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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27. 2022

우리 아이 첫 입원 전쟁 일지 (상)

  사건이 일어난 때는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약간의 찬바람이 남아있는 5 초순이었다. 혜민이가 태어난  10개월이 지나자 나는   한을 풀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동네 구경   못해보고 애만 키우던 나날이었기에 따뜻해진 날씨와 조금은 사람다워진 혜민이, 그리고 이제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제법  다닐  있다는 자신감까지 더해지자 유모차와 아기가방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졌다.


거기에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니 얼마나 나의 마음이 두근거리는지. 이것이 정녕 봄을 탄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따뜻한 날씨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매일 아침 햇볕을 체크하고 날씨 어플에 들어가 미세먼지를 확인하는 것이 나의 아침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딜 크게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태생이 겁만보에다 길치라 그저 아파트만 돌아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아기가 없을 때는 그저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봤던 자연풍경이 아기를 낳고 나서 보니 너무나 다채로워 보이는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고작 20분의 산책은 내가 하루를 보낼  있는 영양제와도 같았다.  


어느  남편은 그렇게 똑같은 동네만 돌아다니는 내가 보기 안타까웠는지 근처 아파트에 매주 수요일 시장이 서는데 산책 삼아   걸어가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 시장? 국수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돈까스도 파는  시장? 완전 좋아!


 나는 남편의 깜짝 제안을 받자마자 흥분하며 당장 가고 싶다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런 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시장을 다녀오고 난 뒤 닥쳐올 우리의 미래도 모르고 말이다.

 



  5월의 둘째  수요일, 우린 단단히 운동화를 신고 아기 짐을 바리바리   마치  여행을 떠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길을 나섰다. 남편도 오랜만에 나와 함께 하는  산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들뜬 표정이었고 나는 남편에게 못다 한 수다를 떠느라 입이 바빴다. 혜민이도 처음 보는 길이 신기한지  작은 머리통을 열심히 돌려가며 구경하기 바빴다. 시장에서 우린 물국수도 사 먹고 사람 구경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기는 처음 먹어 보는 소면이 신기한지 손가락으로 마구 장난을 치고 놀았는데 지나가는 어른들마다 아기가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 부른 배를 잡고 뒤뚱뒤뚱 걸어오다가 남편이 지쳤는지 평상에서 조금만 쉬자고 하였다. 나도 생각보다  거리에 많이 걸어서 지쳤기에 그러자고   평상에 앉아 아기를 유모차에서 내려주었다. 옅은 바람이 계속 불었지만, 어른인 나에게는 그저  바람이 산산하니 기분 좋게 느껴졌다.  바람이 어린 아기에게는 얼마나 매서운 바람인지 아직 초보 엄마인 나는 몰랐던 것이다.


- 연아, 오늘 너무 행복하다. 진짜 아기를 낳고 행복이란 게 이런 건가 싶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기를 안으며 남편은 뜬금없이 행복하다는 고백을 하였다. 평소 감정 고백을 잘하지 않던 남편이 이런 말을 하자 무척 낯간지러웠지만  또한 너무 행복하여 남편의 말에 이내 공감하였다. 그래, 행복이란   별거 없구나. 싶었다.




  시장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온  3일이 지난 후였다. 남편은 이른 출근을 하고 아기는 나와 함께 놀고 있었다. 콜록콜록. 아기의  번의 옅은 기침이 조금 의심스러웠다.  번도 이런 기침을  적이 없어서. 거기에다 아기가 계속 칭얼거리면서 나에게 들러붙자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 이마에다 손을 대자 온몸이 불덩이임을 느껴졌다. 심각해진 나는 얼른 체온계를 꺼내 아이의 열을 재봤다.

39.2도

체온계에서 빨간 등이 켜지자 나는 이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달리 아파본 적이 없었기에 예방접종 아니면 병원  일이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고열이 난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없었다. 나는 급히 아기 짐을 챙겨서 찡얼거리는 아기를 아기띠에 욱여넣고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목감기가 심하네요. 그래도 아직 아기가 어리니 약 먹으면서 지켜봅시다.


의사는   아닌  심드렁하게 말하며 나와 아기가 아닌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의사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보곤 마치 큰일이 터진  부랴부랴 뛰어  것이 민망하여 우는 아이를 달래며 진료실을 나왔다.


그러나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아기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해열제를 먹여도 아기의 체온은 38도를 웃돌았고 기침은 더욱 심해졌다. 코가 막혔는지 잠을 깊게  자고 내내 울며  품에만 안겨 있으려고 하였다.  12시가 지나고 아기 열이 전혀 내리지 않자 나는 너무 무서워 응급실에 가봐야 하는  아니냐고 남편에게 물었지만 남편은 의사 선생님을 믿고 오늘 하루만 넘겨보자는 말만 반복하였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오빠 친구야? 믿긴  믿어.”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야밤에 싸울  알기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음날도 아기는 나아지는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온몸은 역시나 펄펄 끓었고 아기의 기침이 이젠 컹컹 소리가 나는 수준이었다. 아기는 내가 조금만 자신을 떠나려 해도 소리를 지르고  정도로 오로지  품에만 안겨 있으려고 했다. 해열제를 먹이는데도 아기의 열이 40도를 치솟는 순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 나는 엄마야.  이상 남편만 믿을 수는 없어. 싶어 인터넷 맘 카페에 소상히 지금 아기의 상황과 나의 상황 그리고  지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선배 엄마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내가 글을 올리자마자 띠링띠링 알람이 울리며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병원으로 당장 가라고. 지금 폐렴이 유행인데 아기가 폐렴 같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근처  병원 정보를 알려주었다. 순간, 그저 괜찮다고만 말하는 남편보다  얼굴도 모르는 선배 엄마들이 훨씬 신뢰가 가며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오빠, 지금 조퇴하고 .  이상  되겠어. 아기 데리고  병원 가야 할  같아.


 말을 듣자 남편은 머뭇거리며 또다시 괜찮을  같은데, 하루만  참아보자. 우리 의사 선생님을 믿어보자는 말을 하였고  순간 나의 이성은  끊어져 버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애가 약을 먹어도 하루 종일 열이 39도가 넘는데! 이러다 우리  죽겠다고 말하며  오면 내가 택시 타고 알아서  테니 그렇게 알라고 소리를 지르니 남편은 그제야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우린 아기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우리 동네를 벗어나  아동병원에 가게 되었다.




-급성 폐렴입니다. 엑스레이 찍어보니 오른쪽 폐가 가래로  찼네요. 이렇게 심각한데  이제 오셨어요. 입원하셔야 해요.

 

   나이 또래로 보이는 의사는 아기의 상태에 대해 심각하게 말을 하였다. 아기는  와중에도 힘들다고  품에서 울고 있었고  또한 의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나왔다. 폐렴이라니.  무슨 일이람. 지금까지 아픈  하나 없이 무럭무럭  키워왔는데. 폐렴이라니. 내가  잘못했기에  아기가 이렇게 됐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모든 것이   잘못으로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산책을 자주 나갔을까.   따뜻하게 입힐걸. 아기를 너무 이른 시기에 문화센터에 데리고 갔나. 등등 온갖 자책의 꼬리표들이 머릿속에서 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픈 아기에게 너무 미안하였다. 엄마인 나의 잘못으로 이렇게 아기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눈물만 뚝뚝 나왔다.


-연아, 일단 우리 진정하고 입원부터 하자.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아동병원에서 남편은 얼이 빠져 있는 나를 진정시키며 입원확인서에다 사인을 하고 아기를 데리고 입원병동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 아이의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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