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갈 무렵부터, 동네 요가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추우니 다들 집에서 지지고 볶는 긴긴 겨울이 좀 지루해져서, 적립된 마일리지도 있으니 잠시 나 홀로 제주도로 탈주해볼까 싶었다. 그런데 혼자 제주도에서 뭐 할까 찾아보다가, 여행자들이 요가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한 리뷰를 보게 된 것이다. 제주의 자연을 벗 삼은 친환경적 수련장에서 멋진 포즈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나도 그런 여행을 한 번 해보고 싶어졌다. 어, 그런데 잠깐만,
'지금 내가 원하는 게 제주도야, 아니면 요가야?'
잘 생각해 보니, 제주도는 집 안에 처박혀 있던 몸이 근질근질해서 그저 습관적으로 어디론가 갈 생각으로 떠올린 것이었을 뿐, 실상 나의 근질거림은 몸을 '빡세게' 움직여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제주도까지 갔는데, 멋진 자세가 안 나오면 어쩔 건데?
이렇게 매우 이성적이고 현명한 결론을 내린 나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요가원을 찾아냈다. 인스타의 게시물을 보니 요가원도 아주 깔끔하고 선생님도 예쁘고 무엇보다 선생님과 회원들이 함께 아주 멋진 동작들을 척척 해내는 모습에 반해서, 바로 수업을 등록했다.
워낙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스타일인지라 여러 가지 운동도 해봤기에, 요가도 슬쩍 배워본 적이 있었다. 또 요즘 시간이 많았던지라, 집에서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는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왠지 요가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첫 수업을 받은 날, 내 몸 깊은 곳 무한의 미세 세포들이 발발발 쉴새없이 떨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혼자서 했던 스트레칭은 요가가 아니었고, 오래전 배워 가끔 '요가랍시고 폼 잡았던' 자세들은 전혀 엉뚱하기만 했다. 나는 완전 '비기너'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야말로 '의지의 한국인'으로 살아왔다. (물론 모든 것에서는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해서 나도 빨리 멋진 자세들을 척척 해내리라! 선생님은 각 자세마다 거기까지 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들을 함께 알려준다. 한 단계가 안정적이라고 몸에서 느껴질 때 그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고.
그러나 마음도 바쁜 데다가, 처음 들어보는 낯선 말들이라 내가 아는 말로 번역도 잘 안된다. 에라 모르겠다. 어쨌든 최종적인 모양은 이거란 말이지, 어설프게 낑낑대며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아주 '열심히' 최종 모양만 따라 하려는 내게, 선생님은 이런 처방을 내려 나를 '멘붕'에 빠뜨렸다.
"정주님은 지금 시작 자세에서 오래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매번 다른 사람보다 한 단계씩 더 늦게 가려고 노력해보세요."
물론 나도 남들보다 못하고, 그래서 늦게 하는 게 많다. 그러나 그건 빨리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어서 늦을 뿐, 내가 일부러 노력해서 늦게 하는 게 아니다. 노력한다는 건, 내겐 지금보다 더 '빨리 나아가기'였다. 그러기 위해 나는 언제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목적을 세웠는데, 그 목표는 항상 매우 매력적이고 거창했다. 그래야 가속도가 붙으니까!
예컨대 전에도 말했듯, 이제 막 어딘가에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정년퇴직 후의 세계여행을 그려본다든지, 요가 수업을 등록하면서 벌써 제주도의 어느 멋진 수련원에서 요가 지도를 멋지게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뿌듯해하는 식으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그것의 끝만 보고 달려가려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행히도) 요가 선생님은 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나는 남보다 한 단계가 아니라, 백 단계쯤은 더 천천히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데 그걸 어떻게 (열심히) 노력해야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