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예의...?

아름다운 것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by JHMRH

꽤나 어릴 적에 들었던 말인데, 그때도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나이 들수록 화장하는 게 예의야."

우리 엄마가 화장대 앞에서 가끔 했던 말이다. 대체 왜 화장하는 게 예의라는 걸까. 화장하는 게 예의면 남녀노소 모두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니까. 그래서 한날은 엄마에게 반문해봤다.

"왜? 왜 화장하는 게 예의야?"

"어렸을 땐 피부도 좋고 깨끗하니까 화장 안 해도 보기에 괜찮지만 나이 들면 주름도 생기고 피부도 칙칙하고 남들 보기에 좀 그렇잖아."

"나이 들면 주름 생기고 피부에 노화가 오는 건 당연한 거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걸 왜 화장으로 가려야 해?"

"아무튼 화장해야 돼. 민낯은 예의가 아니야."

엄마는 계속되는 내 반문을 퍼프를 두드리며 막아버렸다.


엄마 말대로 나이 들어서 화장하는 게 예의라면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아저씨들도 화장해야 한다. 그들도 나이 들고 얼굴에 주름이 지고 피부가 칙칙해지니까. 그러나 난 살면서 얼굴에 퍼프를 두들기는 아저씨는 보지 못했다(많은 사람들을 못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구 한편엔 퍼프를 두들기는 아저씨가 있을지도). 아저씨만 그런가? 할아버지들도 화장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매일 민낯으로 길거리를 다닌다. 그럼 그들은 예의가 없는 걸까? 개똥 같은 소리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그럼 도대체 화장하는 게 예의라는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며 왜 하는 걸까.


요즘에야 2-30대 젊은 남자들 중엔 가벼운 화장 정도는 하는 사람도 많다. 그걸 넘어서 색조화장을 즐기는 남자들도 있고 매일 하진 않더라도 중요한 약속이나, 잘 보여야 하는 자리에 갈 땐 화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화장은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화장품 가게에 오는 남성 손님들은 멋모르고 여자 친구를 따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화장하는 남성들에겐 '게이 같다'라는 욕설이 날아오곤 했다(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모욕적인 말들을 바꾸고자 '명랑한, 즐거운'이라는 뜻이 있는 gay를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어가 욕으로 쓰일 땐 마음이 아프다). 반대로 여성들은 미친 듯이 화장을 했다. 표현이 과격하긴 하지만 정말로 미친 듯이 했다. 10대 땐 학교에서 금지하는데도 몰래몰래 하는 애들이 수두룩이었고 20대 땐 자유로워졌으니 아예 대놓고 수십 개의 화장품을 사 모으기 시작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매일매일 화장을 하고 출근을 했고 화장으로 인해 무너진 피부를 가리기 위해 더 두텁게 화장을 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 바쁜 아침에 잠과 밥 먹을 시간을 줄여서라도 화장을 했고 그 시간을 줄여도 모자라면 운전을 하며 정차 구간에서도 화장을 했다(우리 엄마가 그랬다). 운전하면서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건 사고 위험이 있으니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출근을 하려면 화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그때의 화장은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처럼 필수가 되어 있었다.


내 후배 S는 매일 화장을 했다. 아침 수업이 있는 날에도 어김없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강의실에 왔다. 방금 5분 전까지 기숙사에서 자다가 대충 모자를 쓰고 나온 나와는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주말에 잠깐 편의점에 갈 때도, 친한 친구의 자취방에 놀러 갈 때도, 하물며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S는 화장을 한 채였다. 나는 S가 신기했다. 난 아침잠이 많아서 겨우 세수만 하고 나와도 모자랄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부도 예민하고 화장보단 다른 거에 한창 관심 있어할 때라 S의 수고가 더 눈부시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기숙사 식당에서 S를 만났다. 웬일로 S는 민낯이었다. S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치 보듯이 밥을 먹었다.

"천천히 좀 먹어. 체하겠다."

"빨리 먹고 방에 올라가서 화장해야 돼요. 오늘 늦잠을 자서..."

"화장 하루 좀 안 하면 어때.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안돼요. 이 꼴로 밖에 못 돌아다녀요."

그럼 매번 아침 수업은 이 꼴로 가는 나는 뭐여...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접고 S에게는 지금 모습도 나쁘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말해주었다.


S의 화장 기술은 프로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마다 시간을 들여하는데 실력이 안 늘 수가 없을 것이다. S가 화장대 앞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화장품을 사모으고 얼마나 많은 화장법을 시도해봤을까.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고 아침밥을 먹는 나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충분한 수면은 아침 수업 시간에 졸지 않게 해 준다. 두뇌 회전도 더 빠르고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정신이 깨어있다. 아침밥을 먹으면 점심에 과식하지 않게 된다. 하루 세끼 먹으라는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난 화장을 하지 않는 대신 건강을 얻었다. S는 어땠을까.

S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민낯으로는 동네 슈퍼도 못 가고 친한 친구를 만나지도 못한다. 굳이 잘 세팅된 예쁜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들은 예쁜 모습을 고수했다. 그 순간은 너무 예뻐 보이지만 난 안다. 그들이 그 예쁨을 보이기 위해 아침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화장에 시간을 할애했는지. 난 간단한 화장만 하는 날에도 평소 준비 시간보다 15분은 더 걸린다. 풀메이크업을 할 때 1시간이 걸린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어쩌다 한 번 하는 화장도 너무 아까운 시간인데 매일 1시간을 할애하는 그들은 어떨까. 누군가는 이를 '꾸밈 노동'이라고 부른다. 힘들여 움직여서 무언가 생산을 해내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매일 아침 1시간을 할애하여 예쁜 얼굴을 생산해 낸다면 노동이라고 부를 만하다.


부제에서도 말했듯이 난 아름다운 것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잘 보여야 하는 자리 나 특별한 날에는 시간을 들여 꾸민다. 실제로 잘 꾸미고 나간 날에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꾸밈은 스페셜한 것이지 데일리 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한껏 꾸미는 것은 자기만족이라고. 정말 그런가? 정말로 자기만족을 위해 꾸민다면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도 자연스럽게 외출이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보이는 데 초점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면 말이다. 자기만족이라는 말은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화장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 선택할 수 있고 각각 선택했을시의 기분은 비슷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오로지 내 선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지,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나를 혹사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꾸밈'노동'을 하지 않으려면 꾸몄을 때의 나와 꾸미지 않았을 때의 내가 동일한 존재며 같은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항공승무원 학과의 학생들이 교육받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매일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고 매일 완벽한 헤어 세팅과 화장을 해낸다. 그냥 입고 앉아있기에도 불편한 유니폼과 구두를 신고 항공 안전 교육을 받는다. 아직 입사하지도 않은 학생들 조차 이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승무원들은 어떻겠는가. 여승무원들에게 바지 유니폼이 도입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실제로 승무원의 역할은 비행기 안에서의 안전요원이자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직이다. 전직 승무원이었던 우리 엄마의 말에 의하면 승무원의 주 역할인 안전과 서비스 중 안전이 가장 우선된다고 한다. 그야 당연하다. 목숨이 두 개인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승무원 입사 시험에는 수영 시험이 꼭 있다고 한다(엄마의 전 직장이었던 싱가포르항공의 경우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급한 상황에선 내 목숨을 승무원의 지시와 행동에 맡겨야 하는데 한눈에 봐도 움직이기 불편한 치마와 구두로 그들이 내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승무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비스직에서 특히 여성 직원에게 꾸밈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의 외모 마저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걸까? 직원의 얼굴을 판다는 얘기인가? 서비스를 받고 나서 기억나는 건 서비스의 질이지 직원의 얼굴이 아니다. 오로지 외모만 보는 미스코리아도 없어진 마당에 왜 우리가 일하러 간 직장에서까지 외모 품평을 받아야 하고 책 잡히지 않기 위해 꾸밈 노동을 해야 하는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자유로이 꾸밈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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