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신 있게 돈보다 명예를 원한다고 얘기했지
고등학생 때였나. 수업을 하던 도중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돈과 명예 중에 더 갖고 싶은 거에 손을 들어보자. 돈이 더 중요하다 손!"
반의 대다수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나를 제외한 몇 명만이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럼 명예!"
아까 손을 들지 않았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대충 세어봐도 5명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손을 든 나에게
"돈보다 명예가 더 좋아? 돈이 많으면 원하는 걸 다 살 수 있는데?"
"그래도 명예를 가질래요."
"거참 신기한 애네."
선생님은 몇 가지 근거를 대며 날 돈 쪽으로 회유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굳건히 명예 쪽에 있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회유를 하는 거지? 싶었다. 나를 제외하고도 명예에 손을 든 애들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만 질문 폭발이야. 그땐 그냥 질문에 답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싫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명예에 손을 들었던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선생님은 아셨던 걸까. 명예를 원하는 여자애는 돈도 명예도 잃을 거란 걸.
내가 명예를 선택한 이유는 명백했다. 우리 엄마는 항상 명예가 있으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명예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돈 벌 생각보다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이었겠지만 난 명예와 돈, 둘 다 놓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부자도 부자지만 명예로운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던 그 분야에서 최고 지위에 오르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세계 정복은 못해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임원급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임원은 무슨.
난 소위 말하는 유리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계급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법적으로 모든 사람은 자유로이 직업과 직군을 선택할 수 있다. 열심히만 일하면 돈도 벌 수 있고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유리천장이 왜 유리천장인지 알게 되었다. 실제로는 올라갈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천장이 있는데 그게 유리로 되어있어 가로막는 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이건 보이는 천장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어디에도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호소하지 못하게 만드니까.
우리 학과의 졸업 요건 중 하나는 30일 이상의 실습시간을 채우는 것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졸업요건이지만 나 때는 그 요건을 채우기 위해 방학 때마다 짬짬이 기관에서 실습을 하였다. 실습일 수를 채워야만 졸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실습을 했는데, 학과 특성상 육체노동이 주인 실습이 많았다(고고미술사학과 출신이다. 실습은 보통 문화재 발굴을 많이 한다). 발굴 기관에서는 으레 그렇듯 남학생들을 선호했다. 아예 모집 요건에 대놓고 남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학생들은 실내 작업으로 배정받거나 미술관 실습을 했다(미술관 실습은 페이가 없다. 약 한 달 여의 실습으로 적은 돈이라도 만질 수 있는 일은 현장 발굴 일이다). 그마저도 실내 작업은 사람을 많이 뽑지 않았다. 유독 우리 학번엔 여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래서 늘 자리가 치열했다. 그때 난 조금 억울했던 것 같다. 우리도 똑같은 전공자이고 똑같이 실습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왜 우리는 페이도 못 받는 실습 자리를 여러 명이서 경쟁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남학생들은 학교를 통해 기관에서 스카우트 마냥 뽑혀 간 애들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엔 현장 일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난 석사 수료 전까지 그 어떠한 관련 일도 해볼 수 없었다.
석사 수료 후 첫 직장에 입사했다. 비록 계약직이고 월급도 짜디짰지만 본가랑 가까웠고 전공이랑도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 입사했다. 입사 후 내게 배정된 일은... 현장 일이었다. 물론 지원서를 넣을 때도 이 부서 저 부서 옮겨 다니며 다양한 업무를 해야 된다고 알고 있었지만 조금 놀랐다. 현장 일도 하는 건데 왜 나랑 같이 면접 본 남자분을 안 뽑고 날 뽑은 거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 선임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저 면접 볼 때 남자분이랑 같이 봤는데 절 뽑으셔서 놀랐어요. 보통 남자분을 선호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요? 제가 면접관이 아니라서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마 선생님 전공이 저희랑 더 잘 맞는 것 같아서 뽑은 것 같네요."
날 뽑은 이유를 듣고 나자(추정이지만), 또 그 이유가 나름 납득이 되자 앞으로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말로 내 성별과 체구 따위를 보지 않고 날 뽑은 것 같아 회사의 첫인상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입사하고 가을이 되자 난 현장 출근을 하게 되었다. 현장 일은 처음이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엄청 배웠었다. 호미질, 곡괭이질, 망치질 가리지 않고 했고 처음 1-2주는 너무 고되고 힘들더니 시간이 좀 더 지나자 금방 익숙해졌다. 몸이 익숙해지니 현장 일도 그냥 일이었다. 오히려 연구자 입장에서는 현장 일을 할 수 있는 게 더 득이 되었다. 사진과 보고서를 통해 보는 유구나 유물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직접 파서 만져보고 재보는 건 연구자에게 크나 큰 경험이자 자료다.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되자 학부 시절 현장 실습을 해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해보니 영 못할 것도 아니고 추후 내 연구에 더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 사무실 책상에만 앉아 있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여전히 남자들이 더 많이 가질 거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연구에 자본금을 투자하고 똑같이 힘들여 논문을 쓰는데, 전문성은 나나 내 남자 동기나 별반 다를 게 없을 텐데(특히 학부생 때는) 실제로 일을 해보는 기회의 차이는 꽤 났다. 내가 석사 씩이나 되어서 학부생 마냥 현장 일을 배울 때 남자 동기들은 학부 때 이미 다 깨져가며 배우고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석박사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이 분야는 석박사가 기본이다. 석사가 뭐야... 박사가 넘쳐나는 시국이다.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박사쯤 되면 다들 나이들이 상당히 많다. 재학 중인 박사 선생님들 중 대부분은 결혼을 했고 그중에는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도 있었다. 아이 키우느라 자기 연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들이다. 어느 분야에서 박사쯤 되면 사실상 그 분야의 웬만한 지식은 섭렵하고 있고 연구자로서는 정점을 찍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정도 연구 스펙이면 어느 기관이나 스카우트해 갈 것 같지만 계약직을 전전하는 선생님들도 있고 여태 직장 없이 학생인 선생님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자 선생님들이었다. 직업 특성상 지방에 내려가서 살아야 되는 경우도 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그 일을 하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장 가는 남편은 흔하지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장 가는 아내는 손에 꼽는다. 심지어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이에게 발이 묶인다. 논문이라도 쓰고 연구라도 계속할 수 있는 선생님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고학력자 주부가 될 뿐이다. 당연히 주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학교에서 몇 년간 노력하여 연구한 것이 주부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박사 선생님이 얘기해 준 박사 시험 날 풍경에 다들 웃었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 자격을 심사하는 시험에 아이를 업고 등장한 여자 선생님. 아이가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바람에 데려왔다고 한다. 아이를 휴게실 다른 선생님들께 맡겨놓고 시험을 보는 선생님. 어디 맡길 때가 없는 갓난쟁이를 데려온 선생님. 아이를 가진 선생님들은 많지만 시험 날 아이를 데려오는 남자 선생님은 없다. 과연 아이를 데려온 여자 선생님들이 시험을 차분히 완벽하게 볼 수 있었을까. 결국 그들이 고학력자 주부가 되는 이유였지 않았을까. 사회에 나가 신입으로 일할 땐 주변에 여자 선배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직급이 올라가고 승진을 하면 주변에 있던 그 많은 여자 선배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많은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모두의 꿈이 집에서 아이를 보는 건 아닐 텐데... 분명 자신의 일을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유리천장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돈보다 명예를 선택했었다. 내가 노력만 하면 선택한 분야에서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위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일을 사랑했고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생기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나보다도 더.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꿈을 꾸던 그 많은 선배들은 어디로 간 걸까. 명예를 선택하는 여자애들은 돈도 명예도 가질 수 없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돈보다 명예를 선택한다. 여전히 명예를 얻으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후배들에게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중에 그들이 여자 선배의 조언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난 명예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