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든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고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만, 나만 바라봤다. 궁극에는 내 숨이 막힐 때까지.
32살의 너는 한없이 응석받이 어린아이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사랑받기 위해 덜렁대고 식탁 위 물건을 쏟고 동생을 질투해서 때리는 등의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의 난 너의 그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사랑했다. 오히려 네가 나한테 의지하고 기대고 응석 부리는 게 네가 날 사랑하는 방식이자 지표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고 너의 투정을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적도 있지만 난 그래도 너의 아이 같은 마음과 질투, 시샘, 투정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32살의 넌 항상 아팠다. 늘 아파서 병원을 자주 가야 했고 수술도 여러 차례 했다. 무엇보다 너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이 같던 사람이 몸이 아프니까 더 어리광이 심해졌고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너는 우울증 약을 복용했고 난 그런 너를 거의 매일 보러 갔다. 처음에는 네가 힘들어하는 게 싫어서였다면 나중에는 그저 너를 보고 싶어서 갔다. 나는 굉장히 자주 너의 집에 갔다. 못해도 일주일에 3번은 갔을 거다. 그러나 너는 더 많이, 더 오래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쯤에서 너와 많이 싸웠던 것 같다. 나는 일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너와 놀기까지 해야 한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은 없냐. 친구 좀 만나라. 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는 내 친구들은 다 결혼했잖아. 난 같이 놀 친구가 없어. 난 너만 보는데 왜 넌 나한테 다른 친구를 만나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혹시 내가 너를 귀찮아해서 다른 친구를 만나라고 했던 걸까. 아니야. 귀찮았다면 핑계를 대서라도 널 보러 오지 않았을 거다. 내가 너에게 친구 좀 만나라고 했던 건 네가 말해줬던 너의 집착이 심한 전애인처럼 내가 너에게 상처 주지 않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때의 네가 힘들었었다고 내게 말해줬기 때문에 나는 널 자유롭게 내 옆에 두고 싶었다. 그게 우리 사이의 첫 번째 화근이 되었다.
너는 하루 종일, 매일매일 나만 봤다. 내가 오케이를 하면 너의 약속을 취소하고서라도 나를 보러 왔다. 그때마다 나는 너에게 미안했지만 너는 행복해했다. 단순히 나를 좀 더 본다는 걸로. 그리고 너는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다. 나의 스케줄을 취소하고서라도 너에게 달려갈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조건 선약이 먼저지.라는 말로 너에게 상처를 줬다. 너는 그렇게 아이 같고 여린 사람이었다. 넌 그 말에 상처받았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땐 내가 너에게 신과 같은 존재라서 너의 조건 없는 사랑을 독식하며 자랐다. 나는 점점 더 너의 사랑이 자연스러워졌고 어쩔 때는 부담스러워졌으며 어쩔 때는 미안해졌다. 나에게 쓰는 시간과 돈과 체력을 너 자신에게 좀 더 쓰라고 말했다. 너는 또 상처받았다. 애인에게 올인하는 것이 너의 사랑 방식이었다는 걸 그때의 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상처받아도 너는 날 사랑했다. 늘 나에게 다정했고 섬세했고 나만 보았다. 어딜 가든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고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만, 나만 바라봤다. 궁극에는 내 숨이 막힐 때까지.
그래도 나는 널 사랑했다. 늘 아이 같고 예민하고 순두부같이 불안하게 찰랑거리는 널 어떻게든 잘 담아서 소중하게 품어보려고 나는 나대로 별 짓을 다했다. 너의 모든 순간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게 나에 대한 사랑이겠거니 하고 넘어가고 참고 흐린 눈 했다. 너의 친구들을 소개받는 자리도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했고 너에게 내 친구들을 아주 조금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 과정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널 사랑해서 너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했고 널 사랑해서 참았다.
이 즈음에 너는 술을 과도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가 술로 싸운 첫 시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픈 네가 매일매일 술을 마셨고 술을 많이 마신 날엔 어김없이 토했다. 그건 너에게 역류성 식도염을 가져다주었고 위장을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너에게 제발 술을 천천히 끊어보자고 말했다. 네가 망가지는 게 너무나도 보기 힘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폐인이 되어갔고 네가 술을 마시고 토하는 날에는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나는 네가 아픈 게 너무 싫었다. 네가 아픈 모습을 보는 게 아팠고 힘들었고 마음이 찢어질 듯했다. 나는 너에게 술로 계속해서 잔소리했고 넌 화를 내며 듣기 싫어했다. 너 때문에 울었고 널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를 한없이 어린아이로 생각했기에 너에게 성인 대 성인으로서의 약속을 제안하지 않았고 그저 널 혼내고 타이르고 꾸짖는 엄마의 모습으로 널 대했다.
너는 많이 아팠다. 그놈의 술 때문에. 널 어른으로 대했다면 우리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을까? 내가 나의 불안함과 힘듦을 숨겼다면 네가 알아서 술을 절제했을까? 네가 떠난 지금 나는 그때의 내 행동이 너에게 좋은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너는 나만 바라봤고 나에게 더 매달렸다. 그게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에는 너의 곁에 남았다. 나는 그게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했기에 실망스러운 모습도 감싸줬고 이해해하려 노력했다. 그런 아이 같은 네가 점점 더 힘들어진 건 아마도 내가 너를 받아주지 못했을 때부터였을 거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