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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May 23. 2024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생협 매장활동가로 일한 지도 벌써 20여 일. 넓지도 않은 매장 안에는 물품의 종류와 가짓수가 참 많기도 많다. '그거 있냐'라고 물어보는 조합원님께, 있는 것을 '없다'라고 없는 것을 '있다'라고 (매우 철학적으로!) 대답하는 실수를 거듭한 끝에 이제 거의 모든 물품과 위치와 재고까지 겨우 눈과 손에 익히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조합원님들은 내게 좀 더 난이도가 높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1. "이 참외는 맛있나요?"

참외가 맛있어 계속 사갔는데, 지난번 샀던 참외 중 일부가 씨 부분이 조금 상한 것 같다고 하시며 물으신다. 나는 궁예의 관심법에 버금가는 투시력이라도 있는 것 마냥, 조합원님이 맛있냐고 물어보면서 들고 있는 참외를 아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음.... 글쎄요... 냄새나 빛깔은 맛있을 것 같이 생기긴 했는데.... 음..... 내 말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참외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기농으로 건강하게 재배한 참외라면 씨를 발라내고도 먹을만하다 생각하시기 때문인지, 고마우신 조합원님은 그날도 참외를 품에 안고 가셨다!   


2. "곤드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 먹나요?"

곤드레 나물밥을 좋아하는 나지만, 솔직히 내가 직접 곤드레 요리를 해 본 적은 없다. 도시서 태어나 자라고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생 곤드레잎도 실상 요즘 생협 매장에서 일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런 내 코앞에 대고 생 곤드레 이파리를 흔들거리면서, 조합원님은 대체 어떻게 해 먹느냐 묻고 있다. 역시 나처럼 아직 곤드레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으신 것이다. 나는 괜히 반갑기도 하고, 또 해본 적 없는 요리에 도전하려는 조합원님의 용기에 감탄해서, (유튜브에 물어보시면 다 나오는데요!)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 내가 좋아하는 곤드레밥을 떠올리며 말했다. "곤드레밥으로 많이 해 먹던데요!"


3. 소갈비 양념으로 돼지고기 해도 돼요?

아, 소와 돼지를 차별하는 분별심을 버리시려는 조합원님의 마음 자세가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게다가 돼지고기에서 소갈비 맛이 날 수도 있으니, '개꿀' 아닌가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네, 괜찮을 것 같은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말하고 나니, 내가 직접 해 먹어보지 않아서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조금 들어서 한마디 더 보태드렸다. "혹시 돼지 잡내가 날까 봐 걱정되시면, 맛술이나 생강을 더 넣으세요~" 그 말에 조합원님은 냉큼 소갈비 양념을 들고 가셨다.


4. 비트로 피클을 담그면 어떻게 되나요?

빨간 피클이 되지요! 이런 답을 원하는 건 아닐 테고 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 걸까? "피클이 너무 빨간 게 걱정이신가요?" 물으니 그렇다고 하신다. 나는 무를 가리키며, 그걸 추가로 구입하셔서 함께 담그시면 예쁜 피클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조합원님은 내 말대로, 무도 함께 안고 가셨다. 지금쯤 예쁜 피클을 드시고 계시려나?  


5. 값이 왜 이렇게 올랐나요?

이건 질문이라기보다는, 한탄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물가가 자꾸 올라서 걱정입니다." 비싸졌음에도 만지작대고 있는 건, 그래도 이미 사 가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리 비싸진 걸 먹어도 되나 싶은 '양심'때문에 머뭇거리며 답이 아닌 맞장구와 동조를 구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조합원님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들은 어쩌면 그저, '우리 이왕 만난김에 말이나 한 마디 더 주고받읍시다'하는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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