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사랑을 끝없이 끝없이 퍼서 썼다.
영원한 것 마냥 끝도 없이 너의 마음을 후벼 파며 너에게서 사랑을 뽑아서 썼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땐 그저 좋았던 것 같다. 이 좁디좁은 동네에서,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아있는 이곳에서 친구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 아마 너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퇴근하고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가벼운 관계. 너도 나도 인간관계에 지쳤으니 서로 니즈가 맞았던 거다. 첫 만남에 뚝딱이지 않으려고 말의 공백을 깨려고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어색함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네가 생각난다. 첫인상이 굉장히 좋았다. 수줍은데 내색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친구로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자고로 귀여운 건 애인 사이뿐만 아니라 친구사이에도 중요하다. 각박한 사회생활을 견디고 오면 너와 맛있는 음식이 같이 있을 테니까. 한 달에 한두 번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린 동네 친구답게 같이 포켓볼을 치고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보냈다.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됐지만 나는 네가 정말 편했다. 나는 너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짝사랑한테 차인 일 주저리주저리. 너는 그때의 내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그다음부터 너는 술에 잔뜩 취해서 나한테 짝사랑과 만나지 말라고 하고 그런 애가 뭐가 좋냐면서 구시렁대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그때의 네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바다에 갔다. 네가 낚시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갔다. 나는 낚시는 하나도 모르지만 네가 가르쳐 준다는 말에 가기로 했다. 가는 내내 너는 아픈 나의 손목을 마사지해 줬고 나는 너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바다에 도착해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날 가르쳐주는 너의 품, 따뜻한 온기, 바다 내음 그 모든 게 영화 같았다. 짝사랑 때문에 아팠던 건 싹 잊힐 정도로. 비가 내리자 우린 차로 대피했다. 차 안에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 네가 소원이 있다고 했다. 내가 그냥 눈 감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게 소원이라고. 나는 직감했다. 네가 날 좋아하는구나. 그 순간은 행복했다. 정말로. 그날은 정말 행복했다. 간혹 짝사랑이 생각났지만 그 강렬한 그날의 온기에 금세 덮어졌다. 그때의 너는 정말로 예뻤다. 내리는 비와 촉촉하게 젖은 입술, 어두운 공간과 혼란스러운 마음과 그럼에도 행복감에 젖어서 어쩔 줄 모르던 그때. 그때를 내가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31살의 너는 항상 불안해했다. 내가 그 짝사랑을 잊지 못해서. 너와 사귀면서도 내 마음의 반쪽은 늘 그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너는 질투하고 불안해하고 내가 아니라고 그런 사람 연락도 안 하고 다 잊었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널 불안하게 한 게 나라는 걸 지금은 너무 잘 안다. 네가 울면서 더 많이 사랑해 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어쩌면 많이 사랑해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1살의 너는 나를 사랑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 나를, 그 긴 시간 동안 불안하게 만든 나를 단 한순간의 변함도 없이 사랑했다. 너는 늘 사랑한다고 말해줬고 내가 아프면 달려왔고 내가 울면 안아줬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상처받는 그 순간까지도 너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너의 사랑을 끝없이 끝없이 퍼서 썼다. 영원한 것 마냥 끝도 없이 너의 마음을 후벼 파며 너에게서 사랑을 뽑아서 썼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가며 엉엉 울었다. 내가 울어도 너는 오지 않았다. 날 따뜻하게 안아줬던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땐 널 잃는다는 게 무서워서 울었던 것 같다. 그만한 사랑을 받아본 게 손에 꼽았으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나는 이도저도 못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무 자르듯 잘라지는 게 아니었기에. 그 사람을 정리하고 널 만나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었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 이전 사람을 잊게 해 줄 거라고 믿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을 잊기까지 반년이 더 걸렸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그 해 여름이었다. 봄에 헤어졌던 우리가 몇 달 지나 다시 만났다. 그 사이 동안 우린 그저 친구처럼 지냈다. 여전히 네가 날 좋아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잃을 줄 알았던 네가 친구로라도 돌아와서 나는 행복했다. 그런 줄 알았다. 너와 함께 하는 매일이 행복하고 사소한 일들이 특별한 일이 되고 설레고 뜨거운 여름 태양도 혀를 내두를 만하게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31살의 너는 하얗게 빛이 났고 다정했고 언제나 사랑스러웠다. 나에게 없는 낭만이 있는 사람이라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에게 함께하자고 했고 너는 나에게 고백했다. 우리는 그로부터 3년을 연인으로 함께했다.
그렇게 싱그럽던 네가, 젊고 낭만적이었던 네가,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네가 점점 시들어간 건 아마도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널 사랑했지만 내 사랑의 방식은 너에게 통하지 않았다. 언제나 언제나 네가 날 더 좋아했다. 네가 그렇게 말했다. 늘 자신이 날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때마다 나는 나도 널 좋아해라고 했지만 넌 역시나 믿지 않았다. 나의 사랑은 껍데기뿐인 사랑인 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네가 처음이었는데.
31살의 너는 날 사랑했다. 내가 널 사랑한 것보다 더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