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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Dec 28. 2022

지긋지긋한 감기와의 전쟁

  아이가 ‘또’ 감기에 걸렸다. 한 달 내내 감기를 달고 살다 이제야 항생제를 끊은 지 3일 됐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열이 나니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아. 아무리 아이는 아프면서 큰 다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짜증도 조금 났다.


씻지도 못한 채 부랴부랴 운동화만 신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볼이 빨갛게 익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와! 우리 엄마가 오늘 처음으로 1등으로 왔어요! 혜민이의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소리를 질렀다. 천지도 모르고 팔랑팔랑 뛰는 아이를 보니 아까 느꼈던 짜증이 미안해졌다.


작은 동네에는 소아과가 꼴랑(?) 두 군데뿐이었고 그마저도 똑딱 같은 어플 접수는 모두 마감이었다. 놀이터만 보면 뛰어가고 빵집만 봐도 뛰어가고 공만 봐도 뛰어가는 다섯 살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병원은 전쟁터였다.

몇몇은 링거를 꽂고 있었고 몇몇은 길고 긴 대기 시간에 지쳐있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하도 많이 병원에 드나드니 간호사도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혜민이 왔어요? 아이고. 지금 대기 번호 37번이라서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 어쩌죠?


대기번호 37번이라니. 아찔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힘없는 사람이 기다려야지. 아이의 체온을 재보니 역시나 38도였다. 간호사는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고 나 또한 동의하였다. 8월에 코로나를 겪었지만 요즘 재확진이 많다고 하니 안심할 수 없었다. 아이의 두 콧구멍에 사이좋게 (?) 독감과 코로나 검사 면봉을 집어넣었고 아이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어른도 할 때마다 아픈데 이 조그만 아이는 얼마나 아플까.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검사가 끝나고 난 뒤 무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아이는 점점 힘이 빠지는지 내 무릎에 누워 있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나에게 힘없이 “엄마 우리는 언제 집에 가요?” 물었다. 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선생님 만날 수 있다고 말하였지만 사실 나 또한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몰랐다. 지쳐서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보자니 이런 작은 동네에 나와 아이를 데리고 온 남편에게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 다시는 남편에게 집을 맡기지 않으리라 복수의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아이의 이름이 불렸다.




  다행히 아이는 독감도, 코로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열이 나는 걸까? 의사 선생님은 아마 지금 독감이 너무 초기라서 음성이 떴을 수도 있다며 오늘도 고열이 심하면 내일이라도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네? 내일 또 오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정신이 아득하였다.

분명 해가 쨍쨍할 때 들어갔는데 병원을 나오니 벌써 어스름 저녁이었다. 저녁이 되자 바람은 더욱더 차가웠고 아이는 힘이 드는지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 거렸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울적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플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길고 긴 자책감의 꼬리가 뱅글뱅글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끝을 알 수 없는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몸이 아프니 짜증을 많이 냈다. 조금만 내가 안 보여도 짜증, 자기 마음대로 레고가 만들어지지 않아도 짜증, 텔레비전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화를 하지 않아서 짜증이 난다고 했다.

아픈 아이와 하루 종일 있으니 나에겐 단 10분의 커피 타임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5분의 화장실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를 찾았고 자신의 옆에만 있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먹인 뒤 약을 먹이고, 아이와 좀 놀아 주다가 또 점심을 챙기고 약을 먹였다. 30분마다 체온계로 열을 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아이는 우유를 쏟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또 잠시라도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아이는 레고 장난감을 다 쏟아 놓고는 엄마와 함께 놀아야 한다고 성질을 부렸다.


낮잠이라도 자주면 참말 좋으련만. 아이는 절대 자려고 하지 않았다. 왜 해가 있는데 잠을 자야 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질문하였다. 엄마 너무 힘들어. 제발 잠 좀 자자. 사정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올라가 배를 타고 있다며 꿀렁꿀렁 움직였고 내가 움직이지 않자 내 눈을 까뒤집으며 눈을 뜨라고 협박했다.

오전 오후 내내 아이가 아프니까 참아야 한다고 억누르던 나의 분노 게이지가 그때 터져 버렸다.


-그렇게 자기 싫으면 자지 마! 엄만 갈 거야!


아픈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곤 안방을 나와 버렸다. 하아. 화내면 안 되는데. 당연히 후회가 곧바로 따라왔다. 남편에게 너무 힘들다고 카톡을 보냈지만 늘, 언제나, 항상 바쁜 남편은 내 카톡을 읽기만 하곤 답이 없었다. 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외로웠다.


알고 있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아픈 아이를 하루 종일 홀로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픈 어른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도 힘든데 아이는 오죽하겠는가. 아이가 따라 나오지 않자 슬그머니 안방 문을 여니 내 자리에서 웅크리고는 자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몸이 더 작아 보였다.



 

  아이가 잠이 들자 나는 그제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너무 귀찮아서 그냥 매운 라면 하나를 끓여 먹는데 아이가 다시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엄마가 없어서 잠이 들 수 없었다며 우는 아이를 안아보니 몸이 뜨거웠다. 아이의 체온은 38.5도였다.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의 기로에 섰다. 의사는 오늘도 고열이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벌써 진료 접수는 마감이었고 억지로 가려고 하면 다른 큰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거길 가서도 언제 검사를 받을지 몰랐다.

이 모든 것의 결정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무리해서라도 아이를 데리고 다른 큰 병원으로 갈지. 아니면 좀 더 내가 데리고 있다가 내일 병원으로 갈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이런 선택의 기로에 참 많이도 섰는데 그때마다 나는 갈팡질팡 고민하였다.

내 일이라면 모 아니면 도라고 외치며 후딱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아이의 일인지라 결정을 내리기 무서웠다. 만약 나 때문에 아이가 더 아프면 어쩌지? 모든 선택의 순간에는 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일단 아이를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다행히 해열제를 먹이니 열이 잡혔다. 아이의 컨디션도 다시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이는 다시 기운이 나는지 만화를 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 모습이 귀여워 함께 춤을 쳤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흐르니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이다.




  나는 내가 우리 가족의 스페어타이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기억이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는데 이렇게 만일의 사고가 터지면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나도 사실은 지치고 힘들다. 때로는 버겁기도 하다. 나도 누가 좀 도와줬으면 싶다. 내가 아이의 병원에 잠깐 접수하러 갔을 때 누군가가 집에서 아이를 잠시 봐줬으면. 나 밥 먹을 때 잠시라도 아이와 함께 있어줬으면. 이렇게 찰나의 순간마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페어타이어에겐 또 다른 스페어타이어가 없는데. 오롯이 나 홀로 버티는 수밖에.


오늘도 나는 밤에 보초를 서며 아이의 열을 재야 할 것 같다. 1시, 3시, 5시에 일어나 열을 재야 하니 차라리 자지 않는 것이 편해 그냥 밤에 뒤척거리며 아이의 이마나 만져보며 버텨야겠다. 얼른 아이가 낫길 바라면서도 시간이 약이라는 명언을 되새기며 오늘도 밤을 지새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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