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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Dec 09. 2022

거북이 엄마의 다짐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또래보다 발달이 조금씩 느렸다. 뒤집기를 130일 즈음에 하더니 다른 아이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 배밀이를 시작하였다. 아이가 워낙 우량아라 몸이 무거워 그럴 수 있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을 들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흘러 문화센터에서 다른 아기들이 걸어 다닐 때 우리 아이만 꿋꿋이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나면서 우울해지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아이는 15개월이 지나서야 처음 걷기 시작했다. 짧고 오동통한 두 다리로 오리 마냥 뒤뚱뒤뚱 걸으며 나에게 오는데 그간의 걱정과 조바심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조바심을 내지 않겠다고 남편과 다짐하였다. 하지만 육아에서 쉬운 법은 하나도 없는 것. 걷기를 성공하니 이제 말이 남아있었다.


사실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아기와 둘이서 내내 붙어 있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혼잣말보다는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대화(?)를 즐겼다. 그래서 내심 속으로 우리 아이는 말은 빨리 하겠지.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나의 기대를 비웃듯 두 돌이 되어도 ‘엄마’라는 가벼운 단어조차 말하지 않았다.




  두 돌 무렵 영유아 검진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아이의 ‘발달지연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하셨다. 별생각 없이 간 병원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당황스러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언어 발달, 인지 발달 지연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서를 써주시며 근처 종합병원을 추천해주셨다.

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 나와 남편 사이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이 상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았기에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와 맘 카페를 뒤지며 우리 아이와 같은 경우가 있는지 글을 찾아봤다. 나와 비슷한 고민 글을 적은 엄마들이 종종 보였다. 작성자의 고민 글에 누구는 얼른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아직 어리니 지켜보자고 하였다. 그 글을 읽으니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답이 있다면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이 문제의 정답을 모르니 목에서 뭐가 꽉 막힌 듯 답답하였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주위에선 아이가 말이 느리니 꼭 그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시댁에서는 애가 왜 이리 말이 느리냐며 대놓고 나에게 핀잔을 주었고 종종 만나는 이웃들은 나에게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고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책도 많이 읽어주고 의성어 의태어도 많이 사용하고 아이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도 많이 걸어 준다고 누누이 설명해도 어쨌든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엄마인 나의 잘못으로 끝나버렸다.




  시간이 흘러 30개월이 지나도 아이의 말이 그다지 늘지 않자 나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하였다. 다행히 예약 취소 환자가 있어 다음 주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다음 주에 진료를 받지 않는다면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두 달 뒤에도 말이 터지지 않으면 어쩌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나 내가 너무 늦게 예약한 것은 아닐까?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더 슬픈 상황은 이런 나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마치 홀로 둥둥 떠다니는 섬과 같았다. 어디 하나 맘 놓고 쉴 곳이 없었다. 남편 또한 막상 아이의 발달이 생각보다 너무 느리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나의 걱정을 거기에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남편에게 이 상황을, 힘든 나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생각났다.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에 많이 가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나 이외에 가장 아이를 많이 본 분이셔서 그나마 아이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심해서 선생님께 전화하는 것도 꺼리던 나였는데 마음이 너무 답답하니 가릴 것이 없었다. 처음으로 선생님께 먼저 상담을 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였다. 몇 시간 뒤 선생님께 전화가 왔고 나는 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내 아이에 관하여 다른 이에게 질문을 하다니. 무척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그 시기의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아이가 정말 그저 조금 느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인지 솔직하게 듣고 싶었다. 나의 고민을 들은 뒤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 어머님, 걱정하시는 거 너무 잘 알아요. 혜민이가 또래보다 말이 조금 느린 것은 맞지만 호명 반응도 너무 잘하고 있고 사회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원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그리고 말이 느린 것은 아이가 성격이 신중해서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저도 아들 키워봐서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곧 있으면 혜민이가 말을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 혜민이를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나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오히려 단단하게 대답해주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걱정거리가 한 줌의 모래처럼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조금 더 내 아이를 믿어보고 싶었다. 만약 정말 문제가 있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싶기도 하였다.


나는 선생님과의 전화를 끊고 예약했던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취소하였다. 예약을 도와주시는 분이 지금 취소를 하면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취소하면 아깝지 않겠냐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 약간 흔들렸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때도 말이 늘지 않는다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마음을 다잡으니 오히려 홀가분하였다.  


2개월이 더 지나고 어느 날 아침, 아이가 일어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엄마 우유 주떼여.”라고 혀 짧은 발음으로, 그러나 또렷하게 문장으로 말했다. 나는 아이의 말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아이에게 되물었다. 아이는 역시나 “우유 주떼여.”라고 또렷이 말하였다. 이 짧은 문장이 어찌나 대견하고 감사한지. 아이의 짧은 말 한마디는 걱정거리로 가득 차 있던 나의 마음에 단비가 되어 촉촉하게 내려앉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는 말이 한 번 트이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었다. 처음엔 나의 말을 따라 하는가 싶더니 나중엔 질문도 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말이 늘기 시작하자 그동안 걱정이었던 아이의 인지나 사회성도 훨씬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 시간 힘들었던 나의 마음이 무색하리만큼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앞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토끼 엄마들이 참 부러웠다. 뭐든 빠르게 척척 앞서 나가는 아이들의 엄마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고민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은근 내 아이와 비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토록 친구 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 신경을 박박 긁던 엄마를 미워했는데 나 또한 엄마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자식이 앞서 나가길 바라는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이와 비슷한 일들이 아마 무수히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 안의 조급함을 내려두고 처음 내 아이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던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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