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261~264
새로운 기호계가 스스로 대가를 치르며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내는 것은, 항상 변형을 통해서이다. 번역들은 창조자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변형과 번역을 통해 순수 기호들의 새로운 체계들을 만들어낸다.
C'est toujours par transformation qu'une nouvelle sémiotique est capable de se créer pour son compte. Les traductions peuvent être créatrices. On forme de nouveaux régimes de signes purs par transformation et traduction.
선선해진 날씨에 오랜만에 모두 함께 친정엄마가 좋아하시는 샤브-칼국수집으로 외식을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민생회복소비쿠폰까지 받아서 더 신바람이 난, 친정엄마는 손녀딸들을 향해 호탕하게 말을 건네신다.
친정엄마 : 얘들아, 너희들 샤부샤부에 산낙지 넣어 먹고 싶지?
아이들 :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예? 산낙지요? 아니, 아~니요~~
나 : (아이들의 옆구리를 찌르고 눈을 찡긋찡긋 하며) 에이 먹고 싶잖아, 먹고 싶으면 그냥 먹고 싶다고 말해~~
아이들 : 아하하하하, 네~ 먹고 싶어요~~
'곧이곧대로 말하는 기호계'와 '투사로 말하는 기호계'의 사이좋은 공존을 위해 이런저런 번역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의 욕망이 모호해지는 기호계'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