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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21. 2022

아기의 낯가림은 문센을 타고

- 아기의 8개월

  흔히들 아기가 8개월 정도 되면 낯가림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때부터 아기가 본격적으로 엄마 껌딱지가 되는 시기이다. 예민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8개월 나의 아들 혜민이 또한  낯가림의 시기가 찾아왔다. 원래부터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지만 그 강도는 더 심해져 엄마가 눈에 조금만 보이지 않아도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거기에다 이앓이 때문에 혜민이는 종종 밤 2시에 일어나 울어대서 나는 밤을 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또 혜민이를 1시간 넘게 안아서 다시 재우다 보니 손목과 허리가 하루 종일 시큰거려 늘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남편은 나를 도와주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이미 주 양육자는 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혜민이를 어르고 달래는 몫은 오로지 내 차지였다. 한 손으론 우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론 밥을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짜증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왜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유도 알 수 없는 체 그냥 화가 나서 온 몸으로 화를 분출하고 있었다. 마치 성난 복어처럼 말이다. 그 화의 불길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향하였고, 종종 나를 도와주지 않는 친정 엄마에게도 향하였다.

이 세상에 나와 아기만 남아있는 것 같은 절망감이 들 때쯤 나는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색다른 도전을 하였다. 바로 문화센터를 등록한 것이다.




  혜민이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의 SNS를 보면 대부분의 아기들은 벌써 문화센터를 다니고 있었다. SNS속 아기들은 하나같이 귀여운 동물 캐릭터 옷을 입고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다채로운 체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기 엄마들은 모두들 우아한 롱 원피스를 입고 여유롭게 아기들과 문화센터 수업을 들은 뒤 문화센터 동기들, 줄여서 문동들과 커피 타임을 가졌다. 그 모습은 집에서 혼자 아기와 씨름하며 며칠 째 똑같은 옷만 입고 있는 내 모습과 너무나 달라 보여 괴리감마저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렇게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 부끄러워서 아파트 헬스장도 못 가는 내가 문화센터라니. 남편은 내가 문화센터에 등록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놀란 것 같았지만 혹시나 무슨 말이라도 덧붙이면 또 내 분노의 불길에 화상을 입을까 그저 잘 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불러댔다.

 


  

  드디어 문센 첫날. 나는 아기가방에 아기 분유가 든 젖병, 보온병, 손수건, 기저귀, 혹시 토할지 모르니 여벌 옷, 담요, 등등 짐을 한가득 쌌고  마지막으로 12키로가 넘는 아기를 아기띠에 욱여넣고는 비장하게 길을 나섰다. 근처 아파트에서 하는 문화센터라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며 집을 나섰지만 무거운 짐 가방에 몸무게 상위 1%를 가지고 있는 혜민이를 아기띠로 업고 걷고 있자니 온 몸에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다. 영하 8도인 이 초봄에 말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에 나도 모르게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나도 남편 이외에 누군가를 만나는구나. 어떤 사람들이 나왔을까. 나도 SNS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센터 동기를 만들면 좋겠다. 등등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찡찡거리는 아기를 한 손으로 어르고 달래며 문센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에 들어가니 우리 아들과 개월 수가 비슷한 아기들이 이 동네에 이렇게나 많았나 놀랄 만큼 많은 아기들과 엄마들이 있었다. 그분들 모두 나처럼 초췌한 얼굴 한 편엔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대충 빈 공간에 가서 얼른 아기를 아기띠에 풀어줬고 아기는 난생 처음 와본 공간에 놀라서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탐색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처음 보는 이 낯선 공간은 마치 새 학기에 처음 교실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주었다. 너무 떨리고 긴장돼서 배 아픈 느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그런 기분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14년 뒤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다니. 신기하였다.


넉살 좋은 아기 엄마 몇몇은 다른 아기를 보며 어머 너무 이쁘다 애기가 크네요. 몇 개월이에요? 등 옆 사람의 아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스몰토크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친절히 대답해 줄 수 있는데. 소심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는 그 사람들의 대화를 듣지 않는 척 하면서 남몰래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함께 붐붐 베이비붐 수업을 하게 된 김선영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작고 단단한 40대 여자 선생님께서 해맑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시곤 냅다 동요를 크게 트셨다.

그 순간, 혜민이는 동요 소리에 발작을 하듯 울음을 크게 터뜨렸고 혜민이가 울자마자 몇몇 아기들도 함께 목청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난 이러한 위기상황에도 웃을 수 있는 센스 있는 엄마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어구 우리 혜민이 놀랐어?" 라고 모두가 들리게 혼잣말을 하며 혜민이를 어르고 달랬으나 역시 혜민은 엄마의 달램을 듣자마자 더욱 더 거세게 울어댔다. 애미야 이곳이 나의 맘에 들지 않으니 얼른 나가라는 표정과 함께.

함께 울던 다른 아기들은 놀랍게도 엄마들이 달래자 울음을 그쳤으나 제일 먼저 울고 제일 크게 우는 혜민이는 내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였고 점점 아이의 엉덩이를 치는 손목의 스냅이 더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아기가 너무 울자 선생님의 목소리도 더욱 커졌고 다른 엄마들이 우리 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도 느껴졌다. 5분이 지났을까.


아이의 울음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생님이 안 되겠다는 듯 "혜민이 어머니, 혜민이가 진정이 안 되면 나가서 진정시키고 들어오셔도 됩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붉어진 얼굴로 아기와 아기짐을 부랴부랴 챙겨 대기실로 나갔다. 혹시 기저귀에 응가를 했나. 나가자마자 기저귀에 코를 갖다 댔지만 기저귀는 뽀송뽀송했다. 잠이 오나 싶어 아기를 보니 눈이 땡글땡글했다. 문 안의 아기와 엄마들은 불청객인 우리 모자가 없어지니 물 흐르듯 수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고 졸지에 울어서 쫓겨난 나와 혜민이는 대기실에서 서로 땀을 뻘뻘 흘리며 애꿎은 기저귀나 갈고 있었다. "혜민아 왜 그래? 뭐가 맘에 안 들어?" 묻는 나를 보자 혜민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샐쭉 웃었다.

울음이 그치자 안도감이 들면서 다시 수업을 들으러 들어갔다. 수업은 한창 진행이 되고 있었고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꿀벌 옷을 엄마들은 아기에게 부지런히 입히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꿀벌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아기들은 너무 귀여웠다. 나도 땀을 뻘뻘 흘리며 혜민이에게 꿀벌 옷을 입히려고 하는데 우리 아들은 몸무게 상위 1%의 초우량아 아기라 꿀벌 옷이 당연히 들어갈 리가 없었다. 억지로 꿀벌 옷을 욱여넣으려고 하자 혜민이는 불편하다고 다시 목청이 터져라 울어댔고 아무리 달래도 혜민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나는 다시 자의반 타의반 수업에 쫓겨났다.



 

 결국 40분 수업 동안 나와 혜민이는 수업 참여를 고작 5분하고 수업을 마쳤다. 엄마들이 꿀벌 옷을 입은 아기들을 향해 너무 귀엽다고 연발하며 사진을 200장 넘게 찍는 동안 나는 혜민이를 업고 밖을 다섯 번 정도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다가 수업이 끝난 것이다.

오랜만에 한 화장은 땀으로 덕지덕지 지워졌고 혜민이는 울다 울다 지쳐 잠이 들어있었다. 지나가는 몇몇 엄마들은 “아기가 피곤했나 봐요~” 라는 인사치레를 하며 지나갔지만 혜민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그 엄마들의 인사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문화센터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듯 원래 예민한 아가들은 적응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더 이상 웃을 힘도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아서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하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 나왔다. 아기를 데리고 나오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해서 내 품에만 있는 아기를 왜 데리고 나갔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아기 데리고 있는 것이 훨씬 나은데 나는 왜 사서고생을 할까.

1시간 전의 설렘은 사라지고 억눌러 있던 나의 이유모를 분노가 울컥울컥 터져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아기띠를 벗고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이유를 알 리 없던 혜민이는 자다가 침대에 눕히니 다시 나를 안고 재우라고 앙앙 거리며 울기 시작하였고 그 울음소리를 듣자 괜히 서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왔다.


사실 나는 문화센터를 등록하며 나 또한 SNS속 엄마들처럼 그곳에서 여유롭게 혜민이와 재밌게 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아기 친구가 아닌 나의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남편 직장 따라 이름 모를 타지로 이사 와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정말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남편 말곤 기댈 곳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아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고 홀로 정신없이 먹는 점심이 아닌 함께 먹는 점심이 그리웠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오늘 문화센터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 봤다. 억지로 껴입은 꿀벌 옷이 불편한지 울고 있는 혜민이의 얼굴 뒤로 다른 아이 엄마들의 얼굴이 언뜻 언뜻 보였다. 그때였다. 다른 아기 엄마들 또한 모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것이. 내가 찍은 사진 속에 있는 다른 엄마들의 모습은 SNS속의 여유로워 보이는 엄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모두가 지쳐있고 피곤해 보였으며 다른 아기들 또한 낮잠 시간이 지났는지 짜증이 한껏 나있는 상태였다. 엄마들은 그런 아기들에게 쪽쪽이를 물리고 떡뻥을 쥐어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아주고 있었다. 다시 보니 혜민이 뿐만 아니라 다른 아기들도 많이 울고 있었다. SNS속 사진과 너무도 다른 문화센터의 모습을 보자 괜한 허망감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가 힘든 시간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로 꾸역꾸역 나와서 아이와 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조금의 안도감도 들었다.


사진을 다 보고 나자 혜민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미안함이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불쑥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익숙한 집에서 늘 그렇듯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혜민이에겐 오늘 하루가 무척 힘든 날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나의 품에서 잠든 혜민이를 쓰다듬으며 어쩌면 이렇게 내 품에서 나만 바라보는 낯가림 시기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임을 느꼈다. 엄마로 가득 찬 혜민이의 작은 세상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가보자고. 혜민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자고 다짐하였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 듯 잠을 자던 혜민이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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