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버스를 잘 못 탔다는 걸 알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재빨리 내렸다. 두 번째엔 제대로 탔다. 면접장소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걷다가 잠시 앞을 봤는데, 가로수가 왜 내 코앞에 와 있다. 두리번대며 한 발자국만 더 갔으면 이마에서 피 터진 채로 면접을 볼 뻔했다. 하아~ 면접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하도다!
면접 대상자는 둘, 면접관은 셋. 그들은 셋이서 역할 분담을 잘했다. 한 명은 실질적 질문자이고, 또 한 명은 긴장을 풀어주려 다독이는 역할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곤란한 질문으로 부정적 상황을 연출한다. 지금이야 이렇게 잘난척하며 분석하지만, 그들 앞에 있던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나이나 된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의도하고 분석할 새 없이 '버벅'거렸을 뿐이다.
면접 시간은 길고도 깊었다. 한 10분 정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와 보니 50분이나 지났다. 고등학교 수업 한 시간만큼의 길이다. 그러나 그저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27년 만에, 긴장한 채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적절한 대답을 이어가야 하는, 게다가 지천명(知天命) 나이의 나에게는 야간 보충 수업까지 들은 것처럼 녹초가 될만한 시간의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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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面接.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기. 물론 27년 만큼 늙은 나이에, 긴 면접 시간 때문에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 곰곰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얼굴을, 약 50분쯤 아주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평소에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건 실제로 잠깐씩이다. 그 사이사이 뭔가를 먹거나, 스마트 폰을 보거나, 뭔가를 읽거나 어쨌든 면접 때처럼 진지하게 오롯이 상대방만을 마주하고 앉아있지는 않는다.
게다가, 누군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에게 그가 만족할 만한 말을 들려주기 위해 50분간을 할애하는 경우도 평소의 나로서는 거의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50분간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그에게 좋은 말을 해가며 위로하는 것,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이와 경험이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도움이 되지도 못할 충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면접이 그보다 조금 더 어려웠던 건, 단순히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말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궁금해하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진실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혹은 버스 안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는 전화 목소리에서도 그 사람의 삶의 단편에 대해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내 앞에 세 명의 면접관과 내 옆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나만큼 버벅대고 있는 한 명의 다른 면접자, 이렇게 네 사람을 지척에 두고도 그런 재미난 상상을 못해서 아마 더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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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명치끝에 찌르르 통증이 온다. 면접할 동안 가만히 있던 위장이 보내는 '너 정말 힘들었어'라는 사인이다. 그 상태로는 버스 타기 힘들 것 같아, 길 건너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내게 체했냐고 물어봐주면서 '이걸 드시면 속이 편해지실 거예요'라고 말하는 약사가 무척이나 친절한 약국이었다. 약국을 나와 근처 공원을 한 바퀴 크게 돌아 걸었다. 그랬더니 정말 그 친절한 약사의 말처럼 속이 아주 편해지면서 공원의 호수와 지천으로 피어난 철쭉과 비둘기와 호수물을 튕겨내는 잉어 떼가 보였다.
그중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호숫가에 오는 이들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탓에 아마 내게도 먹이를 바라고 왔겠지만, 내게는 잉어가 나를 보고 '수고했어'라며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27년 만에 면접이라니, 나 정말 너무 용감한 것 아닌가. 그런 용기를 낸 나를 위해 순대볶음과 맥주를 준비하고, 퇴근한 남편과 운동 다녀온 큰 딸과 '건배'하며 낯선 하루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허세도 좀 부렸다. 체할 정도로 긴장했다는 말은, 일부러 쏙 빼놓는다. 그건 나와, 멀고 먼 호수 속 잉어만 알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