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Nov 24. 2022

날씬한 엄마가 되기를 포기합니다

 길 가는 엄마들을 붙잡고 물어보자. 아가씨 때 어땠는지. 아마 십중팔구 제가 지금은 이래 봬도, 하며 아가씨 때 자기가 얼마나 날씬하고 예뻤는지(?) 자랑을 할 것이다.

쑥스럽지만 나 또한 그랬다. 164에 48kg를 넘지 않기 위해 매일 산책 2시간에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50kg를 넘으면 죽는 줄 알았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입바른 칭찬으로 참 날씬하다는 말을 종종 하였고 그럼 나는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우쭐거리곤 하였다. 하지만 매일 한 끼만 먹으며 버티다 보니 속은 병나고 있었다. 탈모와 빈혈, 그리고 생리불순. 먹는 게 없다 보니 변비도 심하였다. 손톱은 바스러지고 조금만 힘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마르고 예쁜 몸이 최고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생각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뒤에도 이어졌다. 마트를 지날 때 체격이 있는 아이 엄마들을 보며 남편이 지나가듯이 저 사람은 원래부터 저랬을까? 아니면 아기를 낳고 저렇게 변하였을까? 묻는 말에 괜히 심사가 뒤틀렸다. 마치 나에게 “너도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변할 거니?” 묻는 것과 같았다. 후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오해였다고 말하지만. 글쎄. 그 당시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그래서 한창 입맛이 좋은 임신 중기에도 식단 조절을 하였다. 워낙 입덧이 심했던 탓도 있었지만 뭔가를 와구와구 먹기가 부담스러웠다. 먹으면 금방 살찌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한 번 손을 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먹을 것을 알기에 더 두려웠다. 그렇게 임신 후기를 맞이하였고 나는 원래의 몸무게에서 6킬로만 찌우고 아이를 낳으러 갔다.




 아기를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뒤 정신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몸무게를 잰 일이었다. 3.2kg의 아기를 낳았으니 적어도 그 이상은 빠졌겠지. 싶었는데 웬걸? 오히려 2kg가 쪄있었다. 체중계가 잘못됐나 싶어 다시 한번 재보고 남편 보고도 몸무게를 재보라고 억지를 부렸는데 결론은 체중계는 잘못이 없었다. 정말 나는 2킬로가 쪄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몸무게에 대한 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게.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산후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조금씩 몸을 풀었다. 남편은 지금은 충분히 쉴 때라고 하였지만 이 몸무게로 살까 봐 너무 무서웠다. 예전처럼 다시 열심히 운동하고 밥을 안 먹으면 살이 빠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일단 아기를 키우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팠다. 나는 식욕을 잘 참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또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피곤하니 단 것은 또 어찌 그리 당기는지. 생전 찾지 않던 초코 도넛, 빵, 떡이 그렇게 달고 맛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를 타 주고 냉동 떡을 데운 뒤 커피와 함께 먹는 시간은 나에게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실내 자전거를 주문하였다. 열심히 운동하면 다시 살이 빠지겠지 싶었지만. 열심히 운동한 날 밤에는 무릎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아기를 낳은 내 몸은 이전의 내 몸과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조금만 무리해도 손목이 시큰거렸고 아기를 업고 연신 둥가 둥가를 하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너무 아팠다.




  시간은 흘러 아기를 낳은 지 100일이 흘렀다. 100일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원피스를 샀는데 옷이 엉덩이부터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 가서 옷이 안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남편은 옷이 작게 나왔다고 하였지만 리뷰에 있는 아이 엄마들은 나와는 달리 늘씬한 모습으로 그 옷을 입고 있었다. 100일을 맞이한 나의 아이는 참 예쁘고 빛났지만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나는 전혀 빛나지 않았다. 나였지만 내가 아닌 모습. 그것이 바로 출산 후의 내 모습이었다.

조금만 더 크면 빠지겠지. 더 안 먹으면 빠지겠지 생각하였지만 실상은 더 나빠지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치 게임의 미션을 완수하면 더 어려운 단계로 넘어가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토록 꾸미기 좋아하고 날씬함을 자랑하던 나는 이제 사라지고 대신 눈곱만 겨우 뗀 모습으로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초보 엄마가 그 자리에 있었다.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였다. SNS에는 날씬한 엄마들이 예쁘게 화장을 하고 아기를 척척 안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그들과 너무나 달랐다. 덜렁거리는 허벅지도 축 처진 뱃살도 모두 나의 몸인데 너무나도 싫어서 칼로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웃기게도 신기한 감정도 생겼다. 날씬하지 않으니 일단 마음이 편해졌다. 맞는 옷은 하나도 없어졌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알았다. 특히 육퇴 하고 난 뒤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 어떤 맥주의 맛보다 시원하고 청량했다. 또 둥글둥글해진 얼굴만큼 성격도 둥글둥글해졌다. 평상시엔 뭘 먹지 않으니 늘 예민하고 조금만 살이 붙은 것 같으면 오빠 나 살찐 거 같아? 질문을 100번 넘게 하였는데 오히려 막상 살이 쪄버리니 그냥 마음이 놓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씬했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고 그냥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즐거운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신 아이와 함께 하는 산책을 시작하였다. 그저 살을 빼기 위해 나가는 운동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 더 행복했다. 봄에는 벚꽃을 보러 걸어 다녔고 여름엔 아침에 일찍 나가 여름의 푸름을 느꼈다. 가을에는 단풍잎이 지는 것을 구경하였고 겨울엔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듣는 재미에 산책을 나갔다. 먹는 것도 조금씩 조절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에 먹던 떡을 끊고 귀찮더라도 밥을 먹었다. 훨씬 배부르고 속도 편했다. 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되 야식을 조금씩 줄였다. 야식을 자주 먹으니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살이 찌는 악순환의 연속이었기에 술만 끊어도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기가 어느 정도 큰 뒤 다시 거울을 봤다. 예전보다 훨씬 살이 찐 모습이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두툼한 옆구리 살도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았고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와 커다란 엉덩이도 이제 내 몸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둥글둥글한 얼굴선 덕분에 이목구비는 작아졌지만 동그란 얼굴이 사람 좋게 보였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비록 이전의 날씬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이제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하고 나만 따라다니는 아이와 남편이 있으니 이젠 이런 모습마저 건강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체력이 건강해짐을 느꼈다. 늘 빈혈을 달고 살았는데 먹고 싶은 만큼 먹으니 이제 더 이상 하늘이 빙그르르 도는 증상이 사라졌다. 손톱은 더 이상 바스러지지 않았고 생리도 한 달에 한 번씩 하게 되었다. 비록 아기를 낳아서 앞머리가 몽땅 빠져 잔디인형이 되었지만 그만큼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살이 찌면서 비로소 몸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의 날씬한 몸매나 잘 꾸민 얼굴이 아니라 나의 건강임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건강한 몸에서 시작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날씬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매일 올라가던 체중계도 치웠다. 더 이상 남편에게 “나 살찐 것 같아?”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하여 매일 운동을 한다. 아이와 마음껏 뛰어도 지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서본다.

작가의 이전글 맘충과 모범 시민 그 사이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