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오후, '저녁엔 뭘 해 먹나' 하는 매일 하는 똑같은 고민이 또 들었다. 나는 왜 똑같은 고민을, 이십 년이 넘도록 매일, 계속하고 있는 걸까?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해야 할, 나 자신의 형편없는 장보기 실력과 요리 솜씨에 다시 한번 '잉카의 우물만큼'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쯤 했으면 이왕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해서, 그냥 아무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뚝딱뚝딱 밥 한 상 차려내는 실력자가 될 결심을, 나는 대체 왜 안 하는 것인지, 이런 나를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늘이 무심한 건지 이런 형편인 나의, 남편은 거의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일정한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남편을 위한 저녁상을, 실력과 노력이 부족한 나는 늘 '급하게' 차리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아이들 돌보느라 그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엔 동네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느라 그랬고, 요즘엔 고요하게 글쓰기에 대해 빠져 있느라 그렇다.
한탄과 고민을 하다 보니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 결국 남편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 할 수 없지. 돼지고기도 두부도 없으니 참치캔 하나를 따 대한민국 대표 메뉴 김치찌개를 자취생 버전으로 끓였다. 그거 하나로는 허전할 듯싶어 어릴 적 도시락 단골메뉴인 계란말이를 돌돌 말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저녁은 칼국수 먹으러 갈까?"
*
식사 준비 다 해놨더니 외식을 하자고 말하는 상황. 이런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 몇 년 전에만 벌어졌더라도 나는 버럭 성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노화도 시작되고 벌써 수년 째 채식위주의 식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기력은 예전과 다르다. (아니면 혹시, 철학과 인문학 위주의 공부로 도를 닦은 게 효험이 있는 걸까?)
남편이 말한 '칼국수'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거의 이십 년 된 우리들의 단골 칼국수집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집이 멀어져 자주 못 가지만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고 특히 몇 년 전부터 함께 사는 친정 엄마도 '최고로' 좋아하는 곳이다. 우리는 서둘러 외출준비를 하고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나는 남편에게, 그냥 일상적으로, 그저 말을 걸려고, 물었다.
나 : "점심에 뭐 먹었어?"
남편 : "김치찌개"
나 : "엇! 저녁에 김치찌개 했는데, 김치찌개만 두 끼 먹을 뻔했네!"
남편 : "그럼 어때, 김치찌개 맛있는데."
그랬다. 실상 남편은 두 끼 연속 김치찌개를 먹어도 아무런 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두 끼 연속 김치찌개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은, 실상 바로 나다. 아무거나 가리지 않는 남편과 달리, 나야말로 자타공인 '입 짧은' 인간이다. 얼마 먹지도 않을 거면서 (아니, 얼마 먹지를 않기 때문에!) 게다가 음식이나 요리에 대해서는 글쓰기만큼도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나는 매일 매끼 다른 걸 먹고 싶어 한다.
그러니 '오늘은 뭐 해 먹지?'라는 생각으로 내가 매일 한숨을 내쉬는 건, 남편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상 입 짧은 나 자신 때문에 하는 고민인 것이다. 그럼에도 밥 준비를 할 때면 나는 언제나 (절대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먹이기 위해' 밥을 한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혹시, 거의 매일 나와 저녁을 함께 '먹어주는' 착실한 남편 덕분에, 나는 '입 짧은' 나 자신에게 매일 새로운 밥상을 차려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깨달음 덕분인지 몰라도, 칼국수는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이미 찬밥이 되어버린, 어제의 (자취생 버전) 김치찌개와 (후다닥) 계란말이까지도 참 따뜻한 맛이 났다. 그러나 밥상 차리기는 내게 여전히 어려운-피하고 싶은 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