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맴도는

by 미르mihr

지난 봄부터 여름 사이, 우연히 만난 몇몇 이들과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에 도전했다. 언젠가부터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어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정말 할 수 있는지 한 번 도전해 보고 싶기도 했다. 어떤 특별한 날에는 의외로 쉽게 글감이 찾아와, 글을 쭉쭉 써 내려갔다. 그러나 보통의 날에는, 밤 12시가 되도록 도저히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내가 왜 이걸 하기로 했을까 후회했다.


그렇게 '매일' 글쓰기를 후회하며 책상 앞에서 멍하니 책장 쪽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파스칼 키냐르의 <<혀 끝에서 맴도는 이름>>이 눈에 뛰었다. 당시 내 심정을 딱 반영하는 제목의 책이었기에 당장 펼쳐 다시 읽어보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고정된 시선과 경직된 자세로 빠져나가는 단어를 향해 두 손을 내밀어 애원하는 자이다. 어떤 이름(nom, 명사라는 뜻도 있음)이나 하나같이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다."


글쓰기는 즐겁지만 동시에 괴롭다. 짝사랑이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것처럼. 책은 총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그중 책 제목과 같은 제목인 두 번째 부분에서, 작가는 짧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글쓰기가 전해 주는 행복과 괴로움의 혼재에 대해 비유한다.


*


죈느는 젊은 재봉사이다. 그 건넛집에 사는, 죈느를 사랑하는 콜브륀은 생계를 위해 수를 놓는다. 죈느는 콜브린에게 성서의 인물들이 수 놓인 자신의 허리벨트를 보여주며 그와 똑같이 수를 놓을 수 있다면,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죈느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와 똑같이 할 수 없어 매일 울다가 기도했다.


"오 주여, 천국에 계신 주님이든 황천에 계신 주님이든, 누구시든 제발 오셔서 저를 좀 도와주세요. 죈느의 아내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 기도를 들은 건, 공교롭게도 '황천의 주님'이었다. 그는 콜브륀에게 죈느의 벨트와 완전히 똑같은 무늬가 수 놓인 벨트를 주면서, 조건을 걸었다. '아이드비크 드 엘(Heidebic de Hel)'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1년 후 다시 찾아왔을 때 만약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녀를 지하세계로 데려가 자신의 신부로 삼겠다는 것이다. 겨우 이름 하나를 기억 못 하겠는가. 콜브륀은 아주 자신만만해서 흔쾌히 조건을 받아들였다.


죈느와 콜브륀은 결혼했다. 행복한 아홉 달이 지나갈 무렵의 어느 날 콜브륀은 너무 행복해서 잊을 뻔했던 약속 하나가 떠올랐다. 지하 세계에서 왔던 영주가 알려준 이름, 그게 뭐였더라.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고 있었으나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이름은 그녀의 입술 주변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데 있었고, 느껴지는데도, 그녀는 이름을 붙잡아서, 다시 입속에 밀어 넣고, 발음할 수가 없었다."


*


콜브린은 죈느에게 울면서 고백했다. 벨트의 수를 자기가 놓은 게 아니었다고. 지하세계의 영주가 와서 주고 갔으나,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이제 그를 따라가야만 할 것이라고. 그러자 죈느는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 지하세계로 그 영주를 찾아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오겠다며 길을 떠난다.


길 떠난 지 이틀 만에, 죈느는 작은 토끼의 길 안내를 받아 네 발로 토끼굴을 기어서 지하세계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사륜마차에 윤을 내고 있는 신하들을 만나, 영주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집 가까이에 이르러 집 그림자를 바라보는 동안 시장기가 느껴졌고 이름은 "거기 아주 가까운 곳에, 그의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해주려는 순간 그 이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죈느는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닷속 가자미의 안내를 받아 바다 밑 해초 벽 뒤편의 어둠 속에서 지하세계에 도착한다. 영주의 성 안마당에서는 벌써부터 (콜브륀과) 영주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요리사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죈느는 그들에게서 영주의 이름을 알아내고 열심히 되뇌면서 집으로 향해 간다. 그러나 그를 향해 반갑게 달려오는 아내를 보는 순간 허기와 피로가 느껴지면서, 또다시 이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영주와 약속했던 열두 번째 달이 찾아왔고, 죈느는 또다시 이름을 알아내러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높디높은 바위 산의 말똥가리의 안내를 받아, 산의 갈라진 틈 아래 깊은 구렁의 밑바닥에서 지하세계에 이르렀다. 거기서는 벌써 콜브륀을 데리러 가기 위한 마차가 준비되었다. 죈느는 아름다운 검을 든 기사들에게서 영주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그 이름을 말했다. 그때 약속대로 영주가 찾아왔고, 콜브륀은 그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영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천지가 캄캄해졌다.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끈다."


*


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떤 날 막힘없이 (내 보기에) 잘 써진 내 글을 대하면, 다음 날에도 또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이면 나는 지하세계 영주의 이름을 발음할 수 없는 '죈느'가 된다. 글은 비록 내 손끝으로 쓴 것이긴 하지만, 온전히 내가, 의식적인 내가 쓴 것은 아니다. '내가 썼다'라고 말하는 건, 지하세계의 영주에게서 얻어 놓고 자기가 수놓았다고 말하는 '콜브륀'이나 마찬가지다.


내 손끝 어딘가에는 지하 세계 저 아래의 심연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의 안내자는 매번 달라지고, 영주의 이름을 말해주는 이들도 매번 달라지고, 이름을 알아내도 그것은 머뭇거리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손 끝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어떤 날 전속력으로 내달려 손 끝에서 글자가 되지만, 그 역시 심연 속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지하세계의 것과는 또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더라도, 끝없이 나를 홀리며 유혹하는 심연의 빛을 하나씩 꺼나가는 게, 아마도 글쓰기이리라.


결론적으로, 나의 챌린지는 실패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글을 쓰지는 못했다. 어떤 날은 은 피곤하다는 핑게로 책상 앞에 앉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100일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을 뭘 쓸까' 궁리-기도하며 별 것 없는 나의 일상을 주시했고, 평소 같으면 그저 흘려버렸을 몇몇 생의 장면을 (지하세계의 영주 덕분에)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심연의 파편 중 몇 개를 꿰어, 여기에 '책'이라 이름 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