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데보라 >로 보는 연애 이야기
최근 종연한 드라마 <보라! 데보라>의 제목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로마시대 정치가이자 장군 율리시스 카이사르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젤라 전투에서 승리한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가 연애물이기에 연애도 카이사르의 말처럼 '만났노라, 썸 탔노라, 연애하노라'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 연애는 만나고 재고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등 답답하고 복잡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통하기도 어렵지만 용기 내서 표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사실 드라마는 마지막화까지 답답해서 죽을뻔했습니다. 서사를 기승전결로 보면 기승만 계속되고 마지막화에 와서야 전결로 마무리된 꼴입니다. 너무 질질 끄는 서사 방식에 지쳐서 그랬을까 마지막화까지 보는 것이 대학교 레포트만큼이나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속 터지고 답답한 연애 이야기가 현실적인 연애를 담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연보라(유인나)는 연애 전문가입니다. 연애에 대한 명쾌한 해결방안을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연애 코치로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며 유명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디오 코너에서는 "데보라 says~"라는 말과 함께 한 단어로 상황을 정리해 줍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애에서 데보라가 말하는 법칙들은 소용없었습니다. 그녀의 3년 만난 남자친구 노주완(황찬성)은 평소 사촌동생이라고 소개했던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완벽해 보이던 그녀의 연애는 끝이 납니다.
주완의 바람으로 힘들어하던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 취해 큰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커리어도 함께 무너집니다. 힘들어하는 보라 옆을 지켜주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바로 출판사 '진리'의 부대표 이수혁(윤현민)입니다. 처음에는 우연으로 마주쳤지만 이후 보라의 책 출판 및 기획을 수혁이 맡게 되며 둘은 계속되는 만남을 가집니다. 둘은 서로 일로 만난 사이라는 명분하에 끌림을 부정하지만 피할 수 없었습니다. 코인노래방에서 둘은 분위기에 끌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격정적인 키스를 합니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둘의 키스 이후 관계의 진전은 전혀 없었고 고구마를 잔뜩 먹은 묘한 썸을 이어갑니다.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보라는 수혁에게 고백했지만 수혁은 미지근한 반응으로 둘의 사이를 끝냅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전남친 주완이 보라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렸고 백마 탄 기사처럼 등장한 수혁은 답답한 썸 관계를 청산하고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귀고 난 이후 수혁은 고삐가 풀린 것처럼 애정공세를 합니다. 평소 차갑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마음을 여니까 이렇게 변하는가 싶습니다.
드라마로는 꽝인 줄 알았던 < 보라! 데보라 > 알고 보니 무섭게도 현실적인 연애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남의 연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답이 보이는 것 같지만 당사자들은 잘 모릅니다.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못 본다고 연애도 자기 연애가 제일 어렵습니다. 데보라 says ~ 와 같이 연애는 한 단어로 정리되기 어렵습니다. 연애의 전문가가 있을까요? 만나고 있는 연인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