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147~150
단어는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동자에게 삽과 곡괭이를 주듯이
아이에게 언어와 펜과 공책을 준다.
문법규칙은 문장구조적인 표시자이기 이전에
권력의 표시자다.
Les mots ne sont pas des outils;
mais on donne aux enfants du langage,
des plumes et des cahiers,
comme on donne des pelles
et des pioches aus ouvriers.
Une règle de grammaire est
un marqueur de pouvoir,
avant d'être un marqueur syntaxique.
노트에 필사해 둔 원문을 옮겨 적다가 <marqueur>를 <marquer>로 두 번이나 잘못 썼다. 그래놓고 동사인 <marquer>가 명사로도 쓰이는 건지 사전을 꼼꼼히 뒤적였지만, 그런 용법은 전혀 없다. 혹시 들뢰즈-가타리니까, 새로운 문법을 창조한 것일까? 그러다 다시 원문을 보니 <marqueur>다. 다시 필사한 노트를 들여다보니 <marqueur>라고 제대로 쓰여 있었다. 새로운 문법은, 들뢰즈-가타리가 아니라 바로 내가, 노안이 시작된 내 눈이, 창조할 뻔했다.
'표지'(標識)라 번역된 <marqueur>의 본래 의미는, 표시를 하는 자(者)다. 가축에 낙인을 찍는 사람이나 운동 경기에서 득점할 때마다 점수를 올려 적는 사람 등등. 들뢰즈-가타리가 <marquer>의 추상적 명사형인 <marque>가 아닌,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그러나 이제는 잊혀 나를 헛갈리게 만든 - 명사<marqueur>를 선택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큰 아이 돌잔치. 많은 손님들 앞에서 돌잡이를 하는데, 아이가 다른 좋은 것들 이를 테면 '연필'이나 '책' 같은 것들을 다 놔두고 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닌가. 몇 년 후 다시 둘째 아이 돌잔치. 이번에는 아이가 제대로(?) 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나는 돌잡이를 모두 책으로 준비했다. 영어책, 과학책, 수학책, 동화책... 등등. 아이가 그중 무슨 책을 골랐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시 나는 아이가 무슨 책을 골라도 상관없었기에. 그저 아이가 책을 고르게 할 계책을 꾸며낸 나 자신의 영특함에 찬탄하고 기특해할 뿐이었으니...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