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401~404
아버지의 얼굴, 교사의 얼굴, 연대장의 얼굴, 사장의 얼굴은 재상연되기 시작하며, 다양한 원들을 가로지르고 모든 절편(분절)들을 다시 지나가는 의미생성의 중심과 결부된다. 유연한 미세-머리인 동물적 얼굴화는, 도처에 중심은 있으나 원주(주변)는 아무 데도 없는, 거대-얼굴로 대체된다.
Le visage du pére, le visage de l'instituteur, le visage du colonel, du patron, se mettent à redonder, renvoient à un centre de signifiance qui partout les divers cercles et repasse sur tous les segments. Aux micro-têtes, souples, aux visagéifications animales, se substitue macro-visage dont le centre est partout et la circonférence nulle part.
의미생성의 중심이 없고, 유연한 '미세-머리들'이 공존하던 원시사회는 어떻게 '거대-얼굴'을 금지했을까?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그들의 권력 중심에는 샤먼, 수장(추장), 전사가 있었는데 그 셋은 서로 침범할 수 없는 다른 영역과 시점을 지배했다고 한다.
세계의 신비를 아는 샤먼이 '자연의 권력'이라면,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을 도모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수장(추장)은 '문화(언어)의 권력'이었다. 또 수장(추장)에게 요구되는 성품이 참을성과 말솜씨라면, 전쟁에 임해야 하는 전사는 용기와 판단력에 의해 평가받았다. 수장(추장)과 전사는 대조적인 두 리더로써, 전사의 권력은 전시 외에는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고행이었다. 예컨대 샤먼이 되려는 자는 수십일 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니시에이션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마침내 샤먼이 되어도, 마을에서 떨어져 홀로 지내야 한다. 샤먼이 지닌 자연의 힘은 인간의 일상생활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샤먼이 될 사람은 무리에 섞여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하거나 정치가처럼 연설을 하거나, 가족생활을 즐기거나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기를 좋아하고, 인생을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고통스러운 체험을 떠맡으려고 하는 고독과 고난을 사랑하는 기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세계의 힘이나 지식이 아닌 현실세계에서의 무력함으로 인해 열리게 되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는 누군가 수장(추장)이 된다는 것은 곧, 그가 가난뱅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선뜻 내줄 수 있어야 위신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워하지 않고 남이 원하는 것을 전부 내주는 것은 수장의 역할이다. 부족에 따라서는 금세 수장을 알아볼 수가 있다. 수장은 다른 누구보다도 소유물이 적으며 볼품없는 장신구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것은 전부 남에게 선물로 줘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셋 중 아무도 절대적 권력이 지닌 왕이나, 살아있는 신이나, 다양성의 모든 가치를 포획하는 의미생성의 중심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