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의 영화관람기
초등학교 시절에는 만화영화에나 관심이 많았지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으니 유명하다고 들었던 영화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나이가 어린것만으로도 보는데 제한이 있었으니 영화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동네 형들이나 심지어 친구들한테 듣는 말도 있다 보니 초등학생 관람이 불가했던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자꾸 커졌다. 초등 고학년이었을 때는 일탈을 해서 고교생이어야 입장할 수 있는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등급을 매겨놓고도 노출과 폭력의 수위가 어지간하면 다 잘라버리던 시절이었으니 고교생에게 뭐 그리 대수로운 걸 보여줬겠나만은.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게 살짝 두렵기도 했다. 시커먼 교모와 교복의 느낌도 그랬지만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도 엄청 엄하다고 들어서 그랬다. 하지만 어른으로 한 발짝 다가서는 단계인데 싶은 마음에 은근히 기대되는 것도 있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폭이 늘어나리라는 뭐 그런 기대였다. 머리 박박 깎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은 차원이 다른 영화를 보러 다니는 척했다. 중학교에 가면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벽을 넘는 방법도 있나 싶었다.
중학교 때 본 영화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포세이돈 어드벤처>다. 봄 소풍이 있었던 날 교복을 입은 채로 보러 갔던 탓에 마음 졸이며 봤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관람가 영화라면 문제없어야 마땅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준을 뚜렷이 말해주지 않아서 뭘 하든 교외단속반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러 다녔어도 한 번도 걸린 적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에로틱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영화가 주 단속대상이지 않았을까 싶다. 걸린 친구들 보면 거의 그런 영화였으니까.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본 적도 있지만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걸리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중학 시절에는 어떤 영화들이 나왔고 그중 어떤 영화를 골라서 봤을지 궁금해서 신문광고를 찾아보았다. 그때 영화들이야 뻔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맞다, 이런 영화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이 보였고, 나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본 것 같았다. 다양하게 봤다기보다는 볼 수 있는 건 다 봤구나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나름의 구역 정리라도 해보려고 고민해 보니 비슷한 무리로 보이는 영화들의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 같았다. 딱히 장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시절 경향에 따라 만들어졌던 그룹의 모양새를 보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권격 무술영화를 본 흔적이 가장 많이 보였다. 이소룡의 여파로 홍콩,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들이 더욱 많이 만들어진 시기였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봤던 <맹룡과강>은 이소룡의 정식 주연작으로는 마지막으로 수입된 영화였다. 그 외에는 홍콩 무협영화의 거물답게 왕우의 주연작들이 많았다. 외발차기 퍼포먼스를 보였던 <냉혈호> 그리고 주제가까지 크게 히트했던 <스카이 하이>가 그중 평가가 좋았었다. 우리나라 무술영화들도 꽤 있었는데, 한국 권격영화의 시작이라고도 하는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이 제법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에 <용호대련>의 주연이었던 재미교포 한용철(챠리 셀)이 나오는 영화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 <일대영웅>이란 한홍 합작영화의 주인공 박종국의 무술실력도 제법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당산대형>에서 이소룡과 공연했던 여배우 이이가 출연한 영화이기도 했다. 홍콩 영화 <홍콩서 온 불사신>도 인기 있었던 무술 영화였다. 주연을 맡았던 양소룡이 스텝을 밟으면서 지르는 발차기 등 이소룡의 흉내가 제법 먹혔기 때문이었다.
"이소룡을 배출한 가화전영이 심혈을 기울인 오리엔탈액션", <일대영웅>
"이소룡의 펀치는 우악스럽고 무디지만 왕우의 주먹은 섬세하고 파괴적이다!", <냉혈호>
"중국계 이소룡이 태권의 왕자라면, 한국계 한용철은 태권의 황제다.", <용호대련>
"이소룡의 유일한 후계자 양소룡 주연의 점보 액션 거작", <홍콩서 온 불사신>
무술 영화 광고 카피에는 하나같이 '이소룡'이란 이름이 올라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무술 영화를 보러 다녔고 참 많이도 봤지만 볼만했던 무술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소룡이 일으킨 무술영화 붐에 올라타 보려는 갈망에 정신을 못 차리던 시기라서 킬링 타임이 아니라 웨이스팅 타임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무술 영화들이 많았다.
그때의 경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현상은 청소년 영화 즉 하이틴 영화의 붐이었다. 임예진이란 하이틴 스타가 떠오르자 이덕화, 전영록을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하이틴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그 시발점이 된 영화는 임예진, 이덕화 주연의 <진짜 진짜 잊지 마>였다. 고교 시절의 첫사랑 소녀를 회고하는 식의 스토리였는데,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의 주인공 임예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뒤를 이으려고 너도나도 질세라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해서 내보내다 보니 "청소년 영화 붐,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하이틴 영화의 인기가 대단했다. <너무너무 좋은 거야>, <이런 마음 처음이야>, <정말 꿈이 있다구>, <소녀의 기도>, <울면 바보야> 등등 제목도 재미있게 붙였고, 적당히 멜로적인 서사로 시간도 잘 가는 전형적인 팝콘 무비였다. 하이틴 영화도 세어 보니 보기는 많이 봤는데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다. 하이틴 영화가 붐을 일으킨 이유? 성별로 갈라놓은 학교를 다니며 꽤 엄한 시스템 아래 교육을 받았던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나름의 스트레스 배출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 아니었을까. 마음을 휘어잡는 감동은 없어도 친구와 노닥거리듯 잔재미에 끌려 보는 게 하이틴 영화였다. 참한 용모의 주인공에 수줍은 사랑 얘기 한 토막이면 충분했던 관객들을 대상으로 편하게 만든 영화들이었다.
하이틴 영화라는 장르가 붐을 일으켜서 소소한 재미는 봤겠지만 엄청난 히트를 날린 영화는 없었다. 반면에 당시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만큼 대박을 터뜨린 우리나라 영화들이 있었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가 그런 작품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그 시절에도 여러 번 봤던 일컫자면 인생 영화로 자리매김한 영화다.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는 중학생이 볼 수 없는 영화였다. 신문광고에도 '완전 성인영화', '절대 성인영화'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고, 포스터를 봐도 중학생은 안 되겠다는 느낌이 한 방에 왔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엄청 많이 보러 갔다는 얘길 들으니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그 시절에 창고라고 불렀던 제일 아래 등급으로 분류되던 극장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봤다.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포스터에서 받은 느낌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극장 문을 나섰었다. 좀 더 나이 먹고 다시 보면서 기어이 감동받았던 한국영화의 걸작들이다. 그 시절에 본 영화 중에 대중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최인호 작가가 감독까지 맡았던 <걷지 말고 뛰어라>를 꼽겠다. 그 나이에도 가슴을 찌르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송창식이 작곡하고 불렀던 동명 주제가도 그런 분위기를 더하는 면이 있었다. '나만의 걸작'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영화 중 한편이다. 같은 원작에 다른 영화로 만든 <어제 내린 비>, <내 마음의 풍차>까지 더하면 그때 알고 본 것은 아니지만 최인호 원작의 영화를 많이 본 셈이다. 당시로서는 단순한 호기심에 보러 갔던 영화들이었지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뭔가를 던져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뭣도 모르고 보면서도 문자 그대로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서는 느낌을 받았던 영화들이었다.
그때 영화를 얘기하자면, 갑자기 튀어나와 유명해졌다고 할 만한 배우 한 사람을 빼고 갈 수 없다. 테렌스 힐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인기를 끌었다. 총이건 주먹이건 상대방을 여유롭게 이기면서도 항상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퍼포먼스를 앞세웠던 배우였다. 입을 꼭 다물고 웃는 모습도 순진해 보인다는 차원에서 이소룡의 분위기와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무숙자>, <내 이름은 튜니티>, <튜니티라 불러다오>가 그의 대표작들인데 활기찬 액션과 코믹한 장면들 때문에 많이 웃으며 즐겁게 봤던 영화들이다.
웃기는 장면으로 인기를 얻었던 영화는 또 있었는데, ‘크레이지 보이'라는 대표 제목을 붙여서 상영했던 프랑스 코미디 영화였다. 주연은 네 사람으로 구성된 ‘레 샤를로’라는 그룹이었는데, 우리나라에는 <크레이지 보이>, <크레이지 보이 슈퍼마켓>, <크레이지 보이 스페인 소동> 등 세 편이 소개되었다. 처음으로 개봉한 <크레이지 보이>는 운동 경기로 인한 소동을 그린 코미디였는데, 정말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갈수록 웃기는 정도가 기대에 못 미쳐서 그랬는지 그 이후 '크레이지 보이'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당대 잘 나가는 영화들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보러 다녔다. 그런 영화의 주연 배우들 역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그런 영화들을 꼽아 보면, 스티브 맥퀸의 <겟터웨이>, <빠삐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것이 법이다>, 찰스 브론슨의 <마제스틱>, <추방객>, 로저 무어의 <007 죽느냐 사느냐>,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말론 브란도의 <대부>, 알랭 들롱과 장 가뱅의 <암흑가의 두 사람>, 찰튼 헤스턴의 <에어포오트 75>, <대지진> 등이 있었고, 배우들의 유명도보다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로는 <워킹 톨>, <엑소시스트>, <새벽의 7인>, <추상>, <저 하늘에 태양이> 등이 있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계속 상영되는 고전 영화들 역시 극장에서의 관람기에서 빠질 수 없다. 고전 영화들은 언제일지 몰라도 적당한(?) 때가 되면 극장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중학 시절에 극장에서 처음 본 고전 영화도 많이 있었다. <나바론>, <쟈이안트>, <모정>, <도라 도라 도라>, <메리 포핀스>, <대장 부리바>, <쿼바디스>, <태양은 가득히> 등이 그런 고전들이다.
마지막으로 그 시절을 생각하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영화 한 묶음의 소개만 남았다. 그런데 그것들은 경향이나 장르, 완성도로도 같이 묶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매스컴을 탄 것도 아니었고,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에 들 정도로 꼽히지도 않았고, 컬트영화로 전폭 지지받고 있다는 소문을 몰고 온 적도 없는 영화들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뭉뚱그려 한꺼번에 말하기는 어려운 영화들의 묶음이다. 단 당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어떤 이유로든 갈채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진 영화들이다. 한국-홍콩 합작 영화 <사랑의 스잔나(Chelsia My Love, 1976)>, 인도 영화 <신상(Haathi Mere Saathi, 1971)>, 아르헨티나 영화 <나자리노(Nazareno Cruz y el lobo, 1975)>, 미국 TV 영화 <썬샤인(Sunshine, 1973)>, 그리스 영화 <나타샤(Ypolohagos Natassa, 1970)>,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화 <마이 웨이(The Winners, 1973)>등이 그랬던 영화들이다. 영화의 주제곡 혹은 영화 속에 삽입된 노래가 우리 정서에 맞거나 영화의 소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데 주효했던 영화들이다. 지금 보면 규모나 완성도 면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를 돌이켜 보기에는 가장 적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영화들이다. 당시의 신문 광고 속 카피 한 줄 씩을 고르고, 그 영화에 대한 기억 한 줄 씩을 붙여 보았다.
<나자리노>, "사랑을 택한 나자리노는 이리로 변신한다!"
주제곡의 영어 가사 노래 'When a child is born'은 날마다 들리는 노래였다.
<나타샤>, "피에 얼룩진 웨딩 마치, 산산이 찢기운 수기(數奇)한 - 운수가 기이한 - 운명!"
너무나 딱한 운명을 타고난 비련의 여인 나타샤였다.
<마이 웨이>, "나의 길을 가는데 후회는 없다! 부자간의 갈등... 훈훈한 형제애... 매혹에 찬 젊은이의 사랑!"
나이 든 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했던 마라톤이었고, 끝까지 버티는 그의 의지가 감동이었다.
<사랑의 스잔나>, "아름다운 진추하, 가련한 진추하, 하늘도 흐느낀 연인들의 애정명화!"
진추하로 시작해서 진추하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였다.
<신상>, "심오한 사랑의 고행과 인간이 못다 한 불가사의가..."
코끼리와의 우정과 '라무는 나의 친구'라는 노래 그것이 사랑이고 감동이었다.
<썬샤인>, "사랑이란 오늘을 사는 것, 언제까지나 이 행복은 내 품에 간직하리!"
남자 주인공이 부르는 존 덴버 노래도 어린 여인의 시한부 인생 얘기도 잔잔하고 담담해서 슬펐다.
날이면 날마다 어떤 영화가 어떤 극장에 도착하는지 궁금해서 기웃거리던 시절이었다.
영화라면 물불 안 가리고 정신없이 보던 시절이었다.
제목조차 언급하지 못했지만 그때 보았던 영화들의 신문 광고 몇 점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