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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Nov 16. 2022

맘충과 모범 시민 그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기 전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그 당시 한창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였는데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극적인 맘충 썰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고 그 뒤를 이어 맘충 타파 썰, 맘충 참 교육 썰처럼 맘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나조차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정말 눈앞에서 맘충을 본 것 마냥 분개하고 내가 맘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식의 있지도 않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였다.


결혼을 하고 4년 동안 아이가 없었기에 그런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한 번은 햄버거 가게에서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운동화를 신은 채로 가게 소파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아, 이것이 맘충이구나 싶어 옳다구나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다 들으라는 듯이 애 신발 좀 벗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더러워서 어떻게 앉겠느냐고 말하였는데 그 공간엔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와 아이의 엄마만 있었기에 누가 들어도 그 아이 엄마를 공격하는 말이었다. 내 눈엔 그 아이의 엄마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그 아이를 얼마나 제지했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행동은 사회에서 잘못된 행동이고 그 아이의 행동은 맘충이 만들어낸 결과로만 생각했을 뿐.




  시간이 흘러 나는 내 인생에 계획에도 없던 임신을 하게 되었고 배가 불러오는 속도만큼 나의 두려움도 더욱 커져갔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기쁨이나 설렘보다 나 또한 인터넷에 나오는 흔한 맘충이 될 것만 같다는 공포심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난 절대 맘충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마치 선언하듯이 다짐하였다. 난 그들과 다르다고. 나는 모범시민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이를 낳고 처음 외출할 때부터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직 세상의 사회규범 따위는 전혀 모르는 아이의 행동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사람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아이가 잠이 올 때는 크게 울어댔고, 기차 안에서도 똥이 급하면 기저귀에 시원하게 응가 테러를 하기도 하였다. 기분이 좋으면 꺅꺅 익룡 소리를 내며 웃기도 하였고 발버둥 치다가 옆 사람의 옷을 더럽힌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아이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야단치던 엄마의 모습이 바로 우리 아이와 나의 모습이 된 것이다.

맘충이 절대 되지 않겠다던 나는 어느새 그들이 생각하는 맘충의 범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서 그러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늘 그렇듯. 일상생활에서 의도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난 맘충이 돼버렸다.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고 아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나는 그 흔한 맘충 썰에 등장하는 맘충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었다. 훈육을 하여도 야단을 쳐도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곳이 있으면 마치 경주마처럼 뛰기도 하였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치 안방에 있는 것 마냥 드러누워 울기도 하였다. 그토록 인터넷에서 혐오하던, 가게에서 드러누워 울던 아이가 내 아이라니. 그걸 바라보는 내 심정은 처참하였다. 우는 아이를 억지로 업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 뒤통수를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 돌아온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와 아이를 욕하는 글을 쓰면 어떡하지. 걱정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갈 때마다 스트레스는 커져갔다.


가게를 가면 아이가 포크를 실수로 떨어트려도 과하게 사과를 하였고 (나 또한 실수로 떨어트릴 수 있는데도) 카페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는 날에는 아이가 흘린 과자 때문에 욕을 먹을까 봐 바닥까지 물티슈로 박박 닦고 나와야 직성이 풀렸다. 유모차를 태우고 나가면 늘 어디에 갈 때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붙였고 그마저도 아이가 울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후다닥 챙겨 나오기 일쑤였다.




  나는 맘충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인터넷에서 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난 늘 모범시민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때때로 나를 맘충으로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아이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더 봤고 아이가 조금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으면 매섭게 혼을 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KTX 탔을 ,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스피커폰으로 크게 통화하는 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덮을 만큼 컸다. 그러나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잠이 와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몇몇의 젊은 사람들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담배 냄새는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서 유모차를 끌고 나와 어쩔  없이 길을 막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 유모차를 여기까지 끌고 왔냐고 짜증을 냈다. 그냥 길거리인데도 말이다.


물론 같은 부모인 내가 봐도 인상이 찌푸려질 듯이 행동하는 아이와 부모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울면 그치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모범시민은 누구일까? 그리고 맘충을 만든 기준은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세상의 모든 엄마들 또한 아이를 낳기 전까진 모범시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어린 존재를 보살피기 시작하면서 그들 또한 어쩔 수 없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사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예전에 내가 봤던 말 안 듣던 아이들의 부모의 얼굴을 봤었더라면. 그들의 미안하다는 표정과 사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기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때문에 쩔쩔매는 부모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의 규칙을 조금씩 따르고 있다. 더 이상 잠이 온다고 기차 안에서 큰 소리로 울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아무 바닥에나 눕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나 또한 맘충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디서든 아이의 조그만 행동이 맘충의 구실이 될 수 있음을. 어른의 잘못된 행동보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더욱 눈에 띄는 사회임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긴장의 단추를 풀어보려 한다. 더 이상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에 과도하게 긴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나를 그저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좀 더 넓은 시선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행동을 보려고 한다. 아이와 함께 그 장소에 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을지,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 나 또한 알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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