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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Nov 01. 2022

가해자가 없다고 피해자의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라면 한가로운 늦가을의 주말을 만끽해야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러지 못하였다.
늦은 아침 아들과 함께 사과를 먹다가 남편에게 들은 비보는 나의 모든 정신 회로를 멈추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150명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에 비판이라는 허울을 덮어쓴  비난과 조롱성 댓글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데를 애초에 왜 가냐고 욕을 하고 또 누군가는 이게 다 정부 탓이라고 욕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게 다 이기적인 MZ세대의 탓이라고 욕을 하였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핼러윈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나, 그것과는 별개로 어린 나이에 재미난 곳이 있으면 한 번쯤 가서 놀고 싶어 하는 평범한 마음이 이토록 욕을 먹어도 싼 일인가 싶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걸어가다가도 생길 수 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생길 수 있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있다가도 생길 수 있다. 그럼 그럴 때마다 피해자 탓을 하여야 꼭 직성이 풀릴 것인가?


  피해자들 또한 꽃 다운 나이를 가진 10~20대의 보통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하며 꿈을 가지고 하루를 보냈을 보통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역에 갔을 수도 있고 지방에서 단순히 놀고 싶어서. 구경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이태원에 갔을 수도 있다. 어느 그 누구도 사고를 예감하고 갈 이는 없다.


  내가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단순히 지금 내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며 피해자인 그들을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정말 무고한 피해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150명이 넘는 사망자와 아무 연관도 없는 나조차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감정이 드는데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은 많은 피해자들(그들 또한 피해자이다)은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까.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것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아픔을 이해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참사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을 위한 가장  최선 아닐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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