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빠~앙'

by 미르mihr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 보통은 큰길을 따라가지만 오늘은 평소에는 잘 안 가던 색다른 빵집에서 빵을 좀 사가고 싶어 져서 그 빵집으로 이어지는 뒷길을 택했다. 그런데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자동차 경적 소리가 '빵빠~앙'하며 요란하게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진다. 커다란 트럭이 뒷골목에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운전자가 없다. 요란한 경적의 주인공은 그 트럭 뒤에 있는 검정 승용차였다. 몇 번 울리고 말 줄 알았는데, 그 골목길을 걸어가는 내내 계속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 맴돈다.


귓 고막이 찢어질 듯해서, 귀를 막고 승용차 가까이 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들여다보았다. 중년의 남성인데 내가 쳐다보든 말든 계속 트럭만 노려보면서 경적만 울려댄다. 나는 양손 검지 손가락으로 계속 양쪽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빵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막 빵집 입구에 다다를 무렵, 그 경적 소리를 압도하는 성난 목소리의 욕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야? 어떤 XX야? 시끄러워 죽겠잖아, 내려 이 XX야~"


빵집을 들어가려던 나는 뒤돌아 성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골목의 한쪽, 큰길 쪽은 주로 가게들이지만 다른 쪽은 주거용 다세대 주택들이다. 편한 실내복 차림의 체격이 좋고 (경적을 울려대던 운전자보다 훨씬) 젊은 남성 주인공은 아마 (잠을 자다가) 이층쯤에서 달려 내려온 것 같았다. 내가 쳐다볼 때도 모른 척하던 경적의 주인공은, 더 크게 욕설을 해대는 주인공 역시 모른 척 차 안에 있었다. 욕설의 주인공이 차창을 두드리자, 경적 소리만 멈췄다. 대신 골목길에는 분이 풀리지 않은 성난 욕설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문제의 발단은 차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에 정차된 트럭이었다. 내가 그곳을 지나칠 때 트럭 운전자는 트럭에 있던 짐을, 큰길 쪽 어떤 가게의 뒷문 아마도 창고이거나 주방일 곳에 왔다 갔다 하면서 식자재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승용차가 경적을 울려대자, 그이의 표정을 보니 매우 난감해하면서도 하던 일손을 놓지 못했다. 아마도 짐을 (내리다 말고 가버릴 수는 없으니) 더 빨리 내리는 게 (승용차 운전자에게 가서 사정하는 것보다)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요란한 경적을 멈추지 않은 승용차 운전자도 아마 자기 생각에 가장 빠른 문제 해결 방법을 택한 것일 게다. 그 요란한 소리를 트럭 운전자가 어디에 있든 들리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골목길의 모두가 주목하면 더 난감해서 더 빨리 차를 빼주리라고 여긴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경적 소리를 구경하면서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에 성나 욕설을 하면서 뛰쳐나오던 사람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그는 지난밤에 힘든 일을 해야만 했거나, 아니면 밤에 글을 써야만 하는 작가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시간에는 집에서 정말 조용히 쉬고 싶었기에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그 소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줄 수 없었던 것일 게다.

*


예전에 싸움 구경이 재밌는 일이었던 건, 주변 사람들이 싸움을 말려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려주는 사람들의 안전망 안에서 싸우는 건, 큰 사고로 번지지 않는다. 오늘 골목길 사건에서는, 나처럼 구경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으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약간 조마조마했는데, 다른 이들은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 골목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인 듯했다.


마음을 놓은 나는 그 소리들을 뒤로하고 빵집으로 쏙 들어갔다. 빵 가게 안에서 빵들을 둘러보는데, 생각은 여전히 골목길에 가 있다. 트럭 운전자가 잠시 승용차 운전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면 어땠을까. 승용차 운전자는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는 대신, 잠시 차에서 내려 트럭 운전자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어땠을까. 욕설을 하며 내려온 성난 젊은이가, 승용차 운전자를 향해 좀 더 정중하게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귀만 막고 있지 않고, (내가 하고 싶던) 욕설(을 대신)하던 (용감한) 청년보다 먼저 그 승용차의 차창을 살짝 두드려봤으면 어땠을까. 만약 그 셋이 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애써 찾아간 그 색다른 빵집에서 빵을 고르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골목길은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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