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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Nov 08. 2022

우리 아이 첫 입원 전쟁 일지 (하)

  입원병동은 흡사 전쟁터와도 같았다.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링거를 꽂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창 환절기라 그런지 혜민이 또래의 아기들도 모두 링거 줄을 꽂은 채로 엄마나 할머니의 등에 업혀있거나 유모차를 타고 있었다.

간호사는 우리에게 지금 1인실은 모두 꽉 차서 6인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한시가 급한 우리는 6인실도 괜찮다고 한 뒤 서둘러 남편은 짐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나는 아기를 입원 복으로 갈아입히고 손등에 링거도 꽂았다. 혜민이는 울다 지쳐서 링거를 손등에 꽂을 때도 울지 않고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우는 모습보다 힘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더 마음 아팠다.


6인실에 들어가자 정말 전쟁 피난민 대피소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시설은 열악하고 정신이 없었다. 좁은 병실에 6개의 침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쓸데없이 창문은 커서 분명 실내인데도 추웠다. 거기에다 그 좁은 공간에 자신만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커튼을 치고 있어서 가뜩이나 좁은 병실이 더 좁아 보였다.


우리가 묵은 6인실은 모두 혜민이 또래의 아기들이라 잠시의 조용할 시간 없이 내내 울음바다였다.  명이 울면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따라 울었고 그러다 보면 6명이 마치 중창단을 결성한 것처럼 조화롭게 울어댔다. 아기들의 울음은 밤이 되면 더욱 심해졌는데 예민한 혜민이에게는  공간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1시가 넘어서도 쉽게 잠을 자지 못하였다. 이렇게 해도 울고 저렇게 해도 울어대는 통에 나는 그날  내내 유모차에 혜민이를 태우고 입원병동을 정처 없이 돌며 입원 첫날밤을 지새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 날, 혜민이는 수액을 맞고 이제 조금 살아나는 듯 호기심 어린 모습을 병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혜민이에겐 병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였다. 특히나 혜민이 10개월 인생 처음으로 높은 침대를 접했는데 (우리 집은 혜민이 태어나고 침대를 치웠다) 침대를 놀이기구처럼 생각해서인지 계속 침대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여서 나와 남편은 하루 종일 혜민이가 떨어지지 않게 혜민이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린 밥을 먹을 시간도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부족하여 모든 일을 혜민이가 뽀로로 보는 시간 (뽀로로는 부모들의 대통령이다) 아니면 혜민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해야만 했다. 한 번은 애가 낮잠 자는 틈을 타 화장실에 얼른 들어가 일을 보고 나왔는데 혜민이가 그새 못 참고 일어나 울어대는 통에 다른 아기들도 따라 울어 모든 부모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자 나는 너무 스트레스받아 간호사에게 도대체 언제쯤 1인실이 나냐고 물었다. 여기에서 이틀 이상 묶다가는 내가 더 큰 병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호사는 안타까운 듯 아직도 1인실이 나지 않았다며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돈을 내고 싶다고 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도 6인실 나름의 정은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가 아프나 출근을 꼭 해야 하는 남편 직업 특성상 남편은 역시나 출근을 하였고 나는 혼자 애를 돌보는 와중에 혜민이가 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토를 하였다. 혜민이의 토사물은 혜민이의 옷뿐만 아니라 침대 시트까지 다 덮쳤고 이내 병실에는 온통 혜민이의 구토 냄새가 퍼졌다. 나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일단 간호사를 부른 뒤 부랴부랴 아기 옷을 벗겼는데 설상가상 링거 줄이 꼬여서 제대로 벗겨지지도 않았다. 아기는 찝찝해서 울지 나는 링거 줄이 꼬인 채로 애 옷을 벗기려고 하지 구토 냄새는 온 병실에 퍼지지 이런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그때였다.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옆 침대에 있으면서도 항상 커튼을 치고 있어서 인사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혜민이 또래의 아기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당황한 나는 얼굴이 벌게진 체로 혜민이가 갈아입을 입원 복을 부탁드렸고 그 애기 엄마는 후다닥 뛰어가 입원 복을 가져다주었다. 혼자서 계속 아기를 보고 있었기에 그런 도움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다.


-애기 토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나죠? 미안해요.

-아니에요. 우리 애도 기침하다가 토한 적이 많아서 이해해요. 급하게 안 치우셔도 돼요.


아기 옷을 갈아입히며 처음으로 남편 아닌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였다. 혜민이 또래의 아기는 혜민이 보다 두 달 늦은 아기였고 역시나 같은 폐렴으로 입원하였다고 들었다. 그들도 역시나 1인실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애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엄마들이 아파서 나갈 것 같다고 농담을 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임을 느끼자 동질감이 형성되며 조금씩 긴장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조금씩 이 병실 생활에 아기도, 나도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입원병동에서 이틀을 보내자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혜민이 낮잠을 재우기 위해 매일 유모차에 혜민이를 태우고 입원병동을 거닐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혜민이 또래 아기를 포대기에 업은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애기 잠은 좀 잤어요? 첫날 영 못 자서 내내 돌아다니는 것 같더니. 우리 아기도 첫날에 잠을 한 숨도 못 자서 간호사한테 부탁해서 주사실에서 재웠잖아.


동병상련이란 이런 말일까. 나는 할머니의 걱정 어린 물음에 지금까지의 힘듦을 한 풀듯 구구절절 말하며 그 분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분이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이 많든 적든 아이의 엄마든 할머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아픈 아기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되고 힘든 상황인지 서로 알고 있기에 그것만으로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친구를 사귀자 입원생활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기의 할머니는 알뜰살뜰 나를 챙겨주었다. 혜민이에게 장난감을 빌려주기도 하고 떡뻥도 나눠주셨다. 그저 답답했던 내 마음이 친구를 사귀면서 조금씩 정을 붙이자 병원 생활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안도감도 들기 시작하였다.

 

3일이 지나자 드디어 1인실로 방을 배정받았다. 처음으로 실비보험을 잘 들었다고 생각하며 얼른 짐을 챙겨 빠르게 1인실로 옮겼다. 와우! 6인실에 있다가 1인실로 오니 마치 병실이 호텔과도 같았다. 킹사이즈 침대에 개인 티브이도 있는 데다 엄마가 앉을 수 있는 소파까지! 돈이 이렇게 좋은 것임을 새삼 실감했다. 아기는 이제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었고 더 이상 아기가 떨어질까 전전긍긍해하지 않아도 되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눈치 보여 꺼내놓지 못하던 소리 나는 장난감도 마음껏 틀어주고 나도 보고 싶은 티브이를 맘껏 보면서 배달음식도 시켜 먹기 시작했다. 병원의 이방인에서 터주대감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1인실에서 지내기 시작하자 6인실에서는 그토록 가지 않던 시간이 갑자기 2배속으로 빨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1인실도 당연히 힘들고 지루하긴 하였지만 6인실에 비하면 호캉스 느낌이 났기에 남편에게 아기가 다 나을 때까지 그냥 여기서 계속 있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농담을 건네기도 하였다. 남편도 물론 동감하였다.


-혜민이 이 정도면 퇴원해도 되겠는데요.


입원한 지 7일 차가 되자 처음으로 의사 선생님이 퇴원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확실히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 컨디션도 훨씬 좋아졌고 기침 소리도 줄어들었다.

7일 꼬박 입원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 말을 드는 순간 마치 죄수가 가석방 소식을 들은 것 마냥 너무 기뻐 마음껏 날뛰고 싶었지만 엄마 체면이 있어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퇴원하기 위해 남편은 퇴원 가방을 싸고 나는 퇴원 수속을 밟으러 진료실로 내려가니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다. 혜민이 보다 어린 아기들도 종종 눈에 띄어 마음이 안 좋았다.

서둘러 계산을 하고 얼른 병원을 빠져나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퇴원하는 혜민이 또래 아기와 할머니는 이렇게 헤어져 참 아쉽다며 다음에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자며 쿨하게 헤어졌다. 좋은 곳에서 만나지는 못하여도 할머니 덕분에 내가 참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못내 아쉬웠다.


 처음 병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유모를 억울함과 속상함이 겹쳐 눈물이 났는데 다 나은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오니 홀가분했다. 그리고 다시는 내 새끼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도록 하리라. 다짐하였다. 하지만  나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8개월 뒤 혜민이가 저혈당 쇼크로 다시 입원을 하였으니까.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며 입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그리고 엄마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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