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용쟁호투>
초등학교 시절 추억의 영화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고를 수밖에 없는 영화가 한 편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엄청난 공을 들이고서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영화라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소룡 영화를 보려고 시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서도 그렇고 나이가 어려서도 그랬다. 모두 ‘고교생 입장가’ 혹은 ‘고교생 관람가’라는 등급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서야 근근이 이소룡 영화를 보게 되었다. 동네 형을 꼬셔서 같이 갔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바로 <용쟁호투>였고, 이소룡이란 배우에 ‘깜놀’해서 지금까지도 ‘찐팬’으로 자부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즌에서의 마지막 분투이자 청소년 시즌으로의 진입을 필사적으로 시도할 때의 영화였다.
이소룡이란 이름이 또 들려오고 있다. <이소룡-들>이란 다큐멘터리가 수입 상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이소룡은 대단한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화제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이소룡’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추석이었다. 추석 특선 프로라며 그가 주연한 <정무문>이란 영화를 개봉했는데 한마디로 인산인해였다. 입장 등급은 ‘고교생 입장가’라고 붙어 있었고. 어른들을 설득해서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 우리들끼리 관람을 도모해 보았지만 줄에도 밀리고 나이에도 밀려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서 개봉한 <당산대형>이란 영화 역시 ‘고교생 관람가’ 등급이어서 소위 우리끼리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빨리 유명해지는 사람도 있나 싶었다. 그해 추석 이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배우였는데 이렇게도 보기가 힘들다니. 배우도 작품도 알지 못하면서 소위 ‘이소룡 영화’를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된 것이다.
<정무문>과 <당산대형>에 이어 또 한 편의 이소룡 영화가 그해 겨울에 개봉되었다. 역시나 ‘고교생’을 기준으로 정해진 등급이어서 개봉관 관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를 넘겨서 개봉관보다 한 등급 아래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야 동네 형과 눈이 맞아서 관람을 도모했고 기어이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영화가 이소룡의 유작이자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공개된 이소룡 주연작 <용쟁호투>다. 초등학생 입장으로는 에베레스트 등반만큼이나 힘들게 이루어낸 이소룡 영화 관람 성공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소룡이 최후로 찍은 영화를 최초로 보게 된 것이고, 초등학교 시절의 영화로서는 마지막 추억이자 도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껏 영화를 숱하게 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좋아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배우가 이소룡(Bruce Lee)이다. 어떤 면으로 봐도 매력으로 똘똘 뭉친 배우랄까 저런 배우가 있을 수 있나 싶어서 푹 빠져버렸다. 무술가이기도 했던 그의 액션 퍼포먼스야 말할 것도 없고,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순진한 웃는 모습,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때의 다양한 표정, 상대방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 그의 매력을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초딩 관객은 이소룡이라는 블랙홀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때 마음을 낱낱이 반추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처음 본 이소룡 영화 <용쟁호투>에서 특이하고 신기하게 보였던 장면들을 우선적으로 떠올려 보기로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 본 이소룡의 모습은 앞모습이 아니라 옆모습이었다. 그 대련 장면에서는 리(이소룡)의 피부가 검게 보였기 때문에 날카로운 이미지였지만, 대련이 끝나고 텀블링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웃는 모습이 그의 이미지를 다소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 장면에 이어서 제자를 가르치는 리의 모습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내용은 그럴싸한데 그의 표정과 말투가 독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돈씽크필’ 대사 장면이다.
생각하지 마. 느껴.
Don’t think. Feel.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거야.
It is like a finger pointing a way to the moon.
손가락에 정신을 쏟으면 하늘의 빛나고 아름다운 걸 볼 수 없어.
Don’t concentrate on the finger or you will miss heavenly glory.
절대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마, 절을 할 때라도.
Never take you eyes off your opponent, even when you bow.
리 선생이 소년 제자를 가르치며 들려주는 꽤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말이었지만 제자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며 가르치는 리의 모습이나 그것을 대하는 제자의 표정은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다. 날카로웠던 리의 모습을 부드럽게 만든 유머러스한 장면이었다.
리의 대사가 의미 있게 들리면서 웃기기도 했던 또 하나의 상황은 ‘한의 섬’으로 가는 배에서 벌어진다. 허세 작렬 백인 무술인이 시비를 걸어올 때, 리가 그를 꼬드겨서 애먹일 때 써먹었던 대사가 바로 그것이다.
싸우지 않으면서 싸우는 무술이라고 할 수 있지.
You can call it the art of fighting without fighting.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그걸 핑계로 쪼끄만 동양인을 패고 싶은 마음이 급했던 백인 무술인은 제 꾀에 빠져서 작은 배에 고립되는 곤욕을 치르는 장면이었다. 싸우지 않아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상대가 멍청하면 그럴지도. 그때는 웃고 말았던 장면이지만 지금 보면 시사하는 바가 더 크게 느껴진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저서를 펴낸 철학자가 있었듯이.
<용쟁호투>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코 오하라와의 시합을 꼽겠다. 상대역인 밥 월이 무술인이어서 리얼하게 대결을 벌인 탓도 있겠지만, “세상에 저런 식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니!”라며 충격을 받았다. 한마디로 ‘놀랄 노 자’였던 것이다. 흔히 복수라고 하면 분노에 찬 표정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가.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죽으라고 애쓰는 모습이 복수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것이었다. 그런데 여동생의 복수이기도 한 오하라와의 대결에서 보여준 리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리의 복수는 분노의 티 하나 안 내는 냉정한 표정으로 시작된다. 냉정하다 못해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가지고 놀 듯 무시하는 톤을 유지하며 실력으로 완전히 끝장을 내버리는 것이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모욕으로 치가 떨릴만한 기가 막힌 복수 장면이었다. 리가 “뭐? 어쩌자고?”하며 묻는 듯한 표정으로 춤추듯 좌로 우로 스텝을 밟으며 발차기를 날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추정이긴 하지만, 이소룡의 찐팬이 되어버린 첫발은 이 장면에서부터 떼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지금 봐도 후련하니까.
오하라와의 대결은 압권의 액션 장면으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서 기어이 분노를 슬픔으로 승화시키듯 상대방을 보내버리며 짓는 표정 연기가 이어진다. 그 퍼포먼스는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고 평가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 오묘한 표정에 왕창 웃어버렸던 것이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긴 했지만.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은 액션 장면의 지도를 맡기도 했다. 손과 발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유명한 쌍절곤, 두 개의 곤봉, 하나의 기다란 봉을 사용하는 장면까지 본인이 가능한 모든 액션을 총출동시키고 있다. 커다란 훈련장에서의 액션에서는 손과 발로 어떤 액션을 보여줄까를 애써 고민한 듯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적을 상대로 열연하는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러 가지 액션 장면 중에서도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거울방에서의 격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보기 힘든 액션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유명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장면을 좋아한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예술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이소룡 스타일의 액션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정서로서는 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의 캐릭터와 액션이 보여주었던 시원하고 통쾌한 패턴에 길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 암기나 독극물 같은 꼼수가 아니라 정상적 대결로 상대와 대결하는 정통 액션을 기대했다는 얘기다. 차라리 입으로 물지언정 입에서 독을 내뿜거나 숨기고 있던 무기를 꺼내는 식이 아니란 것이다. 거울을 이용하여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꼼수도 이소룡의 시원한 한방이 나오기까지 참아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처음 볼 때 거울방에서의 액션은 신기하긴 했지만 시원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용쟁호투>가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남겨 놓은 얘기도 많다. 이소룡이 긴장해서 몇 주간 촬영하기도 힘들어했다, 오하라와의 대결 중 깨진 병 장면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다, 뱀이 나오는 장면에서 실제로는 뱀에게 물렸다, 양사가 연기한 볼로란 이름도 이소룡이 지어준 것이다, 엑스트라로 출연한 성룡을 이소룡이 봉으로 잘못 때려 많이 다치게 했다, 감독 로버트 클루즈는 이소룡을 몰랐다, 이소룡은 총을 사용한 액션도 하고 싶었으나 제작진에서 듣지 않아서 짜증을 냈다... 그중에서 제일 귀가 쫑긋했던 얘기는, 이소룡은 <용쟁호투>에 아름다운 중국 문화를 많이 집어넣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용쟁호투>를 봤을 때 잘살지 못하는 외국 어린이의 눈에는 아름다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모습이나 환경이 초라해 보였다. 최근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소룡-들>에 출연했던 중국인 감독도 그때는 홍콩이 어렵게 살던 때라는 얘기를 했다. 과연 이소룡은 이 영화에 찍힌 중국 문화 형태가 마음에 들었을지 궁금하다. 미국 제작사와 합작으로 찍은 첫 번째 영화였던만큼 이소룡에겐 어떤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궁금하다. 영화에서 이소룡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힘든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이소룡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날아오르기 전의 용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용쟁호투>가 미국에서 개봉하기 3주 전에 이소룡이 사망했다고 한다. 세월이 한참 흘렀어도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용쟁호투>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니 말이다. 지금까지도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슈퍼스타가 된 사실도 모르고 떠난 게 안타깝고, 이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로 어떤 액션을 소개했을지를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는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으면 용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출세했다는 말을 ‘용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이소룡이 아직 이무기였을 때 <용쟁호투>는 여의주였던 셈이다. 아쉬운 점은 여의주를 입에 물자마자 더욱 활약해 주길 바라는 세상을 버리고 승천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용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기 전에 서둘러서.
이후 홍콩의 유명배우가 된 사람들이 <용쟁호투>에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성룡의 출연과 부상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장면이었을까 궁금했던 생각이 나서 그 장면을 보태어 본다. 이소룡과 성룡의 공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