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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an 12. 2023

아이의 겨울방학이 끝났다.

엄마들의 극기 훈련이라 불리는 '겨울방학'이 드디어 끝났다. 아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쏘쿨하게 유치원 버스에 몸을 실었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장착하고 아이에게 사랑한다며 손하트를 날린 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함께 등원시키는 아이 엄마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내 표정을 보고는 카페 매니저님이 드디어 방학이 끝났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수줍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면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 어떤 술보다도 시원하고 달았다. 그렇다. 정말로 겨울방학이 끝난 것이다. 올레! 만세 삼창!!! 소리 질러!!!




  사실 이번 겨울방학은 정말, '고행과 역경의 비탈길'이라 불릴 만큼 힘들고 길었다. 다른 엄마들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아이가 겨울방학 전부터 열감기 기운이 있어서 내내 가정보육을 하였기 때문이다.

목요일부터 방학 시작인데 아이는 월요일부터 열 감기 기운이 있었다. 아이의 뜨끈뜨끈한 이마를 만진 순간, 나는 망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번 겨울방학은 첫 단추부터 아주 심하게 잘못 달았던 것이다.

체온계와 해열제로 가정보육을 보내고 있을 때 풍문으로 유치원에서 겨울방학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우리 아이는 그렇게 겨울방학을 맞이하였다. 거기서 또 하나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 아이에게 감기가 옮아버린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정말 진심으로 궁금한 점이 남편은 아이와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잠도 내가 아이와 함께 자고, 병원도 내가 아이와 함께 가는데. 왜, 도대체 어떻게, 남편이 감기에 옮은 것인지. 나는 사실 지금도 이 점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절대 남편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무튼, 남편은 너무나 지독하게 감기에 옮아버려서 마치 피죽도 못 얻어먹은 닭처럼 고개를 푹푹 수그리고 다니고 있는데 그 모습이 퍽 불쌍하기도 하다가 짜증도 나다가 그랬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육아에 동참하지 않는 남편을 보는 기분은 대학교 팀플에 참여하지 않는 동기를 보는 얄미움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영 육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동력에 꼭 필요한 인력이기에 남편은 아이와 여행을 갈 때마다 꼬박꼬박 참여를 하였고 아픈 티를 무척이나 많이 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내심이 목 끝에 올라왔을 때는 어느샌가 나타나 나 대신 아이를 봐주기도 하였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총 14일의 겨울방학 동안 나와 아이는 참으로 질기게 붙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을 하던 3살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둘이 붙어 있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린 오래 붙어 있었다. 아이는 끊임없이 나를 붙잡고 "엄마 우리 뭐 하고 놀지? 뭐 하고 놀까?" 물어댔다. 하도 그 말을 들으니 가만히 있어도 마치 옆에서 "엄마 우리 뭐 하고 놀지?"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 나름대로 아이를 위해 과학놀이 세트, 집콕 놀이 세트, 플레이 도우 등등 여러 가지 놀이 세트를 구비해 놨지만 아이는 쉽게 심드렁해했다. 10분 놀고 나면 "엄마 우리 또 뭐 하고 놀지?"를 연발해 대니 나는 방학 3일 차부터 급격히 지쳐 버렸다. 가만 돌이켜 보면 아이는 사실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 하였다. 블록을 갖고 놀더라도 역할놀이처럼 끊임없이 상대방과 함께 하고 싶어 하니 나는 그 장단을 다 맞춰줄 수 없었다. 그 장단을 다 맞춰주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가 지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겨울방학을 보내다 '드디어' 나도 남편에게 감기가 옮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마지막 남은 보루인 친정집에 아이를 보내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겨울방학 동안 가장 재밌게 보낸 날로 할머니집을 기억하게 되었다.


바로 그곳에 자신과 1살 차이 나는 사촌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놀아달라고 떼써야 하는 엄마가 아니라 진짜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아이에겐 그곳이 놀이터였고 그곳이 배움터였다.

아이는 뛰어도 뭐라 하지 않는 곳에서(시골 주택이니까) 정신 수준이 자신과 똑같은 형과 함께 끊임없이 뛰고 구르고 때때론 싸우면서 하루를 보냈다. 꼭 밥을 먹어야 과자를 조금 먹을 수 있는 엄마가 없으니 하루 종일 놀면서 과자도 먹을 수 있었고 그러다 지치면 질릴 때까지 티브이도 볼 수 있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겨울방학인가!


하루 동안 아이는 마음껏 뛰어놀다가 퇴근한 아빠의 품에 안겨 집에 왔는데 얼마나 신명 나게 놀았으면 밤 8시부터 잠이 들어 있었다. 집에 있으면 밤 10시가 되어도 눈이 말똥말똥하던 아이가 말이다.

잠든 아이를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아이는 내가 놀아줘야 하는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는 이제 엄마와의 놀이보다 또래 친구와의 놀이를 더 재밌어한다는 것을, 이젠 더 넓은 사회생활이 필요한 아이임을 아이도 나도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 아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 한 뼘 더 커져 있었다.




  겨울방학이 끝나자 아이도 나도 그리고 남편도 일상을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이 너무 재밌었다며 오늘 무슨 놀이를 하였는지 나에게 신명 나게 설명하였고, 나는 그런 아이가 예뻐서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남편은 늘 그렇듯 퇴근하자마자 아이가 예뻐서 아이의 궁둥이 옆에만 붙어 있었다. 참 웃긴 게 겨울방학 기간에는 도대체 언제 방학이 끝나나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그간의 짜증, 분노, 힘겨움이 모두 옛 기억으로 흩어져 그저 좋았던 기억만 떠올랐다. 그래, 그것이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증거겠지.


다시 보통의 생활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늘 그렇듯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일상의 바퀴를 열심히 굴려봐야겠다. 공포의 내년 겨울방학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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