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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Dec 23. 2022

오지랖에 대하여

  결혼을 하고 4년 동안 아이를 갖지 않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결혼을 했는데 왜 아이를 갖지 않냐 ‘ 였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말을 하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아이를 갖지 않았던 시기에는 정말로 그런 말을 꽤나 많이 들었다. 오죽하면 친정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에게도 이런 말을 들었다!


미혼 시절부터 많이 봐왔던 할머니이기에 늘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쳤는데 왜 나만 보면 애를 안 낳느냐고 난리이신지. 한 번은 나를 보고 화가 난 듯이 시집을 갔으면 밥값을 해야 하는데 밥값도 못해서 어디다 써먹겠느냐고 하셔서 진심으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아니, 애를 밥값 하려고 낳는 것은 아니잖아요?)

매번 아이 이야기 할 때마다 그저 웃으면서 듣고 넘겼는데 그 말은 너무 기분이 나빠서 나도 모르게 정색하며 “할머니, 그건 아니죠.”라고 말하니 머쓱하신지 그냥 들어가셨는데 그 이후에도 나만 만나면 임신 이야기를 끝나지 않으셨다.


4년 만에 아이를 임신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잔소리가 없겠지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임신 중기가 지나며 배가 봉긋하게 나오기 시작하자 이제 아들이냐 딸이냐로 말들이 오갔다. 시어머니는 아들이라고 하자 뛸 듯이 기뻐하셨는데 막상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뱃속에 아이가 아들이라고 하자 뭐가 그리 아쉬운지 한 마디씩을 더했다.


하루는 에어컨 필터 교체 겸 청소를 하기 위해 업체를 불렀는데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께서 필터 청소를 하시며 나에게 아들이냐 딸이냐를 물으셨다. 별생각 없이 아들이라고 대답하였더니 아주머니는 너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고, 딸이 아니어서 어떡해.”라고 말씀하셨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주머니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그때부터 엄마에겐 딸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일장연설을 하셨고 나는 에어컨 청소가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의 연설을 의미 없이 들어야만 했다. 물론 뱃속의 아들과 함께 말이다.



  

  아들을 낳은 뒤 이제 오지랖이 좀 끝나나 싶었는데 정작 낳고 나니 주위의 오지랖은 가히 하늘을 찔렀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아들 하나 낳았으니 얼른 딸을 낳으라는 말. 이제 아이가 목을 겨우 가누어서 아기띠를 하고 다니는 시기인데 나를 보고 딸을 얼른 낳으라니. 아무리 별 의미 없는 말이라지만 그 당시 몸도 마음도 피폐한 나에겐 언어폭력처럼 들렸다.


가끔 택시를 타면 그러한 오지랖은 더 했다. 특히 요즘 같은 딸 우선순위 시대에는 마치 딸을 못 낳아서 큰일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꼭 들었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엄마가 외로우니 꼭 딸은 있어야 한다는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가 점점 더 크면서 유모차로 태우고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자 관심을 가장한 오지랖은 한층 더 강해지고 만연해졌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라 신발을 안 신기고 나가면 왜 애한테 신발을 안 신기느냐고 야단, 더운 여름날 아이를 맨다리로 내놓고 나가면 애 살 타는데 왜 이렇게 맨다리로 나가느냐고 야단, 어떤 날은 유모차 끌고 다니는데 웬 할머니가 다가와 “아이고, 애 엄마가 애가 이리 자고 있는 것도 모르냐”라고 하시 길래 뭐지? 싶어 앞을 봤더니 아이가 잔다고 목이 조금 꺾여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이 오지랖이라는 것이 모두 나쁘게 다가오면 나도 맞서서 싸울 수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다가오셔서 내 마음을 약하게 해 놓고는 본인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말씀하시고 재빨리 가버리니 나는 마치 갑자기 훅을 얻어맞은 권투선수 마냥 얼이 빠진 채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도 어느 정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와 시간이 생기게 되자 그분들을 퇴치할 수 있는 내공도 생기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장한 오지랖이 가장 심한 세대는 60대의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인데 놀이터나 엘리베이터 같이 자연스럽게 말을 틀 수 있는 공간에서 종종 이런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셋째 손녀를 낳은 딸 대신 두 손자를 돌보시는 할머니와 함께 놀이터에 있었는데 역시나 나에게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며 설득 아닌 설득을 시작하셨다. 우리 아들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며 하나 낳아서는 외로워서 어떻게 키우냐고 말씀을 하시는데 뭐, 이런 일이 한두 번 아니라 처음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엄마가 힘들어서 동생 안 낳아주면 엄마가 죄받는다고 하시 길래 나도 모르게 “에이, 할머니. 아까 할머니 따님한테는 무슨 애를 그리 많이 낳느냐고 뭐라 하셨잖아요?” 장난스레 물으니 그제야 입을 다무셨다.


아닌 게 아니라 나를 만나서 방금 전까지 당신 딸은 요즘 세상에 애 하나도 겨우 낳는데 셋이나 낳는다고 뒷 담화를 그렇게 하셨으면서. 나에게는 동생 하나를 더 낳아줘야 한다고 주장하시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남편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어른들이 매번 할 말이 없으니 괜히 인사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두둔하기 바빴다. 젊은 사람이 반갑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니 그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한 것이라고. 세상을 살면서 이 말 저 말 다 비꼬아 들으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나도 그분들이 그저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님을 어느 정도 안다. 그러나 대화는 말하는 나보다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관심도 듣는 내가 기분이 나쁘면 간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분들을 보며 다짐한다. 시간이 흘러 나 또한 나이가 들어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었을 때, 젊은 엄마들을 보며 오지랖을 부리기보단 그저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를 더 보태기로. 남의 가족계획에 왈가왈부하기 전에 그저 아이가 예쁘다는 말 한마디로 대화를 끝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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