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무뎌지지 않기를
어느 순간부터 잊고 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땐 어떻게 잊고 있었을 수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일을 어떻게 잊고 있었지?'
사실 나는 그 일을 겪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엔 평소와 같이 지낼 수 있었다. 금방 잊었다는 소리다. 그만큼 그 일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문제는, 왜 그 일이 내 안에서 문제시되지 않았냐는 거다. 지금 같으면 이를 바득바득 갈고 며칠이 뭐야... 몇 년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분노할 일이었는데 왜 그때는 기억에서 그렇게 금방 지워버렸던 걸까.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중학생 때니 13살에서 15살 사이었을 거다. 하교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오후 4시쯤이었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버스 정류장엔 4시만 되면 하교하는 중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아직 해가 환하게 떠있을 시간이었고 다른 아이들도 입고 있었듯이 나도 교복 차림이었다. 그 당시 우리 학교 교복은 수녀복이라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로 길고 못생긴 치마가 포인트였다. 그냥 긴 천 때기 하나를 빙 둘러서 만든, 주름도 뭣도 없는 디자인이었다. 심지어 그때 당시에는 치마 길이 무릎 아래 5cm라는 답답하고 쓸모없는 규정이 있었다(그래서 수녀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규정에 착실하게 따랐고 나도 그랬다. 그런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버스 정류장. 나는 버스 도착시간을 보기 위해 그 많은 학생들을 제쳐가며 버스 전광안내판 앞으로 갔다. 내가 탈 버스의 시간을 확인하고 옆으로 빠지려는 찰나, 내 치마 위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워낙 주위에 사람이 많았으니까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스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느낌을 두 번째로 받았을 때 나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엔 그때까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웬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내 엉덩이에서 황급히 손을 떼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 자리를 재빨리 벗어났다. 그 자리를 벗어난 후 다시 그 할아버지를 눈으로 좇았을 때 그 할아버지는 그새 다른 여학생을 만지고 있었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그 할아버지, 아니 그 인간은 성추행을 저지른 범죄자다. 그러나 그렇게 많던 학생들 중 아무도 경찰을 부르거나 그 인간에게 한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그랬다면 당연히 신고를 하거나 증거 확보를 하거나 하다못해 쓴소리라도 했겠지만 그땐 모두 기분 나쁘고 더럽지만 조용히 넘어갔다. 그때만 해도 바바리맨(개인적으로 대체용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다)이 여고 앞엔 하나씩 꼭 있었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의 성범죄는 신고도 안되고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지금은 그때 보단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묵인되는 성범죄가 많다). 심지어 성범죄가 입증되지 못하면 무고죄고 역고소당할 위험도 있어 피해자들이 고개를 숙여야 되는 어이없는 상황도 많았다. 심지어 주위에 있는 여자애들은 크든 작든 1번 이상 당해 본 경험이 있어 우리에게 성추행은 그냥 기분 더럽고 재수 옴 붙은 날로 치부되었다. 그만큼 범죄가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서도 금방 잊혔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내 기억 속 첫 번째 성추행은 유치원 때였다. 그날 멜빵 치마를 입었었다. 친구와 교실을 떠돌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애가 내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오더니 기어코 내 속옷을 보았다. 그 애는 내 속옷 색깔을 온 교실에 떠들고 다녔다. 난 당황했고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탓에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결국 그 얘기가 선생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다독이면서 남자애들은 원래 그렇다고, 그러니 내가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 억울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피해자는 난데... 내가 왜 가해자를 '이해'해 줘야 하나. 그 뒤로 난 치마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 남자애에게 복수를 하거나 하다못해 뒤통수를 갈기지는 못하고 좋아하던 옷을 멀리해야만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어린 내가 불쌍하다.
성추행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냐면, 학교 성교육 시간에 배운 "성범죄 피해자 되지 않기"를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반드시 한 번은 당했다. 우리는 밤에 돌아다니지 않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을 다니고 혼자 있지 않았지만 성범죄 피해자가 됐다.
중학생 때,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학원 교실 문을 닫고 우리를 불러 모았다. 여자애들 몇 명이 그 애 주변으로 모였다. 그 애는 소곤소곤 얘기를 시작했다. 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문도 닫고 저렇게 작게 얘기하는 거야... 싶었다.
"내가 주말에 엄마랑 마트에 갔거든?"
"근데?"
"근데 내 뒤에 뭐가 자꾸 부딪히는 거야. 뒤 돌아봤더니 어떤 남자가 있었어."
"..."
"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주변에 사람이 좀 빠지고 나랑 엄마가 다른 데로 갔는데도 자꾸 내 뒤에 있는 거야. 자꾸 내 엉덩이에 자기 몸을 붙이는 거야."
우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대낮에? 대형 쇼핑 마트에서? 사람도 많았고 보호자도 있는 장소에서?
"쇼핑카트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에 엄마가 있었는데 엄마를 못 불렀어..."
친구의 목소리가 모기처럼 작게 기어들어갔다.
"목소리가 안 나왔어."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우리의 나이가 14살 정도였으니 그 남자는 미성년자 성추행 범인 거다. 친구는 당연히 신고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 남자의 얼굴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목격자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친구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쩌면 친구도 그냥 나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신고하라고 말했을 거다. 우리가 신고하지 않았으니 그놈은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여자애들을 추행하고 다녔을 거다. 내가 그 할아버지를 신고하지 않아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던 것처럼. 20대의 나는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내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나와 친구 역시 피해자였는데도.
수영시간에 고의든 아니든 우리 몸을 만지는 남자 선생님이 싫어도 우린 학교에 건의하지 못했다. 성교육 시간에 포르노나 다름없는 피해 사진을 보아도 항변 한 마디 할 수 없었고 남자애들의 눈요깃거리가 되지 않기 위하여 가슴을 가리려고 브라를 입고 브라를 가리려고 흰 나시나 티셔츠를 입었다. 뙤약볕의 한여름에도. 우리의 노-오-력에도 불구하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살면서 당해보지 않은 여자애들이 드물었고 그런 애들을 우린 운이 좋다고 말했다. 대학에 가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래도 다들 성인이고, 머리가 컸고, 대학 씩이나 다니면 그나마 지성인이겠지. 하지만 그건 나의 크나 큰 착각이었다.
어느 날 같이 미술관 전시를 보러 간 내 동네 친구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연락이 너무 심하게 잦다며 애인과 연락할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했다. 남자 친구에게 연락 빈도를 조금만 낮춰줄 수 없냐고까지 말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하면서 친구는 자신의 과 선배에 대한 얘기도 해줬다.
"그 선배가 자꾸 톡으로 내 사진을 보내는 거야."
"네 사진?"
"응,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꾸 날 찍어서 나한테 보내줘. 내 뒷모습 같은 거 말이야."
"... 왜?"
"나도 잘 모르겠어... 사진을 그만 찍으라고 해도 계속 찍어서 보내줘."
내 친구의 모습을 몰래 찍어서 친구에게 보내준 그 선배(이하 그 새끼)의 심리는 뭐였을까. 심리학 전공이 아니라서 그 새끼의 심리 따윈 모르지만 이게 스토킹인 건 분명하다. 그땐 스토킹 방지법도 미흡(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서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면 신고조차 잘 되지 않았다. 어차피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을 거라면서. 경찰에 신고해도 그냥 화해하라는 식이다. 화해? 화해는 쌍방으로 치고받았을 때나 하는 게 화해다. 이건 일방적인 폭력이다. 그 새끼가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배상을 하고 최종적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는 거면 모를까. 근데 실질적으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는 말도 안 듣는 그 새끼한테 사과의 말을 들을 수나 있을까?
스토킹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사건이 또 있다. 위의 친구가 면식범에 의한 범죄 피해자였다면 내 선배는 범행 대상 선정에 이유가 없는 묻지 마 범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사실 이유는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이유). 비단 선배뿐만 아니라 그때 한창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1인 가구 여성 범죄.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에 침입하거나 문 밖에서 기다리다 급습해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뉴스가 많았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집이 순식간에 범죄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대학 원룸촌과 같이 거주민이 수시로 바뀌고 방범이 허술한 곳은 이런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배는 밤마다 집 도어록이 틀리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다. 혼자 집에 있는데 문 밖에서 자꾸 누가 우리 집 도어록을 풀려고 시도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진짜 상상도 못 할 공포다. 가끔가다 술에 만취해서 자기 집인 줄 알고 도어록을 누르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같은 사람이 우리 집 도어록을 밤에 누르고 있다면 그건 심각한 사건이다. 매번 같은 사람. 그러나 거주민이 수시로 바뀌는 원룸촌의 특성상 그가 이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딱히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우리 집 도어록을 누른다면. 선배는 한동안 친구네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멀쩡한 자기 집이 있는데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자지 못하는 상황. 결국 선배는 이사를 갔다. 이사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계속 두려움에 떨면서 잠을 잘 수는 없으니까. 결국 또 피해자가 살던 거주지를 떠나야 했다.
나는 대학 생활 내리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자취를 해 본 적은 없는데, 자취방을 구해 본 적은 있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인 상태에서 만약 기숙사에 불합 된다면 한 학기에서 1년 정도를 지낼 자취방을 알아봐야 했다. 엄마와 나는 학교 주변 원룸촌을 배회하며 적절한 방 찾기에 약 2주 정도를 썼다. 우리는 집의 가격이나 구조, 학교와의 거리뿐만이 아니라 동네의 치안, 골목에 있는 가로등 개수, 주변 파출소와의 거리, 1층은 범죄에 취약해서 무조건 걸렀고 앞집 창문과의 거리도 신경 썼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자 방값은 너무나도 비싸졌고 나는 돈과 치안 중에 골라야 했다(가난한 학생의 서러움이다). 난 이게 보통 방 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자취하는 친구들은 다들 이런 고심 끝에 방을 구했다. 돈이 정 없으면 모를까 그들도 절대 1층에 살지 않았고 너무 골목에 있는 집은 피했다. 초등학교나 파출소와 가까운 집이라면 잘 구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자취방을 구할 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다. 1살 차이 나는 내 남동생이 자취방을 구할 때 동생은 파출소의 위치나 가로등 개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편의점이 얼마나 가까운지, 집값이 얼마나 싼지, 본인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집인지를 보았다. 훨씬 더 저렴한 방들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2층보다는 1층이, 보안이 철저한 곳보다는 조금 덜한 곳이 저렴하다. 돈 없기는 나나 동생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비싼 돈을 주고 방을 구해야 한다. 동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에 살아도 치안 걱정이 없지만 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난 동생이 부러웠다. 내 남자 동기들이 부러웠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비싼 돈을 치르고 들어간 집이지만 이사를 다녀야 하는 여자들에 슬퍼졌다.
가끔 신세한탄을 하기도 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성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인간은 문명사회를 이룩한 동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해오지 않았나? 그런데 왜 여전히 동물들 세계에서의 힘의 논리가 문명사회에서 지배적인 걸까? 어쩌면 인간이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발전한 동물이 아닌 걸까. 아니면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동물인 걸까. 결국 DNA에 새겨진 삶의 궤도를 따라갈 뿐인 건가? 실로 우울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도덕성이 있는 동물이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다. 단순히 힘의 논리로 사회가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건 젠더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 운동은 계속해서 전개되어 왔으며 예전에 비해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부분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갈 길이 구만리지만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어난 여성 혐오 범죄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한번씩 곱씹으면서 이런 일이 있었지, 어떻게 결론이 났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기억하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계속 기억하면서 올바르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