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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Dec 01. 2022

아빠 육아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먼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절대 이 글은 남편을 디스 하기 위한(?)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일단 남편은 육아를 참 잘한다. 예민하고 감정적인 나와는 달리 성격 자체가 무던하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인드를 장착한 남편은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울어도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대인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남편과 있으면 그렇게 잘 다쳤다. 아이 8개월 때부터 나는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종종 아이를 맡기고 홀로 나가 나만의 시간을 즐기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아이가 종종 다치는 일이 있었다. 아기가 10개월 차에는 아기의자에서 꼬꾸라져서 커다란 혹이 나기도 했고, 돌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는 내 러닝머신 위에서 놀다가 넘어져 코 밑이 찢어지기도 하였다. (그 일 뒤로 당연히 러닝머신을 팔아버렸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외출을 자주 나가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다치는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쩌다 그리 다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아기의 무릎은 성한 곳이 없었다. 종종 바지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기도 하였다. 얼굴에는 뭐가 그리 묻는지 아빠와 놀다가 집에 오면 얼굴에 까만 그을음이 잔뜩 묻어서 꼭 시골 강아지 같았다.

매일 엄마와 같은 곳을 산책하고 노는 놀이터인데 왜 아빠와 놀다가 들어오면 그리 다치고 오는지. 한 번은 셋이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또 아이가 넘어져 아이의 동그란 이마에 데크길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적도 있었다. 사실 나는 아이가 남편과 함께 놀다 다치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힘들고 피곤할 텐데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고맙기도 하거니와 나이 40에 어린 아들과 칼싸움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의 이마에 빨간 피가 데크길 자국으로 송골송골 맺혀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너무 화가 나 도대체 애를 어찌 보는 것이냐며 화를 내버렸다. 남편은 단단히 화가 난 내 눈치를 보며 조심하겠다고 하였지만 그 약속은 역시나 며칠 뒤 지켜지지 않았다.




  아주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아빠와 있으면 많이 다치고 울면서 아빠가 쉬는 날이면 아빠 옆에 붙어서 아빠와 놀러 가자고 조르는 아이를 보는 일이었다. 둘이 놀다 들어오면 아이는 스트레스가 다 풀린 듯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또! 또!”를 외치며 아빠에게 또 놀자고 조르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둘이서 뭘 어찌하고 노는 거야 싶어 그때부터 난 남편이 어찌 아이와 노는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왜 그토록 아이가 아빠와 놀면 그리 다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왜 그토록 아빠와의 놀이를 즐거워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편은 일단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늘 조심조심 아이를 대하는 나와 달리 늘 한 발자국 뒤에서 아이를 바라봤다. 넘어지든 깨지든 그건 일단 뒤의 상황이고 남편은 아이가 너무 위험하지 않은 이상 아이가 하는 것에 제지를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아빠 덕분에 물웅덩이에서 맘껏 뛰어도 보고 평소에 위험하다고 절대 못 가게 하는 주차장 계단에도 오르락 내리락을 수십 번 하기도 하였다. 아이에겐 그저 그런 놀이터보다 그런 곳이 더 재밌고 흥미로운 곳임을 알고 있기에 아이의 눈이 그리 반짝거렸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와 있으면 낯선 형들과의 놀이는 상상도 못 할 텐데. 아빠는 초등 형아들에게 먼저 다가가 아저씨랑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여 열심히 축구경기를 펼치기도 하였다. 형아들은 그저 낯선 아저씨랑 놀고 싶어서 팀에 끼어준 것이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에겐 자신보다 나이 많은 형아들과 노는 것이 너무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한 뼘은 큰 형아들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짧은 다리로 뛰어다니니 당연히 넘어지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바지에 큰 구멍이 뻥뻥 났던 것이다.


추운 겨울, 아이는 아빠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놀았다. 아빠와 달리기 시합도 했다가 돌 멀리 던지기 시합도 했다가 갑자기 권투시합을 하기도 하였다. 아빠는 아이가 원하는 놀이는 언제든지 맞춰 주었다. 조금만 땀을 흘린다 싶으면 감기 걸릴까 봐 얼른 집에 데리고 들어가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애가 땀을 흘려도 그저 즐겁다고 같이 뛰었다.




 사실 아이를 키울수록 남편이 아이를 보는 방식에 대해 못 미더워했었다. 종종 “오빠가 애에 대해서 뭘 알아? 내 아들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무시하는 발언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오만한 발언이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 얼마큼 통하는 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남편보다 한수 아래였다. 물론 더러워진 아이의 옷을 빨래하고 아이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사람이 나이기에 더 움츠리는 것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은 귀찮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래서 아이가 새로운 곳에 가자고 손을 이끌어도 그저 안 된다고 손사래 치고 조금만 격하게 놀아도 제지를 하였다.

남편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아이는 아빠와 놀고 들어오면 밥도 훨씬 잘 먹고 잠도 훨씬 잘 잤다.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들어오니 당연히 배가 고프고 잠도 잘 왔겠지. 참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을 남편이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고마웠다.

 

한 번은 남편에게 어쩜 그렇게 아이와 잘 놀아 주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힘들어 죽겠는데 억지로 놀아준다고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자 나 또한 적극적으로 아이와 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노력이 오래 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 아들은 나중에 크고 나면 이제 우리랑 안 놀고 지 친구들이랑 놀 거라고 가버릴 거잖아. 그때 되면 돈 주고 아들이랑 놀아야 한 대. 돈 안 줄 때 공짜로 열심히 놀아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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