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의 추억, <크레이지 보이>
영어 ‘Crazy Boy’를 우리말로 해석할 수 있었던 때에 개봉한 영화가 <크레이지 보이>라서 자신 있게 참 웃기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금방 달려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보고 넘기는 시간 때우기용 영화일 것 같아서. 그런데 너무 웃긴다는 말이 많이 들려왔다. 그런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 세뇌를 당한 것인지 어떻게 웃기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들과 떼거리로 몰려가서 보았다. 그런데 정말 많이 웃었다. 본 영화 중에 제일 웃기더라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로. 그렇게 웃겼던 <크레이지 보이>를 필두로 계속해서 개봉되었던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는 당시로선 관객들의 기대를 꽤 모았던 코미디 영화 시리즈였다.
‘크레이지 보이(Crazy Boy)’라는 제목이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영어식 제목에서도 그 문구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파키스탄에서의 제목이 <Crazy Boys of the Games>, 일본에서의 제목이 <크레이지 보이 금메달 대작전(クレイジー・ボーイ 金メダル大作戦)>으로 되어있는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이 영화가 수입되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크레이지 보이 금메달 대작전”이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보다 늦게 개봉을 한 것이었고, 그때까지 제목을 결정하지 않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크레이지 보이>라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권 국가의 제목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크레이지 보이’란 문구가 어떻게 제목에 들어간 건지 알고 싶었는데 제목만 조사해서는 답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답은 바로 <크레이지 보이>의 주인공 네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 비틀즈 인기를 능가한 노래하는 4인조 코메디 보이 <레 샤르로>의 폭소 스케줄”
<크레이지 보이>를 선전하는 신문광고에서의 카피다. 얼토당토않게(?) 비틀즈와 비교하는 문구가 바로 궁금했던 해답의 키였다. 당시에도 “레 샤를로(Les Charlots)“라는 그룹으로 소개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가수 역할도 한다는 정도는 들은 셈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들의 음반을 본 적도 없고 그런 그룹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들이 가수로 유명하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런 기사나 카피를 보면, 코미디언이면서 가수를 겸하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신들이 출연한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의 영화음악도 그룹 ‘레 샤를로’ 즉 본인들이 작곡할 정도로 진짜 뮤지션이었다. 레 샤를로라는 그룹은 1966년부터 활동한 프랑스의 4인조 밴드로 1968년에는 롤링스톤지에서 최고의 프랑스 록 음악가로 선정할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었다. 그들의 그룹명은 프랑스의 그룹인 만큼 ”레 샤를로(Les Charlots)“였지만, 영어권 국가에서는 ”크레이지 보이즈(The Crazy Boys)“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그룹 레 샤를로가 출연한 영화 제목에 ‘크레이지 보이’가 들어간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레 샤를로라는 이름으로 유명은 하지만 그 이름으로 모두에게 유명하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의 그룹명 레 샤를로는 프랑스어로 ‘익살꾼들’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찰리 채플린을 프랑스에서는 ‘샤를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룹명을 그렇게 지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코미디 배우로도 활동한 그들의 그룹명이 ”찰리들“과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면 그것도 재미있는 구석이다. 그들 네 사람의 이름은 제라르 리날디(Gerard Rinaldi), 제라르 필리펠리(Gerard Filippelli), 장 사루스(Jean Sarrus), 장-귀 페크너(Jean-Guy Fechner)이다.
<크레이지 보이>는 우리나라에 그룹 레 샤를로를 처음으로 소개한 영화였지만, 그들이 출연한 첫 번째 영화가 아니고 두 번째 영화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끌로드 지디(Claude Zidi)에게는 첫 번째 연출작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연기자도 아닌 레 샤를로에게도 초보 감독인 끌로드 지디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텐데 시작하자마자 인상적인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중학생으로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웃기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코미디라고 해야 우리나라 TV 방송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를 보던 정도였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코미디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유럽에서 찍은 코미디가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웃기는 코드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크레이지 보이>가 우리나라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슬랩스틱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회를 소재로 삼고 있으니 움직임이 많고 소란스러울 수밖에. 중학생의 입장에서는 성적인 농담도 과감하게 하는 듯한 장면들도 다소 색다른 면이었다.
<크레이지 보이>는 개봉한 해인 1975년에 극장에서 보았고, 다음에는 텔레비전 방영할 때야 볼 수 있었는데 그게 1985년이었다. 그러니 무려 10년 만에 다시 본 것이다. <크레이지 보이 경기장 대소동>이란 제목으로 방영했었다.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본 것이었지만 여전히 재미있었다. 세월 지난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촌스러움이랄까 덜 세련되었다는 느낌이야 받았지만 여전히 웃기더란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막도 없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보았다. 추억의 영화라는 점에서 후하게 평가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다시 봐도 지금 관객들에게도 통할 만한 코미디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이지 보이>에 대한 의리는 계속 지켜지더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첫 번째 소개된 <크레이지 보이>의 인기를 발판으로 계속해서 수입되었던 '크레이지 보이' 영화들에서 관객들의 기대가 깨져버린 것이다. 더 웃기지는 못할지언정 비슷하게는 웃겨주리라는 기대마저 깨지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의 ‘크레이지 보이’ 바람은 잦아들고 말았다. 두 번째로 개봉한 <크레이지 보이 슈퍼마켓> 그리고 세 번째로 개봉한 <크레이지 보이 스페인 소동> 두 편 모두 우리나라에서 웃기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두 해에 걸쳐 세 편의 ‘크레이지 보이’ 영화를 줄줄이 개봉하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던 셈이다. 당시 신문에서는 <크레이지 보이 슈퍼마켓>에 대하여 비판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는데,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면 웃음 터지게 만드는 면이 있다.
TV에서 보는 그런 수준에도 미달하는 졸작
두뇌 발육부전의 난센스 투성이
IQ 미달의 영화를 들여온 수입업자의 양식이 의심
실망이 지나쳐서 본전 생각으로 억울
미친 녀석들의 허황한 장난을 보고 난 기분
허황한 망상을 연출해서 관객을 기만하자는 의도로 만들어낸 만화
<크레이지 보이 스페인 소동> 같은 수준 낮은 것
중간부터 구경해도 무방... 줄거리보다는 장면장면의 희극으로 관객을 웃기려는 것
머리로 웃기는 게 아니라 피부감각으로 웃기는 오락희극
그 이후에 TV에서 방영하거나 극장에서 상영한 '크레이지 보이' 영화가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인디아나 존스’나 ‘제임스 본드’처럼 ‘크레이지 보이’라는 말을 알아주는 시대는 더이상 없었다. 알고 보니 소위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레 샤를로 출연작은 열 편이 넘게 제작되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히트했던 <크레이지 보이>가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히트작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편만 통했지만 외국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관객이 어느 정도 이상은 들었으니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기어이 이해하자면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의 다른 영화들은 유머 코드가 달라서 거기서는 되고 여기서는 안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거기서나 여기서나 최고의 히트작은 <크레이지 보이>였다는 사실이다.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에서 가장 잘생긴 역할을 주로 맡았던 제라르 리날디는 자신들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어를 알아들어야 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말이 필요 없는 엎치락뒤치락 슬랩스틱 코미디로 일관된 영화들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레 샤를로 멤버들은 ‘크레이지 보이’ 시리즈에 대하여 기준을 두었다면 화려한 장소, 따뜻한 날씨, 맛있는 음식을 들 수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편안하게 즐기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얘기다.
레 샤를로라는 그룹은 멤버가 조금씩 바뀌어 가며 2011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크레이지 보이>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네 사람 중에서 제라르 리날디는 2012년에 제라르 필리펠리는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비틀즈를 ‘크레이지 보이’의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신문광고의 뜻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비틀즈의 멤버가 두 사람 남았듯 레 샤를로의 멤버도 두 사람 남은 것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그 멤버들이 하나로 합체하여 ‘크레이지 보이’라는 이름으로 좌충우돌하며 허황되고 난센스한 코미디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너무 웃긴다고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말도 안 된다고 빈정거리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멍청하면서 성실하지도 않고, 규칙도 지키는 것 없이 그냥 그냥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우당탕거리며 사는 네 젊은이의 삶을 웃으며 지켜보던 시절이었다.
취향 따라 평가야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우정, 사랑, 청춘 그리고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코미디에는 규칙과 질서와 격식도 없었지만, 구속과 속박과 권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난센스를 보며 웃었던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자유분방(自由奔放)에 대한 막연한 환상(幻想) 아니었을까.
<크레이지 보이>의 중심은 식료품 가게 주인의 딸 델리(마르틴 켈리)에 대한 제라르(제라르 리날디)의 사랑에 있었다. 그런데 예쁜 처녀 델리에게는 멋있게 보이기만 하면 정신없이 쫓아가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도 결혼식을 앞둔 델리의 일탈로 끝이 난다. 델리도 <크레이지 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였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