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랑의 노래

by 미르mihr


큰 딸에게 '남친'이 생겼다. 그러자 둘째가 제 언니 들으라는 듯, "도대체 왜 연애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실상 지금 현재만 남친이 없을 뿐인) 둘째가 좋아하는 유튜브 프로그램은 '환승연애'이며, 좋아하는 아이돌 '공방'이나 '팬싸'에 가겠다며 티켓팅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한 사람에 대해 생활 속에서 일일이 신경 쓰고 감정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생겼으며 팬 서비스도 좋은 아이돌 덕분에 일상의 번뇌를 잠시 잊는 게 훨씬 좋다나 뭐라나.


사랑을 하면, 세상이 아름답다.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또 내게도 그런 두근거림과 열광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딸들이 아주 약간은 부럽다. 내게는 다시 찾아오지 못할 마음들이다. 그러나 많이 부럽지 않고 아주 약간만 부러워하는 이유는, 잔잔하지만 넉넉하고 아마도 끝나지 않을 영원한 기쁨이, 아마도 딸들은 모를 그럴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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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된 친구와 둘이 떠난 여행길에서, 친구가 문득 엉뚱한 질문을 했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그런데 죽기 전에 과거의 단 한순간으로 되돌아 가게 해준다면 언제로 가겠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것인가? 잠깐 사이에 지나온 삶의 수많은 행복한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친구들, 학창 시절, 신혼살림, 아기들, 여행들, 책 출판 등등등.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픈 독보적인 단 한순간으로 꼽자니 모두 망설여졌다. 그러다 '아, 그 때라면!' 하는 순간이 솟아올랐다. 그건 남편과의 연애가 막 시작되려던 어느 날의 한 장면이다.


우리 둘이 사귀는 건지 어떤 건지 아직 애매하던 어느 날, 남편은 군대에 오라는, 그것도 날짜가 매우 촉박한 '영장'을 받았다. 입대 전 뭘 하고 놀까 하다,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야간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서 새벽에 동해바다에 도착해 일출을 바라보는 거였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때는 한여름 휴가철이었다. 우리가 바다를 생각하면 모두들 바다를 생각하는 그런 날들이었던지라, 야간 버스는 피서객들의 행렬로 인해 고속도로 위에서 거의 멈춰 서 있다시피 했다.


결국 고속도로 위에서 아침이 밝아왔고 우리는 버스 안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힘들고 지루하고 배도 고팠다. 다행히 휴게소가 나타났고, 우리처럼 밤새 차 안에 갇혀 오랫동안 배를 곯은 승객들은 우르르 휴게소 식당으로 몰려갔다. 거기서 우리도 마주 보고 앉아 별 말없이,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밥을, 함께 먹었다. 더 설레고, 더 흥미롭고, 더 행복하다 느꼈던 순간들을 제치고,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마침내‘ 안도하며 밥을 함께 먹던 그 장면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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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사랑을 할까. 이유들은 다양할 테지만, 어떤 사랑이든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그래서 생의 욕망을 불어넣는다는 건 같을 것이다. 아이돌 대신 지금 나의 최애(愛) 선생님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타인을 향한) 사랑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렸다.


"사랑이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3부 부록 - 감정에 대한 정의 6)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기쁨의 원인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 즉 타인-외적 원인이다. 사랑이란 타인에게 달려있는 조건부적 기쁨이다. 그래서 이 수동적인 관념은 똑같은 그 사람-타인 때문에, 크나큰 기쁨이 어느 순간 크나큰 슬픔으로 돌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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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나와 마주 앉아 커피를 내려 두 개의 찻잔에 나누어 담는 남편의 얼굴을 (빤히 볼 시기는 지난리자) 안 보는 듯 살짝 살짝 들여다본다. 오래전 그 남자는 정말 사라져 버렸나? 그 남자는 없고, 나 역시 그때 그 여자는 아니다. 그런데 또 오래전의 그 여자와 남자가, 웬지 영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설레고, 싸우고, 돕고, 외면하고, 간섭하거나 무심했던... 그런 수많은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서로에게 침투하고 스며들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많은 것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래 전 그 여자는 남편 안에, 오래 전 그 남자는 내 안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오래 전 그날처럼, 우리는 매일 별 말없이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통해 느끼는 넉넉한 잔잔함은, 자기 바깥에 있는 대상 즉 '외적 원인에 대한 관념'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사랑, 즉 '내적 원인에 대한 관념'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이런 사랑은, 또다시 나의 최애(愛) 선생님에 따르면, 크게 설레지 않고 잔잔하지만 (신의 사랑처럼 매우 지적이어서) 외부 조건에 따라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고 한다. ^.^


"신은 무한한 지적 사랑(지적 사랑 이외의 어떠한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으로써,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신의 본성은 원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관념을 수반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5부 정리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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