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평생 한 세 번쯤(?) 갈까 말까 한 특별한 곳에서 좀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옷을 골라 입고, 함께 갈 엄마는 뭘 입었나 빼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젊잖은 겉옷 안에 받쳐 입은 셔츠가 너무 알록달록해 보였다. 그러자 내 입에서는 이런 (틀린) 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안에 입은 게, 틀렸어~"
그러나 다행히도 엄마는, 그런 내 (틀린)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야, 내 눈에는 이게 딱 맞아~"
그래도 나는 좀 미안해서 다시 틀린 말을 옳게 고쳐본다.
"음, 다시 보니깐 안에 옷이랑 겉옷이 아주 잘 맞네. 겉옷이 점잖으니깐 안에 알록달록한 게 딱 조화를 맞춰주네~"
좀 전에는 내가 한 말에 아랑곳하지 않던 엄마는, 이번에는 신이 나서 어린애마냥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렇지? 그것 봐! 내가 딱, 잘 맞췄지!"
*
일부러 내 돈 주고는 안 갈, 아니 못 갈, 특급 호텔 뷔페 티켓이 어찌어찌 4장이 생겼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다섯 사람과 강아지 한 마리다. 내 돈 주고 한 장만 더 사면 다 같이 갈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한 끼 밥값으로 그런 소비를 하는 것에 대해, 나와 남편은 좀 낯설다. 공짜로 생긴 쿠폰 때문에 예산에 없던 큰 지출을 해야 하나 싶어, 우리는 티켓을 서랍에 넣어두고 그냥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너무 좋은 봄날들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만약 특급 호텔 뷔페에 가야 한다면, 이런 날씨에 가는 게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요번 주말 시부모님과 넷이서 그 티켓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남편은 좋아하며 부모님께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점심때쯤, 남편에게 이런 문자가 왔다.
"뷔페, 그냥 장모님이랑 처형 모시고 가자."
어라, 이건 무슨 가족 드라마 같은 데에나 나올법한, 훈훈하다 못해 오글거리는 주고받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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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문자를 받고 나는 물론 매우 기뻤지만, 또 약간 놀라기도 했다. 시부모님과 가자고 내가 먼저 말하긴 했지만, 말하지 않은 내 마음 한구석에는 함께 사는 친정 엄마와 미국서 잠시 귀국한 언니가 함께 가는 상상도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 모르는 새 독심술(讀心術)이나 관심법(觀心法)을 익혔단 말인가? 그러다가 다시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남편이었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친정 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나는 마음 한편에 괜스레 시댁에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요번처럼 우리에겐 꼭 필요치는 않지만 좋은 것을 얻게 되면, 친정 엄마보다는 시부모님께 먼저 선물을 하려고 한다. 또, 일부러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 미국에서 살게 된 언니는, 친정 엄마와 함께 사는 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일 때문에 한국에 올 때마다, (내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선물을 우리 가족에게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 언니가 몇 주 전에 일 때문에 귀국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우리 가족 하나하나를 위한 산더미 같은 선물을 끙끙거리며 들고 왔다.
장모를 모시고(?) 사는 훌륭한 남편은, 실상 처형에게 그 정도 선물을 받아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 역시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라, 상황이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훌륭해진 게 아닌가. 그러니 그런 우연의 포션이 큰 훌륭함 덕분에 누군가로부터 자꾸만 선물을 받는 것도 한편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니, (때때로 서로에게 종종 짜증을 내게 만들기도 했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오늘과 같은 훈훈한 장면을 탄생시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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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오늘 점심에, 특급 호텔 식당에 넷이 둘러앉았다. 마주 앉아 자세히 보니, 친정 엄마는 평소에는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기만 하던 목걸이와 반지까지 끼고 걸고 왔다. 젊을 때 엄마는 멋쟁이였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랑 함께 다니는 걸 싫어했다. 엄마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큰 멋쟁이였기 때문에, 화려함에 더해진 큰 목소리로 어딜 가나 곧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때문이다. 그랬던 엄마는 이제 귀가 어두워져, 그 크던 목소리가 훨씬 더 커져버렸다!
그런데 특급 호텔의 식사가 너무 훌륭해서일까? 오늘은 엄마와 함께인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도 없다. 이런 곳에서 매일 자연스럽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온 이들 대부분은 엄마가 입은 너무 젊잖은 재킷과 알록달록한 셔츠처럼 어딘지 약간 어색하다. 그래도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들과, 특별한 식사를 모두들 즐기고 있다. 이런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는데, 딸들과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엄마가 웬일인지 피곤하다며 빨리 집에 가자신다.
"아니 이런 날이 또 언제 있다고! 더 놀다 들어가지, 대체 왜 그렇게 피곤한데요?"
"며칠 전부터 설레서, 이 옷 저 옷 입어 보느라고 그랬지."
아, 그래서 엄마의 오늘 패션이 딱 맞았던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