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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Jul 30. 2024

이소룡의, 이소룡에 의하여,
이소룡을 위하여...

중학교 시절의 추억, <맹룡과강>

   

<용쟁호투>로 이소룡을 처음 보고 반하다 보니 그전에 개봉했던 <정무문>과 <당산대형>을 악착같이 쫓아가서 보고야 말았다. 세 편의 이소룡 영화는 줄줄이 같은 해에 개봉해서 볼 수 있었지만, 하나 남은 <맹룡과강>은 언제 개봉하는지를 몰라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심심하면 시내 개봉관에 가서 커다란 유리문 너머에 걸린 ‘근일프로 맹룡과강’이란 간판을 보고 또 보았다. 저놈의 ‘근일’이 ‘다음’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개봉 날짜를 보면 세 번째인 <용쟁호투>는 1973년 12월 18일이었고, 네 번째인 <맹룡과강>은 1974년 10월 11일이었으니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10개월은 정말 기나긴 시간이었다.     




각본 이소룡
무술지도 이소룡
감독 이소룡


맹룡과강 (猛龍過江 The Way of the Dragon, 1972)


<맹룡과강>은 기다린 정성에 보답하듯 만족도가 컸다는 그리고 보느라고 고생했다는 기억을 같이 남긴 영화다. 학교를 마치고 혼자 관람을 감행하기 위해서 시내의 일류 극장과 동시 개봉관으로 운영되던 부도심(副都心)의 극장으로 향했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극장이었다. 극장이 관객으로 미어터졌음에도 일찍 도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오프닝 크레딧을 놓쳤다. 꽉 차 있는 관객들 틈을 파고 들어가서 입석으로 영화를 봤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도 놓친 부분을 기어이 보겠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이 문제였다.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두 번 볼 수는 있지만 그날처럼 극장이 미어터진 날 영화 상영 중에 어떻게 나갈지는 생각지 않았던 거다. 결국 어른들의 벽을 뚫고 나가는 데에 실패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놓치지 않은 부분까지 다 보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거짓말하고도 야단맞았다. 그래도 잠자리에서 영화의 장면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이미 ‘이미자(이소룡에 미친 자)’였다.


    



이소룡이 정식으로 찍은 영화 네 편을 지금까지 보고 또 봤지만 <맹룡과강>이 제일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맹룡과강>이 좋은 이유는 가장 이소룡다운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릭터도 제일 잘 어울리고, 자기 철학도 보여주고, 액션도 가장 멋있게 찍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겸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주연, 각본, 감독을 동시에 한다고 그림이 잘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맹룡과강>이야말로 이소룡이라는 배우 자체가 브랜드화될 수 있었던 최적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표정, 연기, 액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자신 있는 것을 담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의 모든 퍼포먼스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영화의 모든 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것에 대해서만큼은 제대로 해 낸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맹룡과강>에서는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해 웃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탕룽(이소룡)이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이란 설정 때문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탕룽의 모습이 클로즈업으로 잡힌 첫 장면부터 느낌이 왔다. 공항 로비에서부터 시작하여 공항 식당, 첸칭화(묘가수)의 집, 은행, 분수, 거리 여인의 방으로 이어지는 공간마다 이소룡은 액션 장면 하나 없이 코믹한 연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 일련의 장면들에서 관객을 계속 웃고 또 웃게 만든 배우가 이소룡이라는 사실이 더 웃겼다. 그걸 본 것만으로도 본전 뽑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면 좀 과한가? 코미디 배우라도 그렇게 계속 웃기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는 얘기다. 주특기인 액션 장면 하나 없이 관객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다.





이소룡의 코믹 연기는 처음으로 무술 실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촌스러운 홍콩 청년을 우습게 본 로마 깡패들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구사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며 – 못 알아듣겠지만 – 한 수 가르치듯 해치우는 장면에서다. 대화체로 표현하자면 이런 투였다.


“쿵푸가 뭐냐고? 잘 봐! 알겠어? 이런 거지.”


이 장면이야말로 이소룡의 철학을 드러낸 <맹룡과강>의 명장면이다. 중국 무술(Martial Arts)을 어필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무술이 어떻게 보이는 게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고. 발차기를 날리고 나서 어떤 무술의 어떤 기술인지 얘기하는 주인공을 본 적이 있는가. 탕룽은 발차기 기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소룡문로(小龍問路) 작은 용이 길을 찾다!

대룡파미(大龍擺尾) 커다란 용이 꼬리를 흔들다!



소룡문로
대룡파미


'맹룡과강'이란 제목을 염두에 둔 것인지 모두 '용(龍)' 자가 들어 있다. 그의 각본이란 느낌이 확 오는 대목이다. 무술을 익혔다면 길거리에서 싸우더라도 품격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더 앞부분에서 탕룽이 무술에 대하여 얘기한 부분도 이소룡의 무술에 대한 지론(持論)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기본적인 동작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허리에 중심을 잡고 힘이 모이도록 해야 된다.



<맹룡과강>의 액션 장면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항상 코믹하게 보일만한 요소가 들어 있고 이소룡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듯한 요소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상대를 제압하면서도 포용의 여지를 남겨 주는 면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마지막의 대결에서는 쓰러트린 상대를 애도하는 면까지 보여 준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는 액션 영화에서는 좀 생뚱맞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술인으로의 자부심이 높았던 이소룡으로서는 자신의 영화에서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다분히 있지 않았을까.


<맹룡과강>은 이소룡의 액션 장면을 가장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배우가 아니었던 척 노리스, 로버트 월, 황인식 등의 무술인들을 캐스팅한 것은 리얼한 액션 장면에 한몫한 선택이었다. 그 전의 영화들에서는 상대의 동작이 느려서 이소룡이 한 박자 쉬어가는 듯한 액션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반하여 <맹룡과강>에는 실제 무술인들이 출연함으로써 훨씬 빠르고 다이내믹한 동작의 조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보니 <맹룡과강>은 적당히 찍고 적당히 속아주는 수준의 무술 영화 액션에 뚜렷한 전환점이 되었던 영화라고 주장하고 싶어 진다.



척 노리스와의 마지막 대결 장면은 <맹룡과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그 이유야 물론 당시 현역 공수도 챔피언이었던 척 노리스와의 공연이었던 만큼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부분은 콜트(척 노리스)의 우세에서 탕룽의 승리로 전환되는 지점에서의 장면이었다. 콜트에게 실컷 얻어맞아 쓰러진 탕룽은 입술이 터지고 멍든 얼굴로 눈을 치켜뜬 채 잠시 고민하다가 일어나더니 뜬금없이 제자리에서 스텝을 밟기 시작하는 그 장면 말이다. 경쾌한 듯 장엄한 듯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흐르는 배경음악도 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얼마간을 방어만 하며 기회를 살피던 탕룽이 드디어 현란한 기술로 콜트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역전을 이끌어내는 장면이야말로 이소룡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뒷이야기를 찾아보니, 이 장면을 완성하는데 무려 45시간이 걸렸다고 하며 이소룡이 구상한 이 장면의 내용만 하더라도 대본의 1/4이 될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여러 모로 공들여서 만든 역작(力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이소룡이 남긴 행적은 기사로도 책으로도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많이 소개되었다. 거기에는 미화된 면도 있었을 것이고 깎아내린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다. 그의 짧은 생애와 그것보다 훨씬 더 짧았던 유명 배우 시절로 그를 평가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덧없는 일이라는. 그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말들이 오가는 것은 생전에 그의 도전적 자세가 거침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완성된 네 편 그리고 미완성된 한 편, 겨우 다섯 편의 영화로 굉장히 유명해졌다는 이유로 겨우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젊은이에 대한 애증(愛憎)이 이렇게까지 오래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맹룡과강>은 이소룡의 부인이었던 린다가 가장 좋아했던 이소룡 영화라고 한다. 아울러 이 영화의 주인공 탕룽은 평소의 이소룡과 가장 닮은 캐릭터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하고. 역시 그랬구나 싶었다. 이소룡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팬 입장에서도 <맹룡과강>의 탕룽이 이소룡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젊은이의 치기(稚氣)도 보이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의기(意氣)도 보이고 절제하려는 겸손도 보이고 참지 못해 터져 버리는 오만도 보이고. 영화 속에 그런 모습들이 보이더란 얘기다. 영화에 보이는 모습은 그가 쓴 각본에 의한 것이니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다. 홍콩에서 온 촌놈이 맨손으로 저 유명한 이탈리아 마피아를 상대하겠다는 <맹룡과강>의 플롯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머릿속의 우주에 무술과 철학이 가득 차 있던 청년에게 로마의 마피아가 대수이기나 했겠는가. 어떤 무술 어떤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며 그 속에는 어떤 철학을 담을지에 대해서 고민했을 뿐. 그리고 그런 대담한 플롯을 무술 영화로 어떻게 푸는 게 좋은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도 내놓았다. 어리숙한 히어로, 순진한 코미디, 호쾌한 액션, 슬프고도 따뜻한 결말을 버무려 만든 <맹룡과강>이 그것이다.





길거리 싸움꾼을 거치며 진정한 무술가에 이르고자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의 일환이었던 철학에의 도전까지 생각하면 고민과 실행에 애썼을 그의 삶이 보인다. 그런데 분명하게 남은 것은 ‘이소룡’의 퍼포먼스만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네 편이었다. 그것이 너무 유명해지다 보니 아직도 그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런 면에서 좁은 소견이나마 한 마디! 그가 했던 말이든 그가 했던 행동이든 많아야 서른셋 청년의 것이다. 그 나이에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겠지 그렇게 살았노라고 했겠는가. 그의 까칠함이 반목과 대립을 낳기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 <맹룡과강>의 탕룽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이라고 상대도 해주지 않아서 삐친 상황이 그것이고, 공수도 수련한다고 폼 잡는 인간들에게 무술 얘기를 해도 개코같이 듣는 상황이 그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무술과 철학에 대한 자기 소신을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맹룡과강>의 마지막에 떠나가는 탕룽의 뒷모습을 보며 주방장 아쿠엔이 던진 말은 이소룡이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총과 칼이 날뛰는 이 세상에서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탕룽은
어딜 가나 존경받을 거야.



<맹룡과강>의 탕룽은 바로 자신 이소룡의 캐릭터이자 이소룡에 의한 캐릭터이고 이소룡을 위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소룡 스스로 원했던 자기의 모습을 탕룽이란 캐릭터에 담았을 것 같아서다. 그러니 얼마나 신바람 나게 연기했겠는가. 귀엽고, 순진하고, 정의롭고, 겸손하면서 탁월한 무술 실력에 무술 철학까지 갖춘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소룡이 롤 모델을 설정하여 시뮬레이션 게임같이 만든 영화처럼도 느껴진다.


끝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 물어본다.

<맹룡과강>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탕룽의 역할이 이소룡에게 제일 잘 어울렸고,

탕룽이란 인물에게 가장 애정이 갔기 때문이다.



보태는 말

<용쟁호투>가 아니었으면 이다음 영화는 <사망유희>였을 것이다. 그것을 은근히 보여주고 싶었나 하는 장면이 <맹룡과강>에 들어있다. 로마의 레스토랑 간판에 그려진 그림이다. 차라리 <사망유희>를 먼저 찍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그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좋아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어서. <사망유희>를 이소룡 주연, 각본, 감독으로 완성했더라면 정말 재미있는 무술 액션 판타지 영화가 한 편 탄생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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