, 내쉬는 카버가 돈을 버는 방식이 정부의 돈을 이용해 차익을 남기는 것임을 알고 도둑질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에 카버는 내쉬에게 “네가 2006년 주택 담보로 35000달러를 빌리고 갚지 않았어. 그건 도둑질 아닌가?”라고 답합니다. 이에 내쉬는 “그건 도둑질이 아니라 대출이잖아요. 갚을 생각이었지 훔친 게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이에 카버는 말합니다.


“은행은 그렇게 보지 않아. 넌 돈을 빌려서 안 갚았고 은행은 널 심판한 거야.”



임의 경매로 집을 빼앗긴 영끌족은 은행이 심판하였다는 것인가?


카버와 내쉬의 대화가 정답은 아니지만 은행의 입장에서 이자를 갚지 못한 영끌족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은행이 빌려준 돈을 제때 갚지 못한 도둑에 불과했습니다.  단어가 공격적이지만 카버와 내쉬의 대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카버와 내쉬의 대화처럼 이번 금융권 성과급 잔치에 대해서 양 측 입장을 비교해 봤습니다. 은행의 성과급 잔치가 공분을 산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금리 인상으로 피눈물을 흘린 것은 다름 아닌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배가 부르게 된 금융권에 대한 시선이 분노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왜 은행은 정부의 성과급 환수에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일까요? 금융권은 금리 인상이 정부의 결정이며 은행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뿐이라는 입장입니다. 또한 은행은 분명히 주식회사이며 사기업이라는 주장입니다.


은행을 사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은행은 주식회사이자 사기업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은행의 성격입니다. 한국금융원 은행연구실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은행이 인허가 체계 속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내야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도 생기기 때문에 완전 경쟁 체제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때문에 은행과 일반기업은 다른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법적인 인가 요건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사실상 독과점 구조가 유지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공공성이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정부가 외환위기 당시 금융 시스템 붕괴를 우려하여 은행에 공적자금을 수혈하고 안전망을 제공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성과급 책정에 앞서 은행권이 민생 안정을 위해 투자하는 등 공공에 대한 의무를 보여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후 카버와 내쉬는 점차 승승장구하며 올랜도 전역의 집 1000채를 매매할 수 있는 빅딜을 얻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생깁니다. 조기 퇴거를 권했던 프랭크 그린이 소송을 걸었고 카버 측이 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집단 소송이 걸릴 것이고 빅딜은 물 건너갑니다. 카버는 위조된 문서를 재판에 제출하였고 결국 프랭크 그린은 철거당하게 됩니다. 그린은 총으로 퇴거 조치를 하러 온 카버와 내쉬 그리고 보안관들을 총으로 위협합니다. 이에 내쉬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위조된 문서를 법정에 제출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그린은 참담한 표정으로 총을 내려놓습니다. 내쉬는 경찰차에 타게 되고 그린의 아들은 내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사라집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저는 영화보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카버를 욕하며 카버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부를 쌓은 내쉬도 더 좋은 집을 사고 사교계 모임에도 참석하는 등 부자의 삶을 즐깁니다. 카버를 꿈꾸는 영끌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영끌로 집을 사고 주식을 투자하는 것 또한 돈을 벌기 위함입니다. 물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투자 실패의 책임을 사회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건 저축하며 소비를 아끼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의 귀재이자 세계적인 부호인 ‘워런 버핏’은 재산이 149조임에도 아침마다 투자가 잘된 날은 맥도널드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가가 떨어진 날에는 가장 싼 메뉴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저축하는 습관을 가지고 빚을 피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히 신용카드는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투자는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해야만 합니다! 스스로를 불행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투자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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