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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밥 Aug 20. 2024

웨스턴보다는 코미디 액션에 방점을 찍은 버디 영화

중학교 시절의 추억, <내 이름은 튜니티>

   

이소룡이란 배우 그리고 그의 무술 액션의 매력에 한참 빠져 있을 때, 그 외의 다른 배우에게는 도무지 눈길이 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때 묘하게 재미있는 캐릭터가 하나 등장했다. 튜니티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 처음 본 입장에서 튜니티란 인물은 서부극의 주인공으로는 정말 특이해 보였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인공이라니 총 잘 쏠 거라는 정도는 기대했지만 색다른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제일 잘 나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과는 스타일이 달랐어도 충분히 매력 있는 주인공 역할을 해냈던 테렌스 힐이란 배우의 등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튜니티는 한때를 풍미했던 이름이었고, 그 선두에 있었던 영화가 <내 이름은 튜니티>였다.     


  




   

내 이름은 튜니티 (Lo chiamavano Trinità... / They Call Me Trinity, 1970)     




1970년대 중반에 프랑스 그룹 레 샤를로가 출연했던 영화 ‘크레이지 보이’ 만큼이나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시리즈라면 ‘튜니티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튜니티(Trinity)’가 테렌스 힐이란 배우를 널리 알린 대표적 캐릭터라서 ‘튜니티 시리즈'라는 용어가 생긴 거지만, 실제로 ‘튜니티’란 이름이 들어간 영화는 두 편밖에 없다. <내 이름은 튜니티>와 <튜니티라 불러다오>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튜니티 제3탄”인 척 개봉한 <튜니티는 아직도 내 이름>이란 영화도 있었지만, 거기에는 튜니티란 인물도 등장하지 않고 서부극도 아니었다. 그러니 튜니티란 캐릭터가 활약하는 영화는 두 편이었고, 이름(Nobody)은 다르지만 아주 흡사한 캐릭터인 <무숙자>를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튜니티 스타일로 연출된 테렌스 힐 영화는 세 편뿐인 셈이다. 굳이 “튜니티 시리즈”라고 표현한 이유는, 튜니티 영화 두 편처럼 테렌스 힐과 버드 스펜서의 코믹 액션물이 많이 제작되었기에 그들의 대표작 ‘튜니티’를 브랜드로 내세워서 선전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튜니티 이전에는 테렌스 힐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첫인상은 잘 생겼고, 웃음이 선해 보였지만 차림새는 너무 허름해서 더러워 보일 정도였다. 당시 테렌스 힐의 인기에 대하여 논한 신문 칼럼에서는 “가느다란 몸매, 날카로운 눈매, 곱슬 구레나룻... 잽싸게 생긴 모습”이라고 표현했었다. 테렌스 힐은 영어 이름이고 이탈리아 사람인 그의 본명은 마리오 지로티(Mario Girotti)다. 아역으로 데뷔하여 영화에 계속 출연하고 있었지만, 영어 이름을 사용한 것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수출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많은 이탈리아식 서부극이 소개되었지만 주연 배우나 감독의 이름이 영어 이름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유명한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이름도 <황야의 무법자>를 광고한 1966년도 신문에 보면 ‘보브 로버트슨’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으니 무순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내 이름은 튜니티>의 감독 엔조 바르보니(Enzo Barboni)도 당시에는 E.B. 클러처(E.B. Clucher)라고 영어 이름이 붙여져 있다. 튜니티의 형 밤비노 역할을 맡았던 배우도 버드 스펜서라는 영어 이름으로 활동하였지만 카를로 페데르솔리(Carlo Pedersoli)가 본명인 이탈리아 배우다.


튜니티라는 캐릭터가 참 재미있게 설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곧 튜니티 영화는 물론 테렌스 힐이란 배우의 성공으로 이어진 최강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튜니티 이전의 스파게티 웨스턴 대표작인 <황야의 무법자>, <장고>, <황야의 은화 1불> 등을 떠올리자면 하나 같이 음침하고 냉혹하고 복수를 다짐한 주인공이 연상되지만 테렌스 힐의 캐릭터는 좀 다르다. 지저분하지만 음침하지는 않고, 냉정하지만 냉혹하지도 않은데다 이를 악물고 복수의 칼을 가는 캐릭터도 아니고, 걸출한 실력으로 적을 제압하면서도 싱글싱글 웃을 정도로 여유만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다. 그것이 튜니티이자 테렌스 힐의 매력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내 이름은 튜니티>의 흥행 기록이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튜니티의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바람처럼 떠돌며 아무렇게나 제 편한 대로 살면서도 나설 때 나서서 악한을 놀려먹으며 해치우는 튜니티의 액션을 보고 있으면 웃기면서도 통쾌한 면이 있었다. <내 이름의 튜니티> 광고에서 튜니티를 정의한 카피 한 줄을 소개하겠다.

 

여자에 약하고 정의에 불타는 내 이름은 악마의 총잡이 튜니티...!     


    



<내 이름은 튜니티>의 장르를 IMDB에서는 버디 코미디, 패러디, 스파게티 웨스턴, 코미디, 웨스턴이라고 걸어 두고 있다. ‘패러디’는 예전의 정통(?) 스파게티 웨스턴의 패러디, ‘버디’는 남자 두 사람이 콤비로 벌이는 ‘버디 무비’의 버디라고 볼 때, 더 줄여서 정의하자면 “버디 코미디 웨스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자 주인공 두 사람이 코미디 같은 일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벌이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서부극. 딱 그렇다. 음악이나 상황 설정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그것이지만 거의 모든 상황은 코미디 설정이다. 그러니 하나의 장르로 얘기하자면 코미디 영화다.


튜니티의 등장부터가 그렇고, 엄청난 양의 콩 요리를 우걱우걱 먹어대는 일은 테렌스 힐의 대표 퍼포먼스로 꼽힐 정도다. 튜니티의 총솜씨는 신의 영역이다. 상대가 총을 뽑기도 전에 총을 돌리며 총집에 넣었다 뺐다는 기본에다 보지도 않고 총을 쏴도 거뜬히 맞히니까.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총보다는 몸으로 적을 무찌르는 장면이 많다. 겉모습으로는 엄청난 포스를 지닌듯한 킬러들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도 총소리만 들리지 대결 장면은 보이질 않는다. 킬러들이 빨간 내복 차림으로 죽으라고 도망치는 모습으로 결과를 말해준다. 밤비노의 주먹다짐은 펀치를 날린다기보다는 파리채나 망치를 휘두르는 본새다. 튜니티의 싸움 기술도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라 아크로배틱 하듯 몸을 움직여서 상대를 괴롭히는 형태고 때로는 기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단한 총솜씨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에 방점을 찍는 보편적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떼싸움도 총이 아니라 몸으로 붙는다. 정통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술집에서의 묻지마 난투극처럼. 몸을 사용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편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데 유리하니까 그 편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말하자면 코미디가 우선인 서부극이 된 셈이다.


콩 요리 먹는 장면을 위해서 하루를 굶고 촬영에 임했다는 테렌스 힐
튜니티가 계산기에 상대의 머리를 찧으니 나오는 문구!
보지 않고 뒤로 쏴도 명중시키는 튜니티의 사격 솜씨
망치질하는 수준의 밤비노 주먹질
음산하고 잔혹한 포스 뿜뿜인 킬러 총잡이들이지만...
튜니티에 바지까지 탈탈 털리고 도망가는 킬러 총잡이들
프라이팬도 튜니티에겐 좋은 무기
무엇으로 때려도 끄떡없는 밤비노
시장바구니 들듯 사람을 들고 있는 밤비노


테렌스 힐의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와 <무숙자>는 거의 동시에 개봉되었다. 제작된 해는 < 내 이름은 튜니티>가 1970년으로 <무숙자>의 1973년보다 빠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수입은 <무숙자>가 조금 빨랐다고 한다. 그런데 개봉일이 1976년 4월 3일 같은 날로 정해지자 <무숙자>를 수입한 회사에서 늦게 수입한 <내 이름은 튜니티>가 늦게 개봉되어야 한다는 진정서를 문화공보부에 제출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동일한 배우 테렌스 힐이 연기한 ‘튜니티’와 ‘노바디’가 관객을 만나기도 전에 신경전을 벌인 셈이다. 결과를 보면 그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내 이름은 튜니티>가 4월 1일, <무숙자>가 4월 3일에 개봉되었으니 제작한 해의 순서대로 개봉한 셈이다.


‘튜니티 시리즈’ 그리고 ‘테렌스 힐’의 인기도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각광받던 시리즈이자 인기배우였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무숙자>와 <내 이름은 튜니티>가 성공하자 테렌스 힐의 영화를 너도나도 수입함으로써 그의 인기는 입증이 되었지만,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는 제목에 “테렌스 힐 액션물 선풍을 계기로 본다”는 부제가 달린 기사가 실릴 정도로 작품성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기사에 의하면, 1976년 한 해에 수입된 테렌스 힐 영화는 8편이었으며 그렇게 수입이 많은 이유는 “값이 싸고 흥행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테렌스 힐 영화가 꼭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의 취향에 따라 볼 수 있게 다른 영화도 들여와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라는 얘기도 덧붙이고 있었다. 당시 천경자 화가는 “고급 영화는 거의 들여올 생각을 않고 감각적인 B급 오락영화만 수입하는 것은 관객을 잃는 행위”라고 쓴소리를 했었는데, 이에 대해 “화제작이나 문제작 등은 값이 엄청난데다 검열에 걸려 들여올 수 없거나 들여온다 해도 흥행이 미지수”라는 수입사 측의 반응도 싣고 있었다. 테렌스 힐 영화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당시의 외화 수입에 대한 정황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무숙자>와 <내 이름은 튜니티>의 동시 상영 시비 기사 (1976년 3월 26일 조선일보)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 (1977년 4월 24일 조선일보)




테렌스 힐 영화의 선풍이 일어난 시점을 생각하면, 그의 영화가 새로운 스타일의 캐릭터와 액션을 선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완성도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관객의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영화 역할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뒤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들이 소개되는 바람에 관객들이 그의 영화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서 1939년생 테렌스 힐은 어느덧 팔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었고, 1929년생 버드 스펜서는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봐도 <내 이름은 튜니티>는 재미있는 영화이고, 튜니티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새삼스레 영화는 영원하고 배우는 그 속에서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태는 말

이 영화에는 몸싸움이 아니라 대화나 표정으로 웃기는 장면도 많다.


그중 모르몬교도 마을의 수장인 토비아스와 튜니티의 대화에는 곱씹을 만한 유머가 있다.

모르몬교도 마을에 낯선 사람 둘이 멀리서 오는 걸 보면서 나누는 대화다.


토비아스 : 먼 데서 오느라 피곤한 여행자들 같군요.

튜니티 : 아니면 사막으로 도망친 죄수들이던가요.

토비아스 : 예수님도 사막을 건넜습니다.

튜니티 : 기병대에 쫓겨서 건넌 건 아니잖아요.




웃기는 표정 때문에 영화의 광고 사진이나 포스터에 거의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 주인공은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였다. 에밀리아노란 이름으로 등장한.

그때 밤비노와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밤비노 : 좋은 말할 때 순순히 불어! 누가 보냈지?

에밀리아노 : 우린 죽어도 배신하지 않는다.

(밤비노가 에밀리아노의 콧구멍에 총을 겨눈다.)

에밀리아노 : 사실대로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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