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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Dec 27. 2022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2

신화 읽기 노트

(이 글은 ‘솔’ 출판사에서 간행된 C.G. 융의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중 <작업>과 <원질료>를 읽고(91~159p) 필자의 관점에서 사적 편견을 반영하여 정리한 것임)



<작업> - "질료의 암흑으로부터 신을 해방시키라!"

  

 연금술사들의 작업은 1차적으로 화학적 조작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기록들은 매우 모호하고 난해해서, 심지어 같은 연금술사라도 이전 ‘선배’들의 원문에 담긴 상징적 형상들을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능력에 대해 한탄하기도 했다. 그들이 작업 과정에 대해 이처럼 모호하게 기록하고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융은, 화학적 실험 작업은 단지 그들의 심적 변화 작업에 대한 이름 붙이기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금술사들은 철학적 가르침과 모든 곳에서 끌어온 유비(類比)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개별적 사고의 종합적인 건축물을 구축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연금술의 방법은 한계를 모르는 확충(Amplifikation)의 방법이다.” (93쪽)


 ‘확충’은 불확실한 체험을 이해하기 위해 부족한 정보와 암시를 심리적 맥락으로 증대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꿈을 해석할 때 이 방법을 적용하는데, 연상과 유비의 자료를 통해 정보를 부족한 암시를 풍부하게 만들고 이해가 될 때까지 강화시켜 나간다. 이런 심리학적 확충의 방법을 연금술사들은 관조(觀照)라 불렀다.


 연금술에서 가장 오래된 상징은 용이다. 용은 뱀의 지상적 원리와 새의 공기 원리가 혼합된 상징으로서, 흔히 메르쿠리우스의 변이라고 일컬어진다. 메르쿠리우스(머큐리)는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헤르메스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 ‘계시하는 신이자 어둠의 주인이며 탁월한 영혼의 안내자’이다.





 또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용(우로보로스)의 그림은 연금술 작업 과정에 대한 비유적 형상이다. 연금술 작업은 항상 ‘하나의 것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순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를 10,11세기에 나온 마르키아누스 문서에는 “엔토판( ἑντὁ πᾶν, 하나 즉 전체)”이라는 문구로 표현했다. 순환하는 연금술의 작업은 자주 바퀴나 원형으로 상징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력을 다해 자연의 작업에 힘써야 한다. 이것을 시험해보다가 저것을 시험해보다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술은 다양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금술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항상 하나로, 그리고 동일한 것으로 귀결된다. 하나는 돌이요, 의술이요, 그릇이요, 방책이요, 태도이다." (99쪽, 주석 12)


 연금술 작업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영(靈, Geist)이 깃들어 있는 돌’ 하나를 발견해야만 한다. 작업 후에 금으로 변모될 속성을 그 안에 품고 있는 원질료는, 마치 그 안에 완전한 물체가 있기는 하되 아직 어두운 혼돈 속에 속박되어 잠들어 있는 상태와 같다. 이러한 원질료에서 순수한 물질을 추출하기 위해서 영이 깃든 기적의 돌에서 추출한 팅크제가 필요한 것이다. 융은 이러한 변환의 작업을  연금술사들이 심적 과정을 물질에 투사하는 작업이었을 것으로 설명한다.


 다만 이런 과정이 전의식적으로 일어나고, 당시에는 무의식을 설명하는 심리학적 용어도 없는 때이기 때문에, 연금술사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물질적 변화를 연결 지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의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의 이런 무의식적 체험은 그들이 남긴 꿈과 환영, 환상의 기록 속에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환상 속에서 나타나는 프네우마(Pneuma)와 누스(nous), 신인(神人), 데몬 등은 무의식적(객체적) 인격 속에서 발견되는 뛰어난 통찰력과 높은 수준의 의식성에 대한 관념이다. 이러한 특질을 자아(Ich)에 귀속시키면 매우 위험한 의식의 팽창이 일어난다. 기독교는 이런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간)라는 특정한 인격에 귀속시켰다. 반면 연금술은 이러한 특질을 신으로 충만한 하찮은 돌 혹은 기적을 일으키는 미지의 실체 등에 귀속시켰고, 연금술의 작업이란 바로 이러한 질료 안에 묶여 있는 신적 영혼에 대한 구원 작업이 되었던 것이다.


 “연금술사의 주안점은 신의 은총으로 자신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질료의 암흑으로부터 신을 해방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작업을 하는 동안 그에게 작업에서 나오는 치유의 영향이 부차적으로 주어진다. 연금술사는 구원이 필요한 자로 작업에 임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원이 작업의 결과에 달려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그가 신적인 혼을 해방시키는 것에 달려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금술사는 명상과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 (121쪽)


 역설적인 건, 신적 신비를 품은 기적의 돌은 어디에나 있고 심지어 가장 더러운 오물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점이다. 그래서 연금술 작업은 교회공동체와 같은 공적 조직의 업무가 아니라, 신적 기술을 수용한 철학자-연금술사의 개인적 작업이다. 그들 각자는 나름대로 자기의 것을 자기 식으로 말하며, 제자를 거의 키우지 않고, 혼자 실험하면서 고독에 시달리는 철저한 외톨박이였다. 그 대신 그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작업이 신의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원리상의 일치를 보인다. 모든 것은 비유로 표현되었기에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에게만 전달 가능하며, 신과 대가(Meister)들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이 열려있는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매한 자들은 연금술적 처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다가 잘못된 길로 빠진다. “책 한 권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책이 소개하는 여러 가지 관련 서적들을” “매 장마다 꼼꼼하게 읽어야”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작업으로 고독한 연금술사들을 지탱해 준 것은 실은, 서로의 책과 책 속에 표현된 비유와 상징의 무의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금술의 <원질료>


 연금술사들 각각은 원질료에 관하여 서로 모순적인 말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 까닭은 투사가 각각 다른 맥락 속에 있는 개인의 심적인 내용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수은, 청동, 철, 금, 납, 공기, 불, 생명수, 라피스, 하늘, 영(Geist), 그림자, 바다, 용, 카오스, 소우주 등 룰란드Ruland 사전에는 이러한 동의어들이 50개 정도 있다. 화학적 명칭과 신화적 명칭 외에 더 심오한 뜻을 암시하는 ‘철학적’ 명칭도 있다. (하데스, 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 양성체적 괴물, 혼돈의 덩어리, 소우주의 가장자리 등)




  

 <<장미원Rosarium>>에서는 원질료에 대해, ‘그들 자신의 뿌리’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만 뿌리를 둘 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원질료의 자율성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원질료는 원소적인 특성을 갖지 않은 것으로서 신이 마련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신비한’ 상태의 것이다. 이런 논의는 무의식에 대한 심리학적인 설명과도 상통한다. 무의식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동일시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각각 다른 개인들을 하나의 동일성 속으로 끌어들이고 사로잡을 수도 있다.


 원질료에 대한 비유 중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왕과 왕의 아들’이다. 무의식이 투사된 물질은 우리의 의식을 (매혹적으로) 끌어당기는데, 이것은 심연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왕으로 표현된다. 이 왕의 요청에 복종하려면 어두운 무의식 세계로 하강해야만 한다. (근친상간으로 비유되는 대극의 합일) 인간이 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할 때 죽음과도 같은 불안도 느껴지지만, 미지의 영역에 대한 유혹적인 매력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이때 의식은 해체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실질적인 정신분열증)





 “현자(철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근친상간이 일어났기 때문에 왕자의 죽음은 미묘하고 위험한 일이다. 무의식으로 향한 하강으로, 의식은 위험한 상태에 처한다. 왜냐하면 마치 의식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용에게 잡아먹힌 원시 영웅이 처한 상황이다. ‘의식 수준의 저하 abaissement du nivean mental’는 … ‘영혼의 위기 peril of the soul’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태를 촉발하는 것은 금기를 깨는 것이고 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가장 무거운 처벌이 따른다.”


 이러한 무의식적 대극은 의식의 간섭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자(현자)가 야기한 무의식의 대극은, 뜨거운 지옥’불’을 변용을 위한 부화열(孵化熱)로 활용한다. 영웅은 지옥불을 통과하며 (대머리가 되어) 젖먹이로 다시 태어난다. 대지 속의 ’불’ 혼돈이기도 하지만, 죽은 물질만은 아닌 대지의 ‘혼과 영’이기도 하다. 연금술은 이러한 불의 이미지를 아버지(무의식이 투사된 물질인 원질료)와 아들(영, 새로워진 의식?)이 하나 되게 하는 성령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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