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세 달에 두 번 정도는 김밥을 싼다. 김밥을 썰어 마치 도시락을 싸는 것처럼, 식구들 각각의 몫을 나눠 수대로 통에 담는다. 그러면, 각자 느지막이 일어나 식탁에서 자기 도시락을 알아서 찾아 먹는다. 아침 먹기 싫어하고, 특히 아침으로 밥은 더욱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김밥 도시락 앞에서는 군말이 없다. 그건 어쩌면, 어릴 때부터 가장 즐거운 날인 소풍이나 운동회 날에 먹었던 음식이라, 미각에 추억이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밥 전문점도 많고, 집 앞 반찬가게에서도 주말이면 김밥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다. 어쩌다 그런 김밥을 사 먹을 때마다, '역시, 내가 싼 김밥이 훨씬 맛있군' 하는 자긍심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안 싸서 그렇지) 누구든지 스스로 재료를 준비해 직접 김밥을 싸보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싸던지 간에, 사 먹는 김밥보다는 훨씬 더 맛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옆구리가 터질 수는 있겠지만, 맛없게 만들기는 어려운 음식 중 하나가 김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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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밥을 말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틀 전 무쳐 놓은 시금치 나물이 좀체 줄어들지를 않아서였다. 가족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시금치나물 좀 먹여보겠다고(?), 계란과 햄을 부치고 당근도 (이때가 많이 먹일 기회인지라) 아주 충분한 양을 채 썰어 살짝 볶는다. 조린 우엉과 단무지는 파는 제품을 이용한다. 어른들만 먹으면 이런 것도 안 넣고 그냥 김치를 씻어 넣거나 꽈리고추 같은 조림 반찬 아무거나 넣어도 좋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런 융통성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용으로는, 김밥집을 따라 (역시 냉장고 안에 남은) 치즈를 추가로 준비한다.
새로 한 밥이 좋겠지만, 오늘은 찬밥을 없애야 하는 것도 김밥의 미션이었다. 냉장고 속에 며칠 째 머물던 진짜 찬밥과 어제 먹고 밥솥에 남은 적당한 찬밥을 함께 모아 찜기에 찌면, 마치 지금 갓 지은 새 밥처럼 된다. 이런 건, 인문학 공동체에서 배웠다. 수십 명이 매일 함께 밥을 해 먹는 그곳에서는 밥이 모자라면 좀 곤란해서, 다들 넉넉히 하다 보니 언제나 밥이 조금씩 남는다. 누구는 새로 한 밥을 먹고 누구는 찬밥을 먹는 건 불공평하니깐,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면서 씻은 쌀 위에 찬밥을 올려 지었다. 그리고 밥이 다 되면, 위에 솟아 있는 새로 한 찬밥(?)을 아래 새 밥이랑 섞어 다 같이 새 밥과 헌 밥을 공평하게 먹는 것이다.
오래전 김밥을 싸던 초기에는, 집에 김이 있어도 시중에 김밥용으로 파는 걸 일부러 사서 썼다. 그런데 이제 아무 김으로나 상관없다. 오늘도 손 큰 친정 엄마가 언젠가 한 톳을 사 두신, 그 역시 두툼한 채로 줄어들 줄 모르는 전장 파래김을, 김밥을 썰거나 먹을 때 깔끔하게 떨어지라고 프라이팬에 약불로 살짝 구워 향긋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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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김밥을 직접 싸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온갖 재료를 준비해서 한 두줄 싸고 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번 말기 시작하면, 보통이 열 줄이다. 오늘은 찬밥을 모아서 싸는 날인지라, 밥 양에 맞춰 평소보다 더 적은 여덟 줄이 나왔다. 그런데도 오늘은 김밥이 다 팔리지 않고, 남아버렸다. 나처럼 김밥 좋아하고 잘 먹는 둘째가 배탈이 난 탓이다. 아침에 김밥을 다 싸고 나니까, 아프다며 제 방에서 나왔다.
놀라서 딸 손을 꼭 잡고 병원에 다녀오고, 손바닥 발바닥을 지압해 주면서 한동안 꼭 붙어있었다. 비록 김밥은 못 먹였지만, 김밥을 만들면서 내 안에 만들어진 포근한 기운과, 찬밥 신세였다 새로 따뜻하게 태어난 김밥의 영혼, 그리고 김밥 도시락을 들고 소풍 가던 천진한 날들의 즐거운 추억들, 그 모든 것들이 딸에게로 흘러가 어서 낫기를 기도했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빨리 괜찮아졌다. 저녁때, 남은 김밥 몇 개를 집어 먹다가 여전히 맛있는 걸 알고 좀 놀랐다. 그런 것의 영혼만 먹인 것이,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나보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