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Dec 13. 2022

식충이의 반론

-저기, 윗집 한 박사님 딸은 애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러 다닌다더라. 능력이 좋아서 애 낳고도 직장 생활하니 참말로 대단하다 아이가. 요새는 남자 하나 벌어서는 못 먹고사는 세상인데 일 안 하고 집에서 띵가띵가 노는 여자들 보면 내는 이해가 안 간다.


  잊을 만하면 엄마는 이 말을 하였다. 별 의미 없이 건넨 안부 전화에도, 엄마가 보내준 김치가 맛있다고 한 감사 전화에도 엄마는 꼭 저 말을 덧붙였다. 내가 심드렁하게 그래, 한 박사님 딸 참 대단하다고 덧붙이면 뭐가 그리 부아가 치미는지 요즘 밖에서 돈 벌지 않는 여자들은 식충이라는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럼 엄마 딸은 식충이란 말이냐며  엄마와 한바탕 싸우고 전화를 끊곤 하였다.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비단 엄마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5년 동안 아이를 낳고 살다 오랜만에 시댁 근처로 이사를 오니 시어머니와 종종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댁을 찾아가면 시어머니께서는 묘하게, 정말 아주 묘하게 나를 긁는 말씀을 하셨다. 이번엔 어머님 친구 분인 명자 이모님의 며느리를 빗대면서.


-저~기 명자 이모 봤제? 예전에 느그 태워줬던 아. 그 아 며느리는 간호산데 아를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직도 일하러 다닌다이가. 참말로 대단하제? 어찌 그리 야무진 며느리를 봤는지. 내 놀랬다이가.


하아. 이 말씀을 날 볼 때마다 하시니 이제 난 어머님께서 “저~기 명자 이모 알제?”라고 물어보실 때마다 내가 먼저 "아. 그 며느리가 간호사이신 분이요?"라고 되물어볼 정도였다. 그럼 어머님께서는 또 내 대답을 가로채시며 그 집 며느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요즘 세상에선 남자 혼자 벌어서 못 산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사실 나도 안다. 두 분이서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요즘 세상엔 남자 혼자 벌어서 못 사니 너도 이제 애도 좀 컸으니 나가서 돈 좀 벌어라. 이 말씀이시지.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단 하루도, 아니 단 한 시간도 아이 한 번 봐주신 적 없는 분들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듣는 입장에서 괜스레 욱! 함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양가 부모님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친정엄마가 그토록 입이 닳도록 말하는 한 박사님 딸과 시어머니가 그토록 부러워하시는 명자 이모님 의 며느리 뒤에는 든든한 친정과 시댁이 있음을 나는 안다. 왜냐면 주말마다 한 박사님 딸이 친정에 있는 걸 내가 봤고 명자 이모님께서는 한동안 간호사 며느리 대신 쌍둥이 손자들을 봐주기 위해 집을 비우셨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시댁과 친정이 없다. 아이가 아프거나 뜻하지 않은 가정보육을 하게 될 일이 생기면 오롯이 나 홀로 돌봐야 하는 신세다. 친정 엄마는 이미 오빠네 아들인 조카를 전적으로 돌봐주고 있으시고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몸 이곳저곳이 아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우리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갈 수 있겠는가?


특히나 환절기마다 감기와 폐렴을 앓고 사는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간 날보다 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어디 그뿐이랴. 22개월 동안 홀로 가정보육을 하다 드디어 어린이집 입학이 정해진 날, 코로나가 터져버려 혜민이는 어린이집을 6개월도 체 다니지 못하였다.

거기다 남편이 교대 근무였기에 나는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하다못해 명절에도 홀로 아이를 돌보는 날이 많았다. 일 사정상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남편인데 내가 만약 일을 하러 갔을 때 아이가 아프게 된다면 난 매번 연차를 써야 하는데 어느 회사가 이런 나를 써주겠는가?

 

내가 이 말을 하면 시어머니는 “그럼 너희 엄마가 애 봐주면 되지. “ 하고 친정엄마에게 슬쩍 토스를 해버리시고 친정 엄마는 짐짓 못 들은 척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어물쩍 넘겨버렸다.

돈 버는 딸과 며느리는 적극 환영하지만 막상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면 나 몰라라 하시니 나는 그저 답답할 수밖에.




   한 번은 두 분의 성화에 나도 화가 나서 덥석 일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아이의 여름방학 2주 전이였고 일을 구한 곳에서는 2주 동안 (아이의 여름방학기간) 마냥 쉬게 해 줄 수 없으니 일주일만 휴가를 줄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하였지만 막상 엄마는 나의 부탁을 받으니 마음이 혼란스러운 듯 아빠에게 물어보겠으니 일단 전화를 끊으라는 말만 하고는 그 이후에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나의 부탁을 또 거절한 것이다.

어머님은 애초에 부탁을 드릴 상황도 아니었다. 몸이 너무 안 좋으셔서 아이를 돌보다 쓰러지실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의 남편. 생각지도 못한 나의 취업 때문에 남편은 매우 당황해했다. 물론 취업 준비를 할 거라고 말은 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붙을 줄은 몰랐기에 남편의 회사 스케줄을 쉽게 바꾸기 어려웠다.

남편이 회사에서 늦든, 교육을 받으러 멀리 떠나든 집에 내가 언제나 있었기에 아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당장 나의 퇴근 시간이 7시로 정해지니 매일 5시 이후에 남편이 퇴근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했다.

거기다 다다음주 아이 어린이집 방학에 연차를 내야 한다니. 남편으로서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남편은 나에게 왜 갑자기 일을 구하냐고. 그냥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면 안 되냐고 부탁하였다.


고민 끝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포기하였고 아이는 그 이후에 바로 코로나에 열 감기까지 겹쳐 거의 한 달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제야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는 아직 아이가 어리긴 어리다며 나에게 몇 달간은 취업하라는 눈치를 주지 않으셨다.




  사실 나도 일을 하고 싶다. 남편이 돈으로 눈치 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번 돈으로 한 번 내 가계부를 꾸려보고 싶다. 아이 유치원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삶도 물론 행복하지만 내 일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을 해보는 상상도 종종 한다. 언제든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기 위해 편한 옷을 입고 다니다가도 종종 일 하는 엄마들이 코트를 멋지게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이 참 그렇다. 누구는 그게 변명이라고 하지만, 또 정말 그렇게 들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막상 현실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레 아이의 손을 잡게 된다. 돈도 중요하고 내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아이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니까 말이다.


일을 하러 나가고 싶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엄마들이 나 이외에도 참 많다. 나는 나를 포함 그들이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도 우리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지 않으니까. 아무도 우리들의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니까 우리끼리라도 함께 알아주자고. 서로 칭찬해주자고 하고 싶다.

요즘 세상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식충이라지만. 식충이라기엔 우리 전업들도 티 나지 않게 바쁜 삶을 산다. 우리네의 삶을 알아달라고 부탁을 하진 않겠지만 무시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는 건 욕심인 걸까?


이상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식충이의 반론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 엄마의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