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반. 부엌에서 띠링띠링 소리가 울린다. 엄마가 냉장고 문어 놓고 뭘 하시나?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소리가 계속된다. 방에 있던 나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그런데 부엌에는 엄마도 없고, 냉장고 문도 얌전히 잘 닫혀 있다. 이상하다, 분명 냉장고 문이 한참 열려 있을 때 나는 소리인데.
그때 또다시 띠링띠링 소리가 다섯 번 울린다. 어, 냉장고가 아닌가? 나는 현관문과 인터폰과 띠링 소리가 날 가능성이 있는 온갖 곳을, 마치 탐정처럼 유심히 들여다보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그때 또다시 띠링띠링 소리가 정확히 다섯 번 연속 울렸다. 뭐지? 다시 부엌 냉장고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다. 잠시 후 띠링띠링 소리가 또 다섯 번 울린다. 범인은 역시 냉장고였다. 그런데 잘 닫혀있는 냉장고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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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비데가 고장 나서 AS기사를 불렀는데, 그저 전원을 껐다 켜주고 가서 황망했던 기억이 떠올라 냉장고를 껐다 켜보고자 했다. 그러나 냉장고의 전원 코드는 냉장고 뒤편 어딘가에 있고 나로선 커다랗고 무거운 냉장고를 벽 안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지. 두꺼비집을 열고 냉장고 전원 쪽으로 전기를 보내는 '전열 2'를 내렸다가 올렸다. 물론 그쪽 전원에는 냉장고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거실 화장실의 비데와 에어 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와 하이라이트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또다시 띠링띠링 소리. 이 좋은 방법이 안 먹히면, 진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 '냉장고 소음', '냉장고 띠링', '냉장고 문 열림 소리', 'XX냉장고 띠링 소리' 등으로 검색해 보니, 비슷한 사례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같은 모델이 아니고, 나오는 소리도 달라서 어떤 처방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함부로 따라 했다가 더 고장낼 수도 있으니, AS를 요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고객님~ AS 기사님들 스케줄에 따라, 5월 4일 토요일에 방문 가능하십니다."
"예? 지금 화요일인데요. 토요일까지 저 소리를 들으라고요? 1분마다 5번씩 띠링띠링 대는데요?"
"네, 고객님. 지금 가장 빠른 방문은 5월 4일 토요일이십니다, 고객님~"
정말 황당했지만, 콜센터 직원이 뭔 죄가 있겠나. 일단 그러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 띠링 소리를 토요일까지 듣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냉장고 앞에서 계속 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와 딸들도 공감하다가 한 마디씩 보탠다.
"진짜 소리 시끄럽네. 그래도 어쩌겠어. 기다려야지"
"시끄럽긴 한데... 엄마 그냥, 그게 음악 소리라고 생각해 봐요."
그래, 이래 봬도 내가 요가도 하고 템플 스테이에서 명상도 한 사람 아닌가. 냉장고의 띠링 소리를 음악 소리로 여겨보자! 띠링띠링 소리에 맞춰 나도 입으로 소리를 따라 하면서 춤추듯 몸을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전혀 음악 같지 않고, 신경이 곤두서기만 했다. 그럼 새소리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띠링띠링 소리가 날 때, 동틀 무렵 새들이 떼로 지저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뒷골만 당겨왔다. 아, 이러다 정말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은데!
*
띠링띠링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느니, 검색에서 나온 여러 가지 방법을 그냥 직접 실험하는 편이 신경이 분산될 것 같았다. 온도 조절기를 드라이기로 20분 정도 말렸다는 사람도 따라 해 보고, 냉장고 판 아래쪽에 붙어 있는 경첩이 헐거워져 그럴 수 있다는 말에 따라 찾아보았으나, 모델이 다른지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냉장고 위와 아래의 먼지를 싹싹 닦으니 되었다길래, 십 년은 묵은 것 같은 먼지도 열심히 닦아보았다. 그러나 어김없이 1분 간격으로 계속 띠링띠링~ 소리가 다섯 번씩 울려서,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다시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AS기사와 통화라도 좀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냉장고 앞에 선 내게 전화 속에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던 AS 기사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AS 기사가 방문해야만 해결될 것 같습니다."
"아악~ 그럼 제발 일찍 와주시면 안 될까요?"
"스케줄에 따라가는 거라서, 죄송합니다만 토요일이 가장 빠릅니다.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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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와 몇 시간 동안이나 사투하다 지친 나는, 이젠 띠링띠링 소리에 경끼를 일으킬 것 만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토요일까지 냉장고 전원을 꺼버리겠다는 극단의 조치를 내렸다. 다행히도 우리 집에는 김치 냉장고가 하나 있다. 그러나 그곳도 공간이 남아돌지는 않는다. 냉장고를 열고 내 생각에 중요한 것들만 김치 냉장고로 옮겼다. 나머지는 먹다가 상하면 버리기로 했다. 문제는 냉동고다. 얼음과 아이스크림과 녹으면 다시 냉동시킬 수 없는 것들 모두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엄마가 힘들게 까고 갈아서 넣어둔 마늘은 녹아내려도 먹어야만 하므로, 김치냉장고로 옮겼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냉장고 전원 코드를 찾아내기 어렵다. 퇴근한 남편을 닦달해보았지만, 피곤한 내색으로 혼자선 빼기 어렵다며 딴 데만 본다. 무던한 남편에게는 띠링띠링 소리가, 신경을 별로 자극하지 않는 눈치다. 할 수 없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 나는 처음 냉장고 전원을 끌 때처럼, 두꺼비집의 '전열 2'를 내려버렸다. 그리하여 냉장고와 함께 그 옆의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와 식기세척기와 하이라이트는 물론이고 비데까지 모두 전원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와 식기세척기와 하이라이트와 비데를 쓰려면 두꺼비집의 '전열 2'를 올리고, 다 쓰면 나면 반드시 다시 내리라고, 안 그러면 나는 제명에 못 산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랬더니 이제 냉장고는 예의 그 띠링띠링 소리로, 가족 누군가 화장실에 가 있다는 것까지 내게 알려준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