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1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303~306

by 미르mihr



몸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는 몸체의 적이다. CsO(기관없는몸체)는 기관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기관들"과 함께 유기체 즉 기관들의 유기적인 조직화와 대립한다. 유기체는... CsO 위에 있는 하나의 지층 즉 축적, 응고, 침전 등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Le corps n'est jamais un organisme. Les organismes sont les ennemis du corps. Le CsO ne s'oppose pas aux organes, mais, avec ses «organes vrais»... il s'oppose à l'organisme, à l'organisation organique des organes. L'organisme n'est pas... mais une strate sur le CsO, c'est-à-dire un phénomène d'accumulation, de coagulation, de sédimentation.






결혼하기 전까진,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 후, 그렇게 하기로 합의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자꾸 부엌에서 뭔가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양가에서 얻어 온 음식을 데우는 일마저도!) 하지만 해 본 적이 없으니, 시간은 오래 걸리고 뭔가 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 그래서 주로 사 먹었다. 그래도 그땐 나도 젊어서 괜찮았고, 둘이 벌어서 둘 만 먹으면 되었기에 매일 사 먹어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남편이 대가족의 장손이라는 것. 시댁에 갈 때마다 시어머니는 정신없이 부엌 일을 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신다) 내가 뭔가 거들면 어머니는 마음만 답답하셨고, 급기야 그냥 본인이 빠르게 하는 편을 자주 택하셨다.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이십여 년을 맏며느리랍시고, 명절이며 제사며 거들다 보니, 웬만한 한식류는 어쩔 수 없이 대충 다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제사에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고 시부모님과 협의(... 사실 하마터면 의절할 뻔...)했고, 그 몇 년 후 시부모님도 평생 도맡으셨던 제사일을 내려놓으셨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명절 상차림에서도 우리의 의무는 사라졌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허전한 마음에 여전히 명절에, 예전보다는 훨씬 줄어든 그러나 내 기준으로는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하신다.)


*


또 다른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생기니 둘 만 있을 때와는 달리 손수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먹여야만 했는데, 그건 전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이상하게도 순수하게, 내 몫이 되었다. 그리하여 회사를 그만둔 나는, 본격적인 먹거리 탐구(?)에 파고들었다. 한살림 같은 생협 활동과 더불어, 자연주의 육아, 공동 육아를 하면서 건강한 식재료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중요한 삶의 원리로 삼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내내 밥을 해 날랐다.


그러나... 그런 삶은 정말이지, 무척 힘들었다. 실상 나 자신은, 음식에 대해 큰 흥미가 없고 먹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던 탓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으리라.


'아이들아, 어서 커서 학교에서 주는 급식 먹자꾸나!'


그리고 정말, 그런 날들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음식에 흥미도 없고 먹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 나는, 새로 생긴 시간에 음식과는 거리가 먼 일만 했다. 그러다 어려운 책도 좀 읽어보겠다고, '인문학 공동체'라는 곳엘 찾아갔다. 그런데 생물학적 여성들만 한가득인 그곳에서는, 틈만 나면 서로서로 요리솜씨를 선보였다. 참으로 맛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군가가 해 주는 밥을 얻어먹었으면, 다음에는 나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부하는 내내, 나는 아이들을 해 먹였던 밥이나 명절이나 제사 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밥하기-노동을 했다. 그곳을 졸업(?)한 뒤에 깨달았다. 아, 사실 나는 그곳에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맛있는 밥 먹으러 갔었구나!


*


아이들도 다 컸고 그런 날들도 이제 다 지나갔으므로, 나의 밥하기-노동량은 줄어들어야 마땅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후 친정 엄마와 함께 살게 되자, 외식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유는 다섯 식구가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외식 메뉴가 없는 탓이었다.


게다가 이제 커버린(?) 아이들은, 내가 정한 식사 시간이나 식사 메뉴가 아니라, 본인들이 먹고 싶을 때 본인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자유와 힘이 생겼다. 문제는, 그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내가 그것을 자꾸 목도하고, 게다가 그동안의 어쩔 수 없이 향상된 내 요리 실력이, 그들이 아무 거나 먹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요전 날 어떤 날에는, 어쩌다 보니, 하루에 다섯 번 상을 차려내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 그래 놓고 하도 기가 막혀서 친한 언니를 만나 이렇게 하소연을 해봤다.


"요즘엔 내가 진~짜 부엌데기 같아."


그러자, 그이는 좀 냉소적으로 답했다.


"부엌데기 맞아, 현실을 받아들여."


그때 나는 (아마도 스스로는 부엌데기라는 현실을 받아들였을) 그이에게 더이상 대꾸 하지 않았지만... 지금 유기체와 몸체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여기에 이렇게나마 선언해본다.


"내 손-몸체는 부엌데기-유기체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내 손은 글을 쓸 거야, 책장을 넘길 거야, 그리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급기야 두 손으로 걷기도 할 거야....! 물론, 살아있는 한, 이 몸체를 위해서 맛있고 건강한 요리도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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