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性

모성 신화에 관하여

by JHMRH

모성(母性). 직역하면 어머니의 성품이다. 사전에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인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성'은 사랑이라는 뜻의 '애(愛)'와 결합되어 자주 쓰이고 모두가 모성애라는 단어를 안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곱씹지 않아도 우린 '모성'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모성(母性) : 모성애. 어머니가 아이에게 가지는 사랑의 한 종류.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고 헌신한다.


어머니는 무조건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이 낳은 '모성신화'. 맹자가 뛰어난 유학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건 그 뒤에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고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여성 위인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은 신사임당을 꼽는다(2명을 얘기하라고 하면 허난설헌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대체 왜 신사임당이 그렇게 유명한 조선시대 여성 위인으로 꼽히는 걸까. 나라를 세운 것도,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도, 하다 못해 조선 역사를 바꿀 만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오만 원권 지폐의 얼굴로 들어가 있는 신사임당은 그 유명한 유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크다. 실제로 신사임당은 직물에 사용하는 화본을 제작하는 등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사임당을 그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기억한다. 신사임당이 개인적으로 잘나서가 아니라 그 아들이 잘나서 이름이 알려진 거다. 우린 어느 대단한 위인이 있으면 그의 어머니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그에게 어떤 교육을 시켰는지에 주목한다. 또 그 어머니들의 대단한 헌신을 높이 산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는 어머니란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이 얘기를 아이를 가진 어머니에게만 대입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가질 예비 어머니에게도 대입하고 아이를 가질지 말지 아직 모르는 여성에게도 대입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여성은 모성애가 있고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적으로 헌신해야 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성신화를 전적으로 반박하는 소설이 있다. 소설 <고백>으로 일본에서 히트를 쳤던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이 그 소설이다. 직관적인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소설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 속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매우 사랑했다. 엄마에게 기쁨을 주고 칭찬을 듣는 게 삶의 목표이자 이유였다. 그는 엄마가 인정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는다. 엄마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인생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는 자신의 엄마에게만 쓰고 싶었던 단어였고 자신의 딸이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달갑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에 따라 딸을 부족함 없이 기르지만 결코 딸을 사랑하지는 못했던 엄마.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어머니와 딸 둘 중에 한 명만 구할 수 있는 위기가 닥치자 엄마는 당연히 딸이 아니라 엄마를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딸을 구하라는 엄마의 말에 딸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을 낳아준 사람과 자신이 낳은 사람 둘 중에 누구 하나만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자신을 낳아준 사람을 구했을 거라는 엄마. 자신에게 어머니는 오로지 한 명뿐이라서 자신이 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 화재 현장에서 어머니가 아니라 딸을 구한 것을 후회하는 엄마.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모성신화에 반박하며 엄마를 사랑하는 딸들의 애처롭고 불편한 관계를 보여준다.

모든 여성에게 모성이 있다면 소설 속 엄마는 딸을 사랑했을 것이다. 화재 현장에서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질 수는 있으나 딸을 구한 것에 후회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소설뿐만이 아니다. 뉴스에서도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린 엄마,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버린 엄마에 대한 얘기는 수도 없이 많다. 임신을 했음에도 임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임신 거부증이라는 병이 있기도 하다. 모든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이미 수많은 사례가 증명한다.


생각해보면 부성애는 타고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남성이 아이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잘 케어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머니와 똑같은 헌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되려 부성애는 아버지와 아이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돈독해지는 신뢰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솔직히 믿도 끝도 없이 타고난다고 보는 모성애보단 부성애 쪽이 더 타당하고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상대에게 쓴다. 긴 시간, 긴 대화, 함께하는 시간과 공유하는 추억이 많아질수록 우린 서로 돈독해진다. 그렇다면 자식도 마찬가지로 사람인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여성이라면 아이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제격일 거라는 생각, 엄마라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무조건 아이에게 헌신할 거라는 생각, 따라서 아이를 갖는 임신과 출산은 숭고하고 아이는 무조건 여성에게 축복일 거라는 생각.

이 많은 생각들이 수많은 여성들을 괴롭혀왔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은 정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네가 낳은 애는 다를 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자인데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묻기도 한다. 이 모든 말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정의 경제적 존립을 위해 맞벌이 가정이 많아졌다. 여성들 역시 집 밖의 노동자로서 자본을 벌어와야 하고 지금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다. 남성 육아 휴직 제도가 생겨나고 남성의 가사노동과 육아 참여를 촉구하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성의 가정 밖 노동 진출에 비해 남성의 가사노동과 육아 진출은 현저히 낮다. 육아 휴직 역시 여성이 쓰는 경우가 많고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는 말은 있지만 경단남이라는 말은 없다. 일과 육아 모두를 하는 여성(워킹맘)은 아이에게 소홀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며 회사에서는 일 보다 아이에게 매여 사는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결국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거나 아이가 여러 보육시설을 전전하는 상황이 된다. 우리는 성교육 시간에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여성의 몸에 치명적인지 배우지 못했다. 뼈에 칼슘이 다 빠져 골다공증이 온다거나 관절에 무리가 가서 관절염에 시달린다거나 출산 이후 변화하는 체형과 육아 스트레스까지. 교육에선 이러한 현실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축복인 사람도 있지만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예뻐 보이지 않아서 고민인 사람도 있다. 아이 자체가 축복이 아닌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나 다양한 배경, 가정환경, 세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여성이라는 성질 하나만으로 이들을 모두 자기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모성신화 속 어머니로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잣대를 대 모성애가 없는 매정한 엄마로 몰아간다. 실제로 아이를 학대하는 수많은 아버지들이 있지만 그들보다 아이를 버린 매정한 어머니 이야기에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딱한 어머니의 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결국엔 매정하다로 결론짓는다. 가해자에게 온갖 서사를 불어넣어 동정하기 바쁜 이 나라가 유독 어머니의 범죄에 대해선 잔혹하리만큼 법적인,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민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우리에게 어머니란 헌신적이고 선량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지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살기 위해 아이의 머리를 누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번 어머니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그들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누군가의 아이로 살아왔고 아이를 낳은 순간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아이다. 어머니 역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를 바랄 것이다. 내가 작은 인간을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이뤄 온 삶이 바뀐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태어나자마자 갖는 디폴트 감정이 아니다. 열 달을 내 몸속에서 불려 나간 생명체라도 내 몸 밖으로 꺼낸 순간은 전혀 다른 존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내 전부를 내어줄 만큼 사랑할 수 있겠는가.

모성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이야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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